전문직에 종사하는 40대 후반의 한 한인 가장은 미국 평균 서민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부를 이미 축적했다. 남가주에서 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의 150만 달러 저택에 살고 있고 은행 CD와 저축구좌를 합친 금액이 20만 달러에 육박한다. 공부 잘 하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두 자녀와 현명한 아내 등 누가 봐도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 낸 성공한 가장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 정도 부로는 은퇴할 때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구조조정을 당해 해고되면 어떻게 되나” “모기지 페이먼트를 못내 집을 뺏기게 되면 창피해서 교회도 못갈 것 같다” “내후년이면 딸이 대학에 가는데 학자금은 충분한가” 등등 걱정을 사서 하면서 2년 전부터는 신경성 위장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한인을 지켜보면서 떠 올린 것은 처지와 환경을 인식하는 두 가지 시선이다. 컵에 물이 절반 차 있을 때 ‘컵의 물이 반밖에 없다’고 부정적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컵의 물이 반이나 있다’며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그가 “요즘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정도면 축복받은 것 아닌가” “열심히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그는 훨씬 더 큰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화두는 단연 경제다. 사실 92년 폭동과 94년 노스리지 지진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경제 침체다. 이번 경제 침체가 특히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경제 침체와 함께 물가도 함께 뛰는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은 고유가와 고물가가 미국인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10가지 축복을 소개했다. 우선 자동차 사용 감소로 매연과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줄어든다. 미국인의 자동차 운전거리가 줄면서 자동차 사고가 감소하고 윤화사망자도 줄어들어 자동차 보험료도 줄어들고 있다.
교통체증 감소에 따른 ‘짜증 지수’ 감소는 경제적 가치로 쉽게 환산할 수 없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많이 타게 되면서 더 건강해지고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인 비만과 이에 따른 각종 질병을 방지할 수 있어 건강보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값싼 임금을 찾아 저임금 국가로 몰렸던 미국 업체들이 운송비 급등으로 미국으로 유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를 중심으로 주4일 근무도 확산되고 있다.
기자와 뉴욕에서 대학원을 함께 다닌 후 한국으로 돌아간 동창과 최근 전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대학원 2년을 비롯, 미국 생활 3년간 아무런 생각 없이 먹었던 불고기와 갈비, 곱창, 해장국 선지, 곰탕 등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광우병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 된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에게 “실제로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광우병에 걸린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건강에 더 나쁠 것”이라며 “광우병은 잊고 차 사고나 당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식생활을 바꾸고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얼마 전부터 생활패턴을 바꾸고 있다. 고기 섭취량을 줄이고 차로 보던 볼일도 걸어서 하고 있다. ‘황제처럼 먹지 말고 농부처럼 먹어야 오래 산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걸어서 5분거리 밖에 안 되는 수퍼마켓을 지난 10년간 왜 차만 이용해 다녔는지 모르겠다. 절약습관에 눈을 돌리면서 그동안 개인 재정 운용에 구멍이 많았음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2006년 뉴욕타임스가 ‘베스트 100’에 선정했던 ‘행복의 역사’를 펴냈던 긍정심리학의 선구자 대린 맥마흔 교수는 “사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매사에 늘 감사하는 사람은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이는 건강과도 직결돼 경제학 측면에서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자. 경제는 내려가면 다시 오르는 법이다. 이번 경제침체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성찰과 실천의 진정한 가치는 경제적인 것을 넘어선다.
조환동 경제부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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