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의 인기는 공화당 존 매케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져본 적이 없다. 가장 최근조사에서도 50% 대 42%로 앞서고 있다. 최우선 관심사인 경제문제에서 각종 사회 이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공약을 선호한다. 단 하나의 분야를 빼놓고는. ‘외교와 국가안보’다. “누가 국제정세에 능통한 통수권자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까”에 72%가 매케인을 꼽았다.
오바마가 10일간 일정으로 해외순방길에 오른 것은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5개의 시간대를 거쳐 1만6,000마일을 나르며 8개국을 도는 강행군이다. 어제만 해도 수요일 자정 넘어 도착한 예루살렘에서 잠깐 눈 붙인 후 ABC-TV앵커와의 인터뷰를 선두로 오전 9시 이전에만도 이스라엘의 국방장관과 대통령,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다시 이스라엘 야당 당수 등과의 회담이 숨 가쁘게 잇달았다. 46세의 ‘젊은 오바마’도 “정말 선 채로 잠들 것 같다”고 고개를 내저었을 정도다.
선거전의 한 복판에서 후보가 해외순방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2008 대선의 두 후보들은 다투어 해외 순방에 나서고 있다. 별 관심은 못 끌었지만 매케인도 몇 달 전 유럽과 남미, 중동과 캐나다 등을 돌아왔다. 이라크전쟁이 큰 요인으로 작용도 했지만 ‘세계화’는 미 대선에서도 이미 중요한 단면으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테러와 핵 위협은 미국인의 일상에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중국과 인도의 생활상 변화에서 비롯된 고유가가 미 중산층의 생계를 위협하는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계 속 미국의 이미지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 역시 금년엔 상당히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상대후보의 약점보다는 강점을 집중 공략하라’- 선거전략의 귀재라는 칼 로브의 지론이다. 오바마의 이번 해외순방은 상대의 강점과 함께 자신의 약점에 정면으로 맞선 ‘담대한’ 대응이다. 세계의 정상들과 당당히 설 수 있는 리더의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스스로 국제무대에 오른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던진 승부수다.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심어줄 수도 있지만 작은 실수가 “역시 미숙해!”를 확인시키며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유불급, 오만으로 비칠 지나친 자신감과 지나친 인기가 국내에서 거부감을 불러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번 순방은 두 단계로 나뉘어졌다. 아프간과 이라크는 군용기로 날아간 상원 대표단의 공식방문이었다. 공화·민주 양당의원들이 동행, 초당적 분위기까지 과시한 이라크 방문에서 오바마는, 운이 좋았을까,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알-말라키 이라크총리가 오바마의 16개월내 철군일정안에 대해 지지를 표시한 것이다. 그건 마치 두 대선 후보중 매케인을 제치고 오바마 지지선언을 한 격이었다. 철군일정 제시를 금기로 삼아온 부시와 매케인의 입장이 일순 난감해졌다. 부시는 철군에 대한 ‘time horizon’ 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를 동원해 ‘이라크상황 개선에 따라 미군 추가감군 목표를 정하는데 합의했다’는 선으로 물러섰고 ‘전쟁의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로 몰아치던 매케인의 오바마 공격 또한 무색해지고 있다.
물론 이라크 정책은 단순하지 않다. USA투데이의 지적처럼 이라크정부가 철군을 요구하는데도 ‘매케인 대통령’이 미군체류를 고집하기 힘들 것이며 이라크 내전이 악화된 상태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철군을 강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철군일정은 우선과제로 부각되었고 오바마의 주장대로 아프간의 미군증파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라크 정책의 방향이 ‘경험 없는’ 오바마의 공약 쪽으로 바뀌는 추세는 기대이상의 중요한 성과다.
경선에서 힐러리의 불평을 샀던 미디어의 오바마 편애는 이번에도 역력하다. 순방 동행취재 신청이 무려 200명에 달했고 주요 TV의 뉴스앵커들이 모조리 따라 나섰다. 공화당의 불만이 높아지자 미디어에선 매케인 유세현황도 오바마 뉴스 중간 중간에 섞어 넣었는데 이게 역효과를 부르고 말았다 : 오바마는 미군사령관과 함께 헬리콥터로 바그다드 상공을 나르고 있는데 매케인은 아버지 부시와 함께 리조트에서 골프카트를 타고 있었다…한 장면은 ‘통수권자의 전황시찰’을 방불케 했고 다른 한 장면은 ‘전직 대통령클럽의 친선모임’을 연상케 했다.
이라크를 떠나며 오바마의 순방은 유세여정으로 바뀌었다. 가장 우려했던 이라크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겼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간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시도한 까다로운 중동방문도 무난히 마쳤다. 새로 마련한 보잉757 하얀색 전용기로 움직이는 이제부터의 행보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더구나 유럽은 그의 인기가 압도적인 ‘오바마랜드’가 아닌가.
매케인 진영이 ‘세계관광’이라고 야유한 오바마의 국제무대 데뷔전의 평가는 이번 주말부터 다각적으로 나올 것이다. 오늘까지의 중간성적표는 So far, so good - 일단 합격선이다. 세계의 정상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당당한 면모를 과시했고 그를 맞는 정상들의 환대 또한 정중하고 따뜻했다. 일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베를린에서의 대중연설이 예상대로 10만 관중의 열광을 끌어낸다면 부시를 맞는 항의 시위만 보아 온 미국인들에게 “아, 우리 대통령도 저렇게 환영받을 수 있겠구나”란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록스타 못지않은 ‘대통령 후보’의 해외에서의 인기를 미국의 유권자들이 자랑스러워할지, 거부감을 느낄지, 마지막 평가는 11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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