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토는 지토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았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배리 지토마큼 관중몰이 약효를 내는 선수는 드물다. 22일 밤 홈구장 AT&T 팍에서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벌인 경기도 그랬다.
아직 어둠이 덜 깔린 초저녁, 경기 시작 당시 기온은 63도. 그러나 허허벌판 스테디엄의 체감온도는 이닝이 깊어지면서 쌀쌀해진 바람과 맞물려 50도 초반대로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걸 모를 리 없을테고 아무래도 운동장행 걸음이 한산한 주초 야간경기인데도 AT&T 팍에는 유료관중만 3만4,813명(수용인원의 83.7%)이 몰렸다.
지토가 승리로 답했다.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 LA 다저스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데 이어 실로 오래간만에 나온 2연승이다. 당시 다저스 선발투수는 박찬호였다. 지토는 7회초까지 1점차로 밀린 상황에서 덕아웃으로 물러났으나 곧바로 자이언츠 타선이 6회말까지 던지고 물러난 박찬호 뒤 불펜투수를 7회말에 공략, 전세를 뒤집어준 덕분에 승리투수가 됐다. 내셔널스를 상대로 한 후반기 첫 출격에서도 지토가 100% 지토는 아니었다. 6이닝동안 공 111개를 뿌리며 1홈런을 포함해 7안타와 3볼넷을 내주고 3점을 허용했다. 그 사이에 삼진은 5개를 낚았다.
출발부터 또 불안했다. 1회초에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선두타자 해리스에게 우전안타를 맞았다. 후속타자 구즈만의 유격수 앞 땅볼이 병살타로 연결돼 그 불을 곧 껐다. 한숨을 돌린 지토는 3번타자 지머만을 2루수 앞 땅볼로 처리하며 첫 이닝을 마쳤다.
내셔널스의 선발투수 제이슨 버그만도 출발부터 삐걱했다. 자이언츠의 선두타자 프레드 루이스가 우월홈런을 뽑아냈다. 최근 밀워키 브루어스로 간 레이 더햄의 뒤를 이어 붙박이 2루수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2번타자 벨레즈도 유격수 옆 깊숙한 내야안타로 출루하더니 버그만의 느릿한 와인드업을 틈타 2루 도루까지 성공했다. 벨레즈는 또 랜디 윈의 우익수 진영 플라이 아웃 때 3루까지 진출했다. 이어서 벤지 몰리나. 한참동안 불뿜는 타격을 보이다 6월 중순부터 그 열기가 많이 식은 몰리나가 후반기 첫 홈런을 쏘았다. 자이언츠의 3대0 리드.
의외로 일찍 어깨가 가벼워졌을 지토는 2회초에도 불안했다. 벨리아드를 우익수 플라이로, 플로레스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았다. 외야플라이를 유도한 피칭이었을까, 안타가 안돼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한 피칭이었을까. 결과적으로 후자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후속타자 플로레스에게 중견수 옆을 빠지는 3루타. 그 코스로는 좀체 3루타가 나오기 힘들지만 타구가 까다로워 중견수 애런 로왠드가 방향과 속도를 재는 데 다소 애를 먹었다. 이어 로두카에게 그라운드룰 더블(2루타). 플로레스가 걷다시피 홈을 밟았다. 3대1. 지토의 불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로페스에게 볼넷. 상대투수 버그만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서야 2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2회말 버그만이 살아났다. 자이언츠 타자 3자범퇴. 3회초 지토도 살아났다. 내셔널스 타자 3자 범퇴. 버그만은 3회말에도 3자범퇴로 자이언츠 타자들을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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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 지토가 다시 흔들렸다. 선두타자 컨스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더니 벨리아드에게 볼넷을 내줬다. 플로레스를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았으나 주자는 2, 3루가 됐다. 이어 로두카의 2루수 옆 내야안타가 터져 스코어는 1점차(3대2)로 줄었다.
후속타자 로페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은 지토는 2회초와 마찬가지로 상대투수 버그만 덕분(내야땅볼, 야수선택으로 1루주자 로두카 2루에서 아웃)에 추가실점 없이 4회초 위기에서 벗어났다.
4회말, 마치 지토와 짠 듯이 버그만도 비틀거렸다. 선두타자 몰리나가 왼쪽 펜스를 넘어가는 2번째 홈런으로 버그만을 맥빠지게 했다. 후속타자 로왠드와 잔 바우커도 잔뜩 큰 것을 노렸다. 둘 다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이쯤해서 버그만의 수난이 끝나는가 했다. 그러나 리치 어릴리야의 땅볼을 처리하면서 2루수 로페스가 악송구를 하는 바람에 수난은 길어졌다. 다음 타자는 유격수 오마 비스켈. 마흔 넘은 나이에도 수비만은 여전히 수퍼급 내공을 자랑하지만 방망이는 타율 1할대의 물방망이. 그런 그가 버그만의 공을 휙 잡아끌어 우익수 진영 깊숙한 2루타를 제조했다. 수비실책 덕분에 덤으로 살아나간 어릴리야가 댓바람에 홈까지 파고들었다.
점수는 다시 3점차가 됐다(5대2). 앞서 지토가 버그만을 제물로 4회초 위기를 벗어났듯이, 버그만은 지토(내야땅볼 아웃)를 제물로 4회말 위기를 헤쳐나갔다.
5회초, 지토는 또 불안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 다짜고짜 해리스에게 우월홈런을 허용했다(5대3). 다음타자 구즈만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낸 지토는 지머만에게 중전안타를 내줬다. 후속 컨스 중견수 플라이 아웃. 벨리야드에게는 볼넷. 플로레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지토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후부터는 서로 불안불안 하면서도 스코어는 소강상태. 5대3이 8회초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버그만(5회까지)도 지토(6회까지)도 마운드에서 사라졌다. 자이언츠는 8회말 로왠드의 좌전적시타로 윈을 홈으로 불러들여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지토는 시즌 5번째 승리(12패)를 따냈다. 자이언츠팬들은 지토에게 모처럼 야유성 아닌 진정한 환호를 보냈다. 전반기 때 지토의 거듭된 불안피칭에 자이언츠팬들은 야유성 기립박수를 치는 등 장난끼까지 보이면서도 지토가 던지는 날이면 거의 예외없이 많이 몰려들었다. 40승 찍고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던 자이언츠는 간만에 41승(58패)을 찍었다. 내셔널스는 38승62패가 됐다.
자이언츠 포수 벤지 몰리나가 멀티홈런을 친 것은 ML 데뷔 10년반만에 5번째 겸 올시즌 2번째다. 프레드 루이스가 리드오프 홈런(1회 선두타자 홈런)을 친 것은 처음이다. 잭 태슈너 등 지토의 뒤를 이은 중간계투요원 3명은 도합 2이닝동안 임무를 완수했고, 9회에 등판한 마무리전문 브라이언 윌슨도 무실점 피칭으로 26호 세이브를 올렸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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