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감당하고 즐기는 대학 선택
명문대 집착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
월남전이 종식된 후 전쟁이 미국 내에서 여러 가지 후유증이 대두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참전용사들의 정신적 장애문제였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자들 중 본국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주제로 ‘Deer Hunt’라던가 ‘종말 앞에서’(Apocalypse Now) 혹은 ‘람보’(Rambo) 같은 영화가 제작되었고, 사회적으로는 정신적 충격 후 증후군 혹은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ease 혹은 Symptom)라는 병이 많이 화제에 오르게 된 것이다.
정신적 충격 후 장애증, 줄여서 PTSD라고 하는 병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주 급박한 상황을 거친 사람들이 그 위험이 제거된 후에도 마치 그 위험이 아직 있는 것 같은 급박감을 계속 느끼는 현상이다. 보통 악몽을 꾼다든가 자면서 식은땀을 과하게 흘리는 정도로 지나갈 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수시로 환상을 본다든가 자기보존 본능을 잃는 정도의 위험불감증에 걸리기도 해서 결혼생활이나 원만한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때도 있다. 때로는 격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자살을 하거나 마약에 중독이 되고 흉악범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후 PTSD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지진이나 화재 등 큰 재해 후에는 PTSD 검사를 거치게 하고 9.11사태의 경우에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PTSD의 검사와 예방적 차원의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예방적 배려는 단지 참전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극한상황 변경을 치른 사람들, 즉 우주비행사들이나 탈북자 같은 피난민들, 또 적지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첩보원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런 극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평상생활로 돌아가기 전에 일정기간의 적응기간을 갖는 것이 좋고, 다년간 선교지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선교사나 중단기 자원봉사자들도 일정기간의 ‘debriefing’을 거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 졸업식을 다녀와서 느끼는 것은 대학 졸업한 학생들, 특히 하버드같이 혹독한 경쟁을 거친 졸업생들은 특히, 일정기간의 적응기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이라는 과정은 아주 특이한 기간이다. 다만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뿐만이 아니라 아직 많은 것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껏 본인의 기개를 펴 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대학을 경험한 분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그 때는 대학을 본과와 예과로 나누어 예과학생에게는 많은 자유를 허락했다고 한다. 예과 때에는 가령 학교 교정 한 가운데서 백주 대낮에 자기 물건을 뻐젓이 내놓고 방뇨를 해도 별로 문제로 삼지 않을 정도로 자유를 허락했다고 했다. 마치 일본 역사소설 대망의 어린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볼모로 잡혀간 집 마루에서 마당으로 도도히 방뇨를 한 것으로 오히려 그의 기개를 높이 평가했듯이 말이다.
이것이 2년의 예과를 거쳐 본과로 올라가면 모든 면에서 성숙해지고 학문도 깊어져서 그 때부터는 고개를 숙인 벼같이 내실을 기해간다고 말해주신 기억이 난다. 물론 요즘은 대학이 상학이 아니라 전문화가 심화되어 박사학위도 한 분야의 입문밖에 안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하여튼 대학은 처음으로 부모의 슬하를 떠나는 것이다. 또 여러 다른 환경에서 자란 동료들과 모여서 그 소년시절 때의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며, 격렬한 경쟁을 동시에 거치는 것이니까, 그 충격의 여파는 가히 클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졸업한 딸이 집에 와서 한 달 넘게 있다가 일할 곳으로 떠났는데 그동안 푹 쉬기도 하고 그동안 있던 일들을 회상하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공개하면, 처음 대학에서 다른 아이들과 한참 무슨 제목인가에 대해 격론을 벌이다가 갑자기 그 중 한 아이가 물어오더란다. “네 정의로는 가난한 것이 어느 정도면 가난한 것이고, 부유하다면 어느 정도가 부유하다는 것이냐?”라고. 그래서 “가난한 것은 연 수입이 몇 만달러 미만이고 부유하다면 적어도 연수입이 백만달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대답해 주었더니, 그 때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며 아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라는 것이다.
LA의 공립학교 출신들이 생각하는 가난과 부유는 대부분의 하버드 학생들이 생각하는 빈부의 수준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무지 같이 토론을 했어도 전혀 동문서답 같이 말이 안 통했던 것이다.
우리 아들도 첫 학기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한 말이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좁아?”였는데, 그 사유는 마사의 포도원(Martha’s Vineyard)에 사는 학생의 집에 놀러 갔었기 때문이다. 그 집을 처음 돌아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그 친구에게 “너 정말 이런 집에서 낳아서 이런 집에서 기저귀 차고 다녔었단 말이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집이 너무 크고 격식이 있어서 도무지 잠옷 또는 내복바람으로는 걸어 다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데, 대학을 준비할 때, 우선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견딜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기하는 것이 우선이고, 단지 유명세나 크기나 수준만 보고 결정하지 말고 당사자가 하고 싶은 공부에는 어느 대학이 최적이고 또 과연 겪을 경쟁이 감당할 만한가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울왕의 갑옷과 무기가 목동의 지팡이와 들판의 자갈돌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래도 다윗은 오히려 자갈돌을 택해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얘기가 말해주고 있듯이(사무엘상 17장). 그 유명한 스필버그 감독은 롱비치 주립대학 출신인데, 누구나 부모면 한번 숙고해 볼만한 얘기다.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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