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민주당의 해’이어야 한다. 한 민주당 정치 분석가의 선언이다. 올 대선에서 민주당 승리는 필연이라는 말이다. 반드시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어도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공화당이 2기 연속 백악관을 차지했다. 그러니 흐름으로 보아 이번에는 민주당이라는 게 상식적 판단이다. 거기다가 공화당으로서는 악재에, 악재가 겹쳤다. 이라크 전쟁, 불경기, 그리고 바닥세 인기의 현직 부시 등등. ‘공화당 브랜드’는 분명 경쟁력을 상실했다.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 생각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 유권자 수는 급증하고 있다. 해서 이런 단언까지 나온다. “올 대선은 ‘뉴딜시대’를 연 1932년이나, 레이건 시대 개막을 알린 1980년 대선을 방불케 할 것이다.”
‘올해는 민주당의 해이어야 한다’- 이 말이 그런데 대선 레이스가 본선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이상하게 들려오고 있다. ‘민주당의 해 이어야만 하는데, 그게 어쩐지…’하는 반어적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대세는 민주당이다. 그러면 버락 오바마는 지지율에서 존 매케인을 압도적으로 리드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무렵 오바마는 두 자리 숫자 차이로 앞섰다. 경선 승리 프리미엄이다.
그 격차가 그러나 7월 들어 사라졌다. 뉴스위크지 조사에 따르면 두 후보 지지율은 백중세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들도 오차 범위 내에서 겨우 오바마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이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나. 공화당이 모처럼 이슈 선점에 성공한 탓이다. 그 한 지적으로, 석유문제, 다시 말해 경제이슈에서 공화당이 먼저 승점을 올렸다는 것이다.
석유위기 대응책으로 공화당은 국내 석유시추 금지 해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친환경 입장 고수다. 여론은 국내 석유시추 지지 쪽이다.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갤런 당 5달러 개솔린 값도 바람직할 수 있다는 진보세력의 주장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오바마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분명 감점 요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겨울의 오바마’와 ‘여름의 오바마’가 달라졌다는 점이 보다 큰 감점 요인이다. 오바마는 끊임없이 말을 바꾸고 있다. 계절 따라 달라지고 있는 오바마가 스스로의 지지율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총기 통제를 지지하다가 입장이 변했다. 낙태문제도 그렇다. 공적 자금만 선거비용으로 쓰겠다고 공언하다가 180도 달라졌다. 종교기관을 통한 공공서비스 정책을 갑자기 찬성하고 나섰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청사진도 시시각각 말이 달라져 종잡을 수 없다.
“불과 한 달 반 사이 9개 이상의 주요 이슈에 대해 말을 바꾸었다.” 한 관측통의 지적이다. “정치 기자 생활 60년에 그처럼 원칙을 자주 바꾸는 대권주자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뒤이은 한 노(老) 대기자의 신랄한 비난이다.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예선과 본선은 다르다. 지나치게 진보적 색깔로는 표심을 잡을 수 없다. 때문에 오바마는 말을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문제다.
그 결과 ‘오바마 현상’이 크게 퇴색됐다. ‘타고난 통합자’로 파당적 미국 정치의 구세주일지도 모른다는 ‘영 제네레이션’의 기대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선 레이스는 이제 제2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누가 군 통수권자로 적격자인가, 그 콘테스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 일환으로 오바마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이라크, 이스라엘 등 중동국가 순방에 나섰다. 이 경합에서 오바마는 그러면 귀중한 승점을 올릴 수 있을까.
그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와 스타일’의 정치인이 오바마다. 그런 그가 독일순방 중 계획하고 있는 게 저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을 배경으로 한 연설이다.
“나도 베를린 시민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동서독을 가르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일찍이 한 연설이다. 소련과의 핵전쟁을 각오하고 자유진영 수호를 선언한 현장이 바로 그곳이다. 레이건도 이곳에서 연설을 했다. ‘베를린 장벽을 헐라는 게’ 레이건의 연설 요지.
부시 시니어도 그곳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겸손히 사양했다. 냉전시대의 위대한 전사 레이건, 케네디와 동렬에 서는 정치적 상징조작을 극력 피한 것이다.
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의 연설을 오바마는 스스로 계획하고 나섰다. 벌써부터 비난이 일고 있다. 무슨 자격으로 그곳에 서는가 하는. 그리고 독일정부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라크 방문도 승점이 될지, 패착이 될지 불분명하다. 전세는 분명히 미국 승리로 기울었다. 오바마는 그러나 패배한 전쟁이라는 입장이다. 현장을 보고 나서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이 역시 상당한 모험이다. 진실을 말하면 또 말을 바꾸는 게 되는 것일 테니까.
여름은 오바마에게 어려운 계절인 모양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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