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가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이 있다. 1890년 선교사 존 헤론이 처음 묻힌 이래 한국에 기독교의 씨앗을 뿌린 6개국 외국인 선교사 143명이 묻힌 곳이다.
선교사 뿐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도 묻혀있고 몇대에 걸쳐 안장된 가족들도 있다. 많은 선교사들이 2,30대 젊은 나이에 전염병이나 사고로 숨졌고, 생후 15일만에 혹은 한살도 되기 전에 죽은 아기들의 묘도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와 연세대의 설립자인 언더우드 일가는 4대에 걸쳐 7명이 잠들어있고,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교회와 배재학당 창립자 아펜젤러, 이화여대 설립자 스크랜턴 대부인, 평양 숭실대학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E.T.베델, 백정을 해방시킨 새무얼 무어, 2대에 걸쳐 의료선교에 헌신한 로제타와 윌리엄 홀 일가 6명 등 황량하고 미개하던 이 땅에 와서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들의 피땀과 유골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지난 주 한국 방문길에 양화진 선교사 묘원을 찾았다. 장마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지만 순교자들의 묘비 앞에 서자 서늘한 전율과 뜨거운 감동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 신앙의 시작, 한국 기독교의 처음 영혼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 양화진이 처음부터 이렇게 잘 정리된 묘지공원의 모습을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 암흑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총탄 자국이 난무하고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폐허가 되었고 한국인의 관심 밖에 잊혀져 오랫동안 황폐했던 땅이었다.
1985년 일부 기독교 인사들의 노력으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발족되어 쓰레기를 치우고 묘지 관리를 위한 ‘한국선교기념관’을 지었으나 이후에도 제대로 된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념관은 외국인교회인 서울유니온교회가 20여년간 독점 사용하면서 한국인은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선교사가 아닌 일반 외국인과 한국인들에게도 묘지를 판매하는 등 주객이 전도된 것은 물론이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는 뒤늦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화진 묘원을 관리하고 운영해줄 ‘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그 쉽지 않은 임무를 이재철 목사에게 맡겼다. 그러니까 양화진이 지금과 같은 공원묘지로 정비된 것은 불과 3년전, 정확히 말하면 100주년기념교회가 탄생하고 이재철 목사가 담임으로 취임한 이후부터다.
지난 3년동안 이목사와 100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 묘역의 관리와 운영의 주체를 바로 세우느라 심한 저항과 중상모략에 부딪쳤다. 그러나 온갖 비방과 구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는 100년이 넘는 양화진의 역사를 찾아내 토지법과 묘지에 관한 규정, 소유권과 명의이전, 기념사업회의 출범과 기념관 건립의 의도를 재구성하여 양화진의 주권을 되찾았다.
지금 양화진은 말쑥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마포구청과 뜻을 합친 100주년기념교회는 거의 30억원을 들여 홍보관을 건축하고 아름다운 묘원을 조성한 것은 물론 이곳이 사적지로 지정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존경해온 이재철 목사가 3년전 100주년기념교회 담임으로 목회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부터 그 이유가 늘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교회이기에 국내외 수많은 교회의 청빙을 사양하고 목회현장을 떠났던 이 목사를 붙들어 세웠을까 무척 의아했던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백발의 노목사들이 몇달간의 기도 후에 자신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양화진을 부탁했을 때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목사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합정동에서 20여년을 살아온 이재철 목사는 거의 매일 양화진을 찾아 기도했다고 한다. “묘지와 묘지 사이에서 길을 걸으며, 때로는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나라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고도 긴 대화를 주님과 나누었는지 모른다”고 그는 고백한다. 누구보다 양화진을 사랑하고 그 황폐해감에 안타까워했던 그가 100주년기념교회를 맡은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의 역할을 ‘양화진 묘지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개신교의 출발점이자 정점인 동시에 선교 200주년을 향한 못자리판인 양화진의 묘지기로서” 선조들의 신앙과 정신을 계승하고 새 세대에 전수하는 봉사와 헌신의 밀알이 되겠다고 한다.
양화진은 한국 개신교의 첫 번째 성지다. 많은 기독교인이 이곳을 방문하여 피 묻은 복음의 정수리, 한국 기독교의 출발 지점에 서서 초심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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