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양공이 초군을 공격했다. 강가에 먼저 도착한 송나라 군대는 초군이 늦게 도착해 강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참모 목이가 공격의 기회라며 공격명령을 요구했으나 양공은 ‘인의’를 내세우며 듣지 않았다. 초군은 강을 건너 전열 정비를 시작했다. 목이가 참다못해 다시 공격을 진언했지만 “전쟁도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양공의 묵살만 돌아올 뿐이었다.
상대가 전열을 가다듬자 양공은 공격명령을 내렸다. 결과는 송나라의 참패. 양공은 이때 입은 부상이 악화돼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양공의 대부 자어가 탄식했다. “싸움은 이기는 게 목적이다. 이렇게 될 바에야 처음부터 노예가 되는 게 낫지 않았던가.” 후세 사람들은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양공의 이 같은 고집을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출범 때부터 전임정권과 차별화 한답시고 실용외교를 내세우며 일본과의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이명박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호되게 한방 맞았다. 일본이 중학교 교과서 학습지도 요령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실은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기하자 부랴부랴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런 대응이 뿔난 국민감정은 어느 정도 달래줄 지 몰라도 일본을 혼내는 훈육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국제무대에서 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살벌한 싸움이다. 그래서 외교를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야 할 외교전쟁터에서 상대의 입장을 먼저 알아서 헤아려 주는 듯한 순진함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 방문 기간에 “나는 일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며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멋진 말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이런 말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고스란히 감내하겠다면 뭐라 그럴 사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국민의 자존심과 국익이 달린 문제가 되면 얘기는 다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인식이 실용주의인지는 몰라도 외교에서는 한시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매에 쪼이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만큼 상대 또한 실용의 이름으로 낯빛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내세우며 일본에 유화적으로 접근했다. 일본은 이런 한국에 기습적으로 뺨따귀를 날렸다.
송의 양공이 자기 목숨까지 버리며 인의를 구현했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그를 훌륭한 지도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실용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거창한 도덕적 명분을 내세웠든 아니면 실용을 내세웠든 잘된 외교, 잘못된 외교는 단지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손자도 말했지만 싸움의 기본은 상대를 정확히 아는데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남들은 다 아는 일본을 너무도 몰랐다. 한일관계에 있어 독도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때만 되면 찾아오는 장마처럼 지겨울 정도로 논란을 반복해 왔다. 일본은 잊혀질만하면 이 문제를 들고 나와 한국을 찔러보곤 했다.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번 일은 이미 예견됐다. 자기가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상대 역시 그러리라 여기는 태도는, 안타깝지만 성직자에게는 몰라도 외교 전쟁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독도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싸움 전략은 한마디로 ‘상대 흥분시키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런 논쟁으로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 어차피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일본의 도발이 못 먹는 감 찔러보기나 벌집 쑤셔놓기 일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보다 더 현실적인 정치적 속셈이 있어 보인다. 이미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자국 내 우경화를 촉진시키자는 것이다. 한국이 흥분하면 할수록 그만큼 일본 내부의 국수주의 세력은 강하게 결집하게 된다.
상대 의도를 눈치 챘다면 바람직한 대응법은 저절로 나온다. 정부차원에서는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흥분을 조금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자칫 일본이 의도하는 페이스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불거진 독도사태를 보면서 떨쳐 버리기 힘든 것은 한국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이른바 ‘뉴 라이트’ 사관에 대한 우려이다.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힘을 얻어가고 있는 일련의 상황변화를 한국 쪽의 ‘내응’으로 오해하고 일본이 외교적 도발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한낱 쓸데없는 기우이길 바라지만 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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