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궐기’할 때가 왔다. 일본이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민은 물론 재미동포들의 분노도 솟구치고 있다. 일본 규탄 집회가 모국에서 잇따르는 가운데 워싱턴 지역 한인회들이나 단체에서도 곧 행동에 나설 움직임이다.
일본의 도발적 행위를 꾸짖는 목소리는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라는 한결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유일한 근거는 침략과 탐욕일 뿐”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20세기 동아시아를 유린한 일본의 후안무치를 생각하면 일장기를 불태워도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은 심정이다.
하지만 연례행사가 돼버린 분노의 궐기가 ‘독도’와 ‘다케시마’ 사이에 놓인 위험한 간극을 좁힐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미 의회 도서관에서 ‘독도’를 다른 명칭으로 변경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는 이미 독도문제가 일본의 의도대로 국제 분쟁화 돼 있음을 의미한다.
미 국무부도 14일 브리핑에서 “이 문제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면서 “이 문제는 양국의 오랜 영토 분쟁과 관련이 있다”는 논평을 냈다. 비록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조심스레 접근했지만 미 정부도 ‘영토 분쟁’의 시각에서 독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한민족의 불변의 믿음이 국제사회에서는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수십 년의 궐기와 분노로도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에 대한 정당성을 지켜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여기에는 한국 정부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직접적으로는 무리한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한 박정희 시대의 악업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몇 해 전 공개한 한일협정문서는 일본이 왜 ‘다케시마 문제’를 집요하게 꺼내는 지를 명확히 알려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대일 청구권의 포기와 함께 ‘독도’가 우리 땅임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한일협상을 진두지휘한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국교 정상화성사를 위해 독도문제를 협상 안건이 아닌 ‘제3국이 거중 조정하는 안’을 일본 측에 제시해 독도를 ‘한일간 협상거리’로 전락시켰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제3국 조정에 맡겨버리는 남의 땅”으로 만든 것이다. 김종필의 뒤를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를 마무리한 김형욱 전 정보부장도 그의 회고록에서 ‘독도협상’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저자세를 간파한 일본은 아예 독도를 폭파해 없애버리자는 주장까지 펼쳤다. 결국 한일 협상과정에서 미합의로 남겨진 독도 안건은 이후 처리해야 할 양국간 주요 ‘현안’으로 남게 됐다.
일본이 그토록 ‘다케시마’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국제사회로 들고 나오는 근거는 바로 한국 정부의 굴욕적인 미완의 협상에 기인한 셈이다.
독도 문제가 미국에까지 비화되고 다시 쟁점화 됐다. 그러나 이 역사적 과정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대두되지 않는다. 독도문제에 대한 해법이 여기서 출발해야 함에도 감정적인 기류만이 출렁댄다.
안이한 대일외교로 일본에 한방 먹은 이명박 정부는 저네들의 영토 도발에 손 놓고 있는 분위기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일본의 역사왜곡 관련 전담팀을 없애고 산하기관으로 업무를 이관한 사실은 새 정부의 저급한 역사인식과 해결의지를 보여준다.
한편으론 촛불시위와 금강산 악재에 시달리던 정부가 열도로 향하는 분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날선 지적도 나온다.
한국민과 재미동포들의 ‘순수한 궐기’가 독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분노의 목소리만으로 역사적으로 꼬인 이 실타래를 풀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어차피 독도 문제가 단기해법으로 정리될 사안이 아니라면 일본의 영토 분쟁 유도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단호함은 일장기를 태우며 분노를 삭이는 방식이 아닌 정부의 당당한 대일외교 자세와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을 의미한다. 독도 관련 국제법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정부 내 상설 태스크 포스 운영도 권할 만하다.
일본과 전쟁을 치를 의지가 없으면 지겹도록 되풀이 되는 이 숙명적인 불화를 적어도 완화시킬 의무가 정부에 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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