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출 아이 뒷정리 만감 교차
부모에게는 또 다른 인생의 시작
그렇게도 고대하던 졸업식도 끝나고 여행도 끝났다. 아들 둘은 각자 갈 곳으로 가고 딸 둘과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은 잠깐 집에 들르고 싶다고 각자 다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졸업한 딸은 이제 완전히 사회인으로써 유럽을 거점으로 세계를 무대로 일하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집에서 마지막으로 할일이 있다고 일을 시작하는 것을 한 달을 미루고 옛 둥지를 찾아 온 것이다.
그 전에는 그래도 방학 때마다 설사 이곳저곳으로 가기 전에 다만 잠시 만이라도 집에 들러서 가곤 했지만, 이제는 마음의 각오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짐을 다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그래도 쌓아 둘 것은 아주 잘 정리해서 새 주소가 잡힐 때까지 상자에 넣어서 차고에 넣어 놓겠다고 한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거라지 세일’이다.
마침 이번 여름에 또 한 번 더 인도에 다녀오고 싶다며 선교기금을 마련하는 취지에서 바로 근처에 살고 있는 조카아이도 거라지 세일을 한다고 물건 있으면 보태달라고 해서 위치상으로 아주 거라지 세일에 적합한 우리 집 앞 잔디밭에서 하자고 했다.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모아온 물건을 합쳐서 하기로 하고 그날 올린 매상은 모두 선교기금으로 쓰라고 했더니 너무나 좋아했다. 그런데 당일 날에는 수고하는 애들을 위해서 그 부모가 신이 나서 간식이니 그 비싼 스토박커피를 날라대어서 동네잔치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았나 우려도 되었지만 모처럼 이웃들과 사귀는 기회도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거라지 세일을 하게 되면서 각방 옷장과 서랍, 그리고 차고에 그냥 쌓아 놓았던 물건들을 속속들이 다 마당에 내어 놓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감흥을 맛보게 했다.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지막 병상에서 쓰시던 1회용 침대받이, 버리고 주고 했지만 그래도 하나 남은 애기 침대, 이 모두 부품이 하나 없어서 우선 차고 꼭대기에 올려놓았다가 그냥 세월을 지내버린 것이다.
처남네가 신혼 때 냉장고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잠깐 맡겨둔다고 한 냉장고가 지금은 우리보다 훨씬 큰 집에 살면서도 아직 여기 있다. 또 그 옆엔 여행을 좋아하시던 아버님이 두고 가신 각종 지도들이 있고, 그리고 그때 찍으신 슬라이드를 보기위한 환등기와 팔순잔치, 금혼식 때에 찍은 기념비데오가 담긴 상자도 있다. 그래서 계산해보니까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는 이미 나도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끔찍한 얘기다.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지나간 세월의 정체를 체감케 해준다.
선반 위를 훑어보니 플라스틱 백에 겹겹이 쌓여있는 한복도 나왔다. “맞아, 그래도 옛날엔 명절이면 한복을 입었었지” 그러나 꺼내서 입어보니 어머니의 배려 덕에 옷은 잘 보전은 되어 있었지만 이 몸은 턱도 없이 불어 있었다. 또 신혼 때는 거의 알몸으로 자다가 나이가 들면서 더 따듯한 이불이 필요해져서 차고로 밀려난 이불들도 있다. 또 요즘은 I-Pod 에 밀린 멀쩡한 CD와 그래도 꽤 거금을 들여 장만한 CD플레이어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오래전부터 CD도 뒷전으로 밀린 것은 이제 CD도 메모리스틱이나 I-Pod 등에 밀린 것이다. 쓰지 않은 블랭크CD도 여러 뭉치가 나왔다. 카세트 듣던 때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젠 CD도 이렇게 밀리다니! 3년 전에 산 차에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CD플레이어가 없는 차가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 같다.
결국 며칠을 차고를 친다고 하면서 치기는 커녕 여기서 저기로 옮겨놓으면서 시간만 보냈다.
애들이 읽던 책들은 오래전에 다 주위사람들에게 주거나 도서관에 기증을 했지만 애들이 받은 상장들이나 작품들은 아직도 쌓여있다. 이것도 우선은 상자에 넣어 두지만 언젠가 가까운 장래에 다 버려야 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리로 저리로 옮겨만 놓은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묻혀 살지 않고 새롭게 제2, 아니 제3의 인생을 시작하자고 다짐하고 있는 우리부부이기에 결국 엄단을 내리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것은 몽땅 다 내어 놓고 거라지 세일을 했는데 , 당일에는 교도소 예배가 있는 날이라 분주하게 준비하는 애들을 뒤로하고 갔다 왔다. 오자마자 어땠냐고 물었더니 “예상을 넘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좋아하는데, 차고를 열어보니 아직도 많은 물건이 다시 비집고 들어와 있다.
안 팔린 것도 있지만 누군가가 “그래도 이것만은…” 하고 다시 끌고 들어온 것 같은 것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손길이 밉지만은 않고 또 팔리지 않았다고 섭섭하지만은 않은 것은 필자도 결국 센티멘털리스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증거인가 보다.
이 일을 치루면서 생각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제임스 답슨(James Dobson)이라는 라디오 미니스트리 호스트다. 그분은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스탠포드재학당시에는 테니스선수로 활약해서 많은 트로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대학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창고 한구석에 학창시절에 탔던 트로피들을 가져가라는 것이다. 먼지가 잔뜩 쌓인 채로 뒹굴고 있는 트로피는 이미 그 트로피를 들고 있는 본인과는 전혀 다른 시대의 물건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참동안 회상에 잠겼었다고 한다. 그분이 그 트로피들을 가지고 왔는지 그냥 버리라고 놔두고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분의 심경으로는 어쨌든 간에 결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경주를 할 때에라도 그 경주의 끝을 염두에 두고 시작을 하라고 하는 말이 기억난다. 자녀들을 키우는 것은 분명 보람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고 그 후에는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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