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연봉만 1,553만3,970달러였다. 천만달러 단위로 놀면서 무슨 3천달러고 9백달러고 7십달러냐, 그게 쩨쩨하고 구차하게 보일 정도로 그의 연봉은 천문학적이었다. 그가 작년 정규시즌 경기에 나선 건 126차례였다. 소숫점 이하 세 번째부터 싹둑 잘라내면 그는 게임당 12만3,285달러 하고도 47센트를 번 셈이다. 126게임에서 총 340차례 타석에 나선 걸로 기준을 바꾸면, 안타를 치든 홈런을 치든 삼진을 먹든 볼넷을 고르든 상관없이 그는 한번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4만5,688달러15센트를 벌었다. 작년에 친 안타(94개)를 지렛대로 삼으면 그의 안타 하나 가격은 자그마치 16만5,255달러였다. 그의 전매특허인 홈런(28개)으로 치면 더욱 아찔하다. 한방에 55만4,784달러64센트쯤 된다.
배리 본즈. 오는 24일 만 44세 생일을 맞는 이 가공할 홈런왕 얘기다.
작년 여름 행크 아론이 보유중이던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최다홈런기록(755개)을 30여년만에 갈아치우고, 그 뒤에도 덤으로 몇차례 더 홈런포를 생산한 본즈(총 762개)는 정작 대기록의 여름농사 지나 수확의 계절 가을이 되자 된서리를 맞았다. 방출. 정규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인 9월 하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이 내민 것은 상찬의 축배가 아니라 퇴출 통지서였다.구단주는 안녕이라 말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고 제법 따스하게 예를 갖추면서도 15년 간판스타 본즈를 내보낼 수밖에 없음을 사뭇 싸늘하게 못박았다. 야구를 위해 자이언츠를 위해 본즈가 한 일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주저리주저리 고하는 구단측의 예찬성 회고는 어차피 떠나보낼 이에 대한 마지막 예우 내지 다시는 못올 길을 떠나는 고인에 대한 조사 같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본즈는 눈물을 감췄다. 투수들의 독기어린 도전과 숫기없는 회피를 숱하게 헤쳐가며 메이저리그에 우뚝한 홈런봉 두 곳을 다 접수한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섭섭한 속내까지 끝내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구단측이 본즈를 칭송하면서 밀어냈듯이, 본즈는 구단측을 존중하면서 비판했다. 고별성명서에서다. 야구는 엄연히 비즈니스인 만큼 구단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그는 자이언츠를 위해 15년동안 모든 것을 다 바친 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울분을 깔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자이언츠는 나를 버렸지만) 월드시리즈 챔피언 링을 향한 나의 항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2008년. 봄 너머 여름이 깊도록 그의 항진은 없다. 출발조차 없었다. 어디로 간다더라 어디서 탐낸다더라, 간간이 소문만 돌았을 뿐, 그를 받아들인 구단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가 뉴욕 메츠로 가리란 소문이 돌았으나 메츠 구단은 관심없다고 무질렀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완력이 예전만 못한 건 분명하지만 썩어도 준치, 본즈의 반토막만 돼도 어서 옵쇼 난리일텐데 구단들은 왜, 더군다나 본즈가 최저연봉도 좋다 뛰게만 해다오 하소연을 하는데도, 그를 본체만체 할까. 그래서다. 구단들의 본즈 안받기 담합설은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 본즈의 요청을 받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우려성명을 발표하고 예비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없으니 선수노조의 본즈 일병 구하기는 그 쯤에서 멈출 수밖에.
본즈의 홈런포가 졸지에 휴화산이 되니 본즈의 대기록도 덩달아 휴화산이 됐다.홈런행진은 작년 9월5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전에서 쏘아올린 762호를 끝으로 마침표 같은 쉼표 상태다. 그달 26일 샌디에고 파드레스와의 홈경기는 고별전 아닌 고별전이 됐다. 하필 그날 본즈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뛴 이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은 고사하고 3타수 0안타에 그쳤다. 정상가동 상황이라면 올해 너끈히 다다랐을 3,000게임(2,986게임), 10,000타석(9,847타석), 3,000안타(2,935안타), 777홈런(762홈런) 고지들과의 거리는 단 한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로 옮기기 이전인 1990년 내셔널리그 MVP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본즈를 장식했던 MVP며 골드글러브며 홈런기록이며 화려한 장식품들은 불과 몇개월만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되고 있다.
요즘의 본즈에게, 어디든 얼마든 그저 뛰게만 해달라는 저 속타는 야구열정 말고도, 활화산 같은 게 있다. 대충 두가지인데 둘 다 반길 건 전혀 못된다. 하나는 속절없이 나이테만 늘어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 결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의 사슬이다. 특히 뒤엣것은 본즈의 찬란한 커리어를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다.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는 것만 해도 그의 명예는 찌그러졌다. 익히 알려진 대로 금지약물 복용의혹 때문이다. 실은 그 자체보다 속을 빤히 알고 덤벼드는 수사당국에, 그리고 재판부에 거짓말을 했다는 죄값이 더 크다. 본즈의 초라한 오늘을 자초한 결정적 단초는 이것이다.
본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메이저리그 데뷔초기 호리호리했던, 그래서 홈런치기보다 베이스훔치기를 더 잘한달 정도였던 그가 30대 접어들며 몰라보게 왕덩치(작년 MLB 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키 6피트2인치에 몸무게 228파운드)로 변하면서 시작됐다. 나이가 들면 대개들 몸집이 커지는 것 아니냐고 이해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본즈의 몸집팽창은 상식수준을 넘는다며 금지약물 복용의혹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림잡아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는 금지약물 복용금지 규정이 지금처럼 까탈스럽지 않았다. 프로선수들이 근육강화제를 복용하는 건 거의 상식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본즈가 그걸 복용했다고 해서 크게 흠이 될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규정이 엄격해져 의심받던 선수들이 줄줄이 고해성사를 하며 금지약물에 굿바이 선언을 하던 때 본즈가 끝내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었다. 특히 본즈 직전에 한시즌 최다홈런을 쳤던 마크 맥과이어가 시중에서 파는, 따라서 금지품목에 들지 않은 근육강화제를 복용한 걸 자백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을 감안해 이를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그럴수록 본즈에 대한 양심선언 압박은 거세졌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으나, 기자들의 집요한 본즈+약물 관계추적은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만만한 본즈의 태도에 거부감을 느낀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여하튼 본즈의 입은 더욱 굳게 닫혔다. 그럴수록 의혹은 부풀었다.
2003년 9월에는 미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본즈의 체력담당 트레이너이자 소꿉장난 친구인 그렉 앤더슨의 집을 덮쳤다. 거기서 다량의 금지약물을 압수했다. 앤더슨으로부터 본즈의 혐의를 뒷받침할 자백까지 받아냈다. 벌링게임에 있는 금지약물 제조회사의 이름을 딴? ‘발코(BALCO) 스캔들’이다. 이 회사의 총책 빅터 콘티는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첨단(?) 약물을 제조해 야구선수뿐 아니라 육상 NBA NFL 등 다른 종목까지 비밀고객들을 다수 확보해 수년간 장사를 해온 것이 들통났다. 한때 남자100m 세계최고였던 콜린 몽고메리도 발코스캔들 덫에 걸려 트랙을 떠났다. 오클랜드 A’s에서 뉴욕 양키스로 옮겨간 홈런타자 제이슨 지암비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해성사를 했다. 본즈와 절친한 그는 본즈의 혐의를 넌지시 암시하는 발언까지 했다.
그럼에도 본즈는 부인했다. 어쩌면 그는, 타석에선 도무지 타이밍을 맞춰주지 않으려는 투수들에 맞서 찰나적 감각으로 기막힌 타이밍을 잡아 홈런을 제조하곤 했던 그는, 정작 그 많은 기회의 타이밍을 거푸 놓쳤다. FBI는 그를 4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금지약물 복용 자체는 소추대상이 아니었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과 발코스캔들 관련 증인심문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위증과 정상적 재판진행방해 혐의가 돼 본즈를 옭아맨 것이다. 본즈가 홈런방망이를 놓은 사이에 거짓말 혐의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기소혐의도 새끼를 쳤다. 무려 15개로 늘었다. 재판은 샌프란시스코 소재 미연방법원에서 진행된다. 유죄가 인정되면, 본즈는 메이저리거들의 명예의 전당 대신 보통사람들도 꺼리는 불명예의 감옥으로 가야할지 모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단거리 3관왕 매리언 존스가 바로 그 케이스다. 그녀는 혐의는 비슷하지만 가짓수는 본즈보다 훨씬 적은데도, 6개월 실형을 언도받고? 올해 봄부터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세계육상경기연맹(IAAF)은 그가 발로 일군 거의 모든 ‘기록적 기록들’을 지워버렸다.
본즈의 앞날은 기어이 꼬일까, 극적으로 풀려질까. 이것만은 분명하다, 본즈의 어제와 오늘은 거짓말의 마이너스괴력이 홈런포의 플러스괴력보다 훨씬 독하다는 걸 웅변하고 있다는 것만은.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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