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통치를 끝장내게 한 역사적인 87년 ‘6.10 민주항쟁’을 상기하면서 평화적인 촛불문화제가 서울 밤거리를 수놓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시작으로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주요 종단들이 가세함으로써 촛불문화제는 명실공히 각계각층을 망라한 ‘국민의 소리’가 됐다.
쇠고기 수입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이지만, 굴욕적인 저자세 협상으로 인한 불평등 협상에 더 큰 초점이 맞춰졌다고 봐야 한다.
보수언론과 정당, 그리고 해당 정부 기관에서는 촛불의 배후가 의심스럽다며 국민이 무지하다거나 친북좌파의 선동 때문이라고 책임회피를 한다. 때로는 사회와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 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연극도 벌인다. 가끔 지난 정부 탓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워싱턴 지역에서 발행되는 주요 일간지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촛불시위에 대한 비판글이
실린다. ‘여기는 서울, 데모의 천국’, ‘안타까운 서울의 모습’, 그리고 ‘쇠고기 사태 적극 대응하라’ 등의 제목으로 촛불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이들은 천편일률 미국 쇠고기는 안전한데, 싫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주된 논리이다. 또한 ‘광우병 괴담’으로 반미운동과 반정부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촛불의 배후 운운하며 툭하면 멀쩡한 사람을 친북좌파로 몰아 희생양으로 삼는 버릇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미 독재자들이 차례로 즐겨 써먹던 편리한 ‘올가미 덫’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공’이라는 도깨비 몽둥이가 산천초목을 부르르 떨게 하던 독재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이 기막힌 요술 홍두깨는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으며 불구자로 만들었는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다.
대한민국과 동맹국인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 건강하고 더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비폭력, 평화’를 앞세우고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북한만이 좋다면 광우병이 없는 북한으로 가서 살라는 말은 민족을 모독하고, 민족을 분열하려는 도전이라고 보여 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미국과 대등하고 평등한 차원의 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이거늘 이것을 ‘반미’라고 딱지를 붙이는 행위야말로 스스로 사대굴종 식민지 근성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또한 이성을 잃은 시위자가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휘둘러 질서를 어지럽게 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것을 정당화한다거나 옹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폭력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문제의 초점을 흐리거나 희석시키려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지난 7월4일 국제 엠네스티 조사관이 촛불집회와 관련된 인권상황(주로 경찰의 과잉진압)을 조사코자 내한했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어떻게 ‘촛불문화제’를 다루고 평가하는지를 들여다보면 공통된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일제히 촛불 속에서 불타는 것은 쇠고기 문제를 구실로 그동안 쌓인 분노라는 진단을 내린다. 영국 ‘더 타임스’, 독일 ‘자이퉁’, 미국 ‘월스트릿 저널’을 포함, 특히 ‘워싱턴 포스트’(6월 11일자)는 “서울에서 분노의 불꽃이 타오르다”라는 머리기사로 촛불시위를 크게 보도했다. 불란서 ‘레밸리용’은 “국민이 정치권을 불신한다”는 내용이었고, 일본 ‘아사히’ 신문은 “촛불의 핵심 요구는 경제를 살리라는 것인데 정부는 이미 그 신임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된 시위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 전체를 비판하는 시위로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신경보’는 “정부의 지나친 친미 성향, 청와대의 인사 실책, 경제난 등에 대한 총체적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논평했다.
정부의 경제구조개혁에 대한 거부, 위에서 내려 먹이는 군사통치 방식의 거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불만, 고의적으로 조성하는 남북관계의 경색에 대한 반항, 총체적 국제외교 실패에 대한 원성 등 온갖 불평불만이 분노가 되어 촛불로 불타오르는 것이 바로 촛불시위의 전부라는 결론을 내려도 무리한 말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촛불의 배후를 친북좌파로 지목하고 미국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한 이 대통령이 이번에는 “대한민국을 미국에 봉헌하도록 알현하려는 것”으로밖에 달리 볼 도리가 없다. 촛불의 진짜 배후는 힘없고, 춥고, 배고픈 백성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 한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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