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스턴, 지글러, 프티 등 맹활약
이치로 스즈키(시애틀 매리너스). 어느덧 30대 중반(73년10월생)이 된 이 작은 거인(5피트11인치/172파운드)의 타격감각은 타고났다. 일본에서 7년 연속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뒤 미국으로 날아온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7년 연속 200안타 이상 제조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엊그제 일요일(6일)까지 총 1,206게임에 출장해 5,142타석에서 1,703개의 안타를 쳐냈다. 그중 2루타가 188개, 3루타가 60개다. 이치로 하면 단타가 떠오르지만 홈런도 70차례나 쏘아올렸다. 누상에 나갔다 하면 쉬 사그라지지 않는다. 거의 절반은 끝내 홈 플레이트를 밟는다(843득점). 타점(499)은 하나만 더하면 500고지다. 7년만에 가장 덜 두드러진다는 올해 안타생산량만 따로 떼어도 이치로는 이치로다. 7일 현재 113개로 이 추세라면 올해도 200안타 고지를 넘으리란 추산이다.
안타만 잘 치는 게 아니다. 발이 엄청 빠르다(통산 도루 306개). 실은 그 빠른 발 덕분에 다른 선수 같으면 안타 안될 안타가 많다. 팔은 팔대로 무척 강하다. 외야 깊숙한 곳에서 홈까지 거의 직사포로 던진다. 일본에서 고교까지 명투수로 활약했고 프로에서도 이따금 맛뵈기로 피칭실력을 선보였던 이치로다. 그가 메이저리그 데뷔 초기 그의 송구능력을 모르고 어중간한 단타에 2루에서 홈까지, 혹은 1루에서 3루까지 뛰다 횡사한 주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일본계 선수로는 유일하게 퍼스트 네임을 등록상표로 달고 뛰는 이치로 스즈키. 그가 7일 밤 오클랜드의 매카피 콜러시엄에서 이치로식 야구의 별미를 선보였다.
애나하임(LA 에인절스) 찍고 시카고(화이트삭스) 돌아 오클랜드로 귀환한 A’s가 시애틀 매리너스를 불러들여 벌인 주초 4연전 1차전 1회초. 선두타자 이치로는 대나 이블랜드의 초구를 그대로 흘려보낸 뒤 2구를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두들겼다. 홈 플레이트 앞에서 튕긴 공은 큰 원을 그리며 1, 2루 사이로 향하는 평범한 땅볼. 그러나 A’s 야수들은 바빴다. 이치로의 발 때문이었다. 1루수 대릭 바튼은 잽싸게 1루로 들어가 포구자세를 취했고, 2루수 마크 엘리스는 마치 빠뜨린 공 다시 잡듯 서둘러 1루로 뿌렸다. 간발의 차이로 이치로는 아웃됐다. 골치아픈 이치로를 처리한 A’s 선발투수 이블랜드는 잠시 방심했는지 이후 매리너스 타자들에 연속 공략당했다. 그 끝에 리치 색슨에게 3점홈런까지 맞았다.
2회초. 이번에는 진짜 이치로 타격이 나왔다. 1사후 주자없는 상황에서 다시 이치로가 방망이를 곧추 세우고 왼쪽타석에 섰다. 왼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오른발을 거의 빈(empty) 상태로 투수쪽으로 가볍게 내민 특유의 타격자세. 이블랜드는 1회 첫 대결과 마찬가지로 낮게 제구된 체인지업을 던졌다. 슬랩(slap). 이치로의 응전은 1회초와 똑같았다. 가볍게 뺨을 후려치듯 그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공을 때렸다. 때린 게 아니다. 방망이를 슬쩍 던지다시피 탁 갖다대는 밀어치기였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고 좌익수 앞으로 구르는 안타. 해설자는 저런 스윙은 가르칠 수 없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A’s 입장에선 다행스럽게 후속안타가 없어 이치로의 안타는 점수열매를 맺지 못햇다.
9회초. A’s가 전세를 뒤집어 4대3으로 앞선 가운데 1사후. 이치로가 네 번째로 타석에 섰다. A’s 구원투수 휴스턴 스트릿은 왼손타자 이치로의 밀어치기를 의식해 90마일 후반대 강속구를 안쪽으로 꽂았다. 이치로는 오른발을 뒤로 빼며 가볍게 갖다맞혔다. 1구 파울, 2구 파울. 스트릿은 똑같은 코스에 똑같은 구질로 승부했다. 탁. 공은 첫 타석 때 후려친 것과 마찬가지로 홈 플레이트 앞에서 튀었다. 방향만 틀렸다. 이번에는 유격수와 3루수 중간쯤 어중간한 지점 얕은 타구였다. 이치로는 맞는 순간 오른발을 1루쪽으로 뗀 이치로는 죽어라 뛰었다. 유격수는 뒤를 받치고 3루수 잭 해나핸이 앞으로 내달리며 공을 낚았다. 이치로는 벌써 1루에 3/4쯤 가까워졌다. 해나핸은 마음이 급했다. 마음이 급하니 발의 스탭과 손의 스로잉 타이밍이 엉켰다. 그래서 공 잡은 오른손을 왼손 글러브에 탁탁 치며 호흡을 맞췄다. 그 사이 이치로는 1루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걸 보며 한층 마음이 급해진 해나핸의 어깨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갔다. 악송구. 그게 아니라도 1루수 대릭 바튼이 공을 받기 전에 이미 왼발로 1루를 찍고 통과한 이치로는 공이 뒤로 빠지자 즉시 2루까지 치달았다. 남들 같으면, 정상적 수비였다면 아웃된 뒤라도 1루를 밟는 것은 고사하고 그 몇발치 이전에 뜀박질을 중단하고 덕아웃으로 물러섰을 얕은 내야땅볼로 2루타 효과를 냈다.
이치로 효과다. 그가 뜨면 투수도 야수들은 긴장한다(결과가 좋으면 긴장이 아니라 집중했다 한다). 긴장은 까딱 에러를 부른다. A’s에 더 이상 화는 미치지 않았다. 매리너스 후속타자들이 이치로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데 실패했다. 스트릿은 이치로 다음 호세 로페스에게 볼넷을 허용, 무사 1,2루의 위기를 맞았으나 타점의 사나이 라울 이바네즈를 3루와 홈플레이트 사이 플라이로 잡아내고 마지막 타자 에이드리언 벨트레를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4대3 승리를 지켰다.
선발투수 이블랜드는 5.1이닝동안 삼진아웃 하나 없이 홈런 포함 9안타를 얻어맞고 볼넷을 4개 허용하며 3실점을 했으나, 그가 위태위태 마운드에 선 가운데 타자들이 4점을 뽑아준 덕분에 시즌 7승째(5패)를 챙겼다. 이블랜드는 이날까지 3게임 연속 선발승을 거뒀다. 신인 계투요원 브랫 지글러는 독특한 사이드암 피칭으로 2이닝동안 1안타만 내주고 무실점, 밥 게런 감독의 두둑한 신임을 얻었다. 뒤이은 앨런 앰브리(0.2이닝 0실점)와 휴스턴 스트릿(1이닝 0실점)의 뒷받침도 좋았다. 2002년 애나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몫을 했던 매리너스 선발투수 재럿 와시번은 8이닝동안 혼자로 고생(7안타 4실점)했으나 1회초 벼락 3점 이후 추가점수가 없어 패전투수가 됐다.
새크라멘토의 A’s 산하 트리플A팀에서 해뜰날을 기다리다 주전유격수 바비 크로스비가 부상자명단에 오르는 바람에 지난주 수요일(2일) 부랴부랴 부름을 받은 신인 웨스 뱅크스턴은 2회말 추격의 불씨를 당기는 2루타에 이어 첫 득점을 올리더니 5회말에는 투런홈런까지 쏘아 역전승의 튼튼한 디딤판이 됐다. 뱅크스턴의 홈런 뒤 라이언 스위니의 적시타로 결승득점을 올린 그리고 리오 프티 역시 신인이다. A’s는 신인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2007년 7월5일 이후 꼬박 1년2일만에 콜러시엄에서 매리너스를 격파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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