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타임스와 블룸버그가 공동실시한 최근 원유가 급등의 원인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면 부시행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이 29%, 정유회사들의 과당이익이 25%, 그리고 원자재투기세력이 13%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전세계적 원유수요의 증가가 원인이라는 대답은 11%에 머물고 있다.
시장경제현상으로 생각하는 응답이 11%밖에 안되는 반면 누군가 잘못해서 유가가 오른다는 인식은 67%를 차지하고 있다.
각도를 바꿔 90년대 말 나스닥시장이 급등했을 때와 2003년 부터 2006년까지 주택값이 급등했을 때 비슷한 조사를 했으면 아마 정보통신산업의 전망이 좋아서라거나 이자율이 매우 낮아 값이 오른다는 답이 다수를 차지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나스닥이나 주택시장의 거품형성기에는 그 상황 자체를 경제 외적 문제로 인식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거품형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조사자체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고 실제 그런 조사도 본 적이 없다.
이렇듯 유가급등은 경제 외적 문제 즉 정부나 투기꾼의 잘못으로 비롯된 사태로 인식하면서 나스닥과 부동산은 시장의 기능으로 보는 시각차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본질적으로 보면 유가와 나스닥 그리고 부동산의 가격 급등은 투자현상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현상을 두고 이렇게 의견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나스닥과 주택가격 상승은 뭔가 잘되는 것 같고 나도 그 무리에 속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직간접적 수혜자 의식이 있는 반면 유가는 일방적으로 소비자 전체가 피해자라는 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투기가 불법적인 조작에 의한 사기성이 포함돼 있다면 당연히 죄악이다.
정보조작, 매점매석, 작전세력 등이 그런 예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불법적인 조작이 개입되지 않는 투기는 시장경제의 정상적 투자행위이다.
지금 유가의 변화를 보면 조작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조작이 가능키 위해서는 통제가능한 대상집단이 있어 일정 기간 조작이 탄로나지 않고 유지돼야하는데 수요자와 공급자가 전세계적으로 퍼져있고 정보의 흐름이 거의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원유시장에서 통제는 불가능에 가까워 조작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사기를 제외한 체 굳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자면 투기는 정상적인 수준보다 훨씬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투기가 발생할 때는 가격이 짧은 기간에 심하게 오른다.
이러한 투기는 시장에서 갑자기 불확실성이 커질 때 왜곡현상을 빨리 조정해주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카트리나태풍으로 정유시설이 파괴되자 시장의 불안요인이 커졌다. 만약 이때 불안을 해소코자 시장기능이 아닌 정부의 공급통제가 시도되었다면 사재기나 암거래가 발생해 사회불안을 더 크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돌발적인 사태로 불안이 생긴 만큼 원유가격이 급상승해 소비자는 늘어난 부담으로 인해 수요를 줄이게 되고 공급자는 늘어난 이익으로 더 공급하고자 공급을 늘이게 되면서 수요공급의 재조정이 빨리 이루어져 시장의 불안요인이 조정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이 투기의 순기능의 예가 된다.
현재 유가는 분명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어 투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크게 불안정한 원유시장에 있고 가격의 인상은 원유시장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용하면서 원유시장을 조정해가고 있는 것이다.
나스닥이나 주택처럼 우리가 수혜자일 때는 시장경제의 현상으로 합리화하면서 우리가 피해자가 되는 유가의 경우 시장경제현상이 아닌 정부나 투기세력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인간의 정서상 당연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의 논리는 현실적인 시장의 조정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막연한 적대의식의 팽배로 인해 사회의 불안을 가져오기도 한다.
저개발국에서 원유가 상승 이후 정부에 대한 시위가 심해지는 현상이나 오일파동 때 가격제한을 시도하자 개솔린 사재기가 난무한 사태가 그런 예이다. 원유시장을 보는 답답한 마음은 다 마찬가지이나 원유도 투자의 한 대상이라는 점에서 시장경제적 현상으로 보는 객관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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