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초 위기 딛고 펼쳐진 카인의 밤
이닝 2안타 10삼진 0실점
남가주 간 오클랜드 A’는 LA 에인절스에 3대5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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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초 첫타자, 고스케 후쿠도메. 왼쪽 타석에 들어선 그는 오른발을 약간 어정쩡 꾸부정 특유의 폼으로 방망이를 곧추 세웠다. 불펜에서 적당히 땀이 배이게 한 뒤 마운드에 올라 마무리 연습투를 몇 번 해본 맷 카인이 심호흡 뒤 천천히 와인드업 초구를 뿌렸다. 스트라익. 후쿠도메는 방망이를 휘둘러보지도 못했다. 제2구. 또 스트라익. 이번에도 후쿠도메의 방망이는 움쩍하지 않았다. 카인은 서둘지 않았다. 약간 안쪽 높은 볼. 후쿠도메는 비로소 방망이를 움찔했으나 아주 속지는 않았다. 1볼2스트라익.
카인은 제4구에서 승부를 걸었다. 후쿠도메의 무릎 높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휘어 스트라익존에 아슬아슬 걸린 듯한 회심의 피칭이었다. 홈 플레이트 엄파이어 빌 밀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던진 카인보다 받은 벤지 몰리나가 더 열을 받았는지 받을 때 그 자세로 잠시 뜸을 들인 뒤 미트에서 공을 뺐다. 후쿠도메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호흡을 골랐다. 밀러와 후쿠도메를 동시에 시험하려는 듯 카인의 5구도 거의 같은 코스 같은 구질이었다. 이번에도 밀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덕아웃에서 지켜보던 브루스 보치 감독이 버럭 화를 냈다. 손짓을 해가며 그게 도대체 무슨 판정이냐는 시늉을 했다. 밀러는 못본 척했다.
카인은, 뜻대로만 판정을 받았다면 진작에 덕아웃으로 돌려보냈을 후쿠도메를 상대로, 별수없이 6번째 공을 뿌렸다. 3볼2스트라익에서 던진 이 삼세번 승부구마저 피할 수는 없는 노릇. 후쿠도메는 방망이를 처음 휘둘렀다. 그 방망이에 공이 걸렸다. 그러나 정통으로 맞은 건 아니고 그냥 살짝 걸치기만 한 것이었다. 공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3루쪽으로 향했다. 후쿠도메는 걸음아 날 살려라 1루쪽으로 뛰었다. 그래봤자 공보다 빠를손가. 바로 그 순간, 3루수 호세 카스티요가 큰 실수를 했다. 너무 만만한 공이서 만만하게 생각한 것인지, 어차피 죽을 공에 너무 열심히 뛰는 후쿠도메를 보고 조금 서둘렀는지 모르지만, 공을 빠뜨렸다.
판정에 연속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든 터에 야수의 실수로 그 타자를 누상에 내보내면 아예 안타를 맞은 것보다 더 기분이 잡친다던가. 자이언츠 덕아웃 분위기는 초장부터 잡친 듯했다. 엊그제 엉망피칭을 한 값비싼 배리 지토는 잇몸 어디가 아픈지 덕아웃 울타리에 양 겨드랑이를 끼고서 그 전에 만점피칭을 한 값싼 팀 린시컴에서 손가락으로 입술을 벌려 보여준 뒤 뭐라고 중얼거렸다. 카메라가 비치는 그 몇초동안에는 한번도 카메라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마운드의 카인은 다시 타자와의 승부. 2번타자 마크 데로사를 2구만에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카인은 3번타자 데릭 리와의 승부에서 초구 볼 뒤 좌전안타를 맞았다. 1사 1, 2루. 불펜에서 오늘 따라 공 끝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는 카인은 첫 이닝에 졸지에 위기의 남자가 됐다. 다음 타자 워드와의 승부가 문제였다. 초구 스트라익. 공끝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 2구는 파울. 3구도 파울. 카인은 물러서지 않고 땅볼유도 회전구로 승부를 걸었다. 딱 걸렸다. 타구를 건져올린 2루수와 2루커버에 들어간 유격수에 이어 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 플레이.
그렇게 1회초 위기를 헤쳐나온 카인에게 곧바로 보상이 주어졌다. 1회말. 우전안타로 출루한 선두타자 프레드 루이스는 레이 더햄이 볼넷을 고르자 2루까지 완행안착한 뒤 랜디 윈의 유격수 앞 땅볼 때 3루까지 밟았다. 다음 타자는 벤지 몰리나. 안타도 잘 치지만, 특유의 골프스윙으로 외야플라이정도는 믿어도 좋을 몰리나가 타석에 들어섰으로 컵스 야수들은 당연히 깊숙한 수비를 펼쳤다. 더욱이 몰리나는 번트에는 서툴렀다. 초구 스트라익. 몰리나는 그저 보고만 있었다. 제2구. 스트라익 존으로 날아드는 것이었다. 몰리나는 여지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따로였다. 헛스윙. 그런데 웬걸, 루이스가 벌써 홈플레이트 코앞으로 닥치고 있었다. 1루주자 윈도 2루도 냅다 뛰고 있었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해치운 홈스틸. 자이언츠 1대0.
2회부터 카인의 공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속도는 그대로되 각도는 더 예리했다. 컵스 타자들이 속속 허탕을 쳤다. 이렇다할 고비도 없었지만 행여 그런 기미가 보이면 낮게 제구되는 공으로 헤쳐나가며 8회까지 2안타에 3볼넷만 내주고 점수는 한점도 안줬다. 그 사이에 삼진아웃은 무려 10명이나 잡았다.
자이언츠가 1일 밤 홈구장에서 카인의 눈부신 피칭을 업고 컵스에 2대1 승리를 거뒀다. 카인에게는 시즌 5번째 승리였다. 루이스는 6회말 윈의 좌전 적시타로 홈을 밟아 이날 자이언츠가 올린 2득점 모두 그의 발로 배서한 셈이 됐다. 또 1회초 수비에서 아차실수를 해 카인의 출발을 덜컹거리게 만들었던 3루수 카스티요는 8회말, 좌익수 진영으로 완전히 빠지는 99.9% 안타성 타구를 멋진 다이빙 캐치로 걷어내 첫 이닝 실수를 곱빼기로 벌충했다. 컵스가 얻어낸 1점은 9최초 마지막 공격에서 지오바니 소토가 구원투수 브라이언 윌슨을 공략, 중견수 앞 적시타로 만든 것이었다. 윌슨은 단 1이닝동안 안타를 3개나 맞는 등 불안했으나 천만다행 추가실점을 하지 않아 카인의 5번째 승리를 지켜내고 사진의 23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한편 남가주로 내려간 오클랜드 A’s는 이날 밤 같은 시각 애나하임에서 벌어진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3대5로 졌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조 1위 에인절스와의 격차는 다시 4.5게임으로 벌어졌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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