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들의 7-Up 계명
박중돈(법정통역)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지를 방문하러 갔다가 직원들의 대화 중에 “그 환자는 expire 되었다”
는 말을 엿듣게 되었다. 환자가 사망했다는 뜻이란 것을 알았지만 우리 말로 기한이 만료되었다는 뜻의 expire 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 무척 당황하고 비정함을 느꼈다.
약이나 식품에서처럼 운명에 정해진 생명의 기한이 다 되어 저 세상으로 갔다는 뜻이니 틀린 말이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생명을 두고 이런 용어를 쓰는 것에 무척 혐오감이 들었다.우연히도 최근 몇달 사이에 주위의 친지들 중에 이렇게 expire 되어버린 사람이 많아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이 말을 기억하게 되었고 새삼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운명적으로 그 삶의 기한이 정해져 있다면 과연 나의 expire 날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식품이나 약물에 표시되어 있듯이 인간의 유효기간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오히려 조물주의 은혜일지 모른다.
자연히 나이가 먹어가고 주위에서 expire 소식을 자주 듣게됨에 그 알 수 없는 나의 expire에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 동창회 모임에서 한 젊은 후배가 늙은 선배들의 참석을 권유하느라 농담이 아닌 좋은 금언을 하나 전해주었다. 늙어감에 따라 지켜야 할 교훈인 7-Up 이라 이름붙인 계명이다. 이 이름은 음료수인 7-Up 이 아니라 노인들의 생활 지침이 되어야 할 일곱 가지 계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첫째는 Cheer Up이다. 나와 주위의 사람들을 늘 즐겁게 해주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남의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Dress Up이다. 옷차림을 깨끗이 하라는 뜻이다. 나이 먹을수록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젊은이들과는 달라서 자칫 추하게 보이게 마련이니까. 정장이 아니라 정석에 맞는 옷을 입으라는 뜻이다.
셋째는, Clean Up 이다. 몸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해야 한다. 자칫 늙은이들은 추하게 보이기 쉽고 심지어는 추한 냄새까지 난다는 소리를 듣는다.
넷째는 Clear Up 이다.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라는 뜻이다. 언제일지 모르는 나의 expire를 생각하면 누구나 주변에 정리해야 할 많은 일자리들이 산재해 있음을 알게 된다. 밀린 부채도 있을 것이고 갖추어야 할 인사도 미루어 놓고 차일피일하고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소외하고 지나온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어릴 적부터 존경해 오는 한
분은 “내일 죽을 듯이 움직여라!” 하는 글귀를 주위에 써 붙여놓고 사는 분이 있었다. 그야말로 나의 expire가 내일이라 생각하고 주변을 정리하라는 뜻일 것이다.
다섯째는 Show Up 이다. 나이 먹어감에 따라 움직이기 싫게 마련이고 가리는 것이 많아 주변과의 교류가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털고 일어나서 자주 이웃이나 친구들의 모임에 얼굴을 보이고 교류하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조로(早老)현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Shut Up 이다. 누구나 늙으면 말이 많아진다고 탓을 듣는다. 사실이지 나이가 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잔소리가 많아지게 마련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젊은이들이 가장 질색을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쓸데 없는 말을 줄이고 대화에 조심해야 한다. 내가 직장에서도 늘 느끼는 것이 이것이다. 노인네들은 꼭 같은 질문을 받고도 그 대답이 늘 황당하게 길다. 그래서 상담하는 관리들이 언성을 높이거나 따돌림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니까 잔소리를 늘어놓지 말고 입을 다물라는 소리다.마지막으로 새겨두어야 할 계명은 Give Up 이다.
한국말로는 포기한다는 뜻이 되겠지만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 스스로 집안을 돌아보아도 수십 년 묵은 찌꺼기들을 버리지 못하고 쌓여있는 것이 차고에 가득하다. 아내가 가끔 묵은 물건을 몰래 버리기 때문에 자주 싸움을 할 때가 있다. Give Up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후배에게 감사하며 나의 expire가 내일일지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주위를 정리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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