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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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44년 우승갈증 풀어준 백발의 영웅 아라고네스 감독이
남아공까지 월드컵까지 물결요청 뿌리치고 길 떠나는 까닭은…
그리고 휘슬이 울렸다.
승부차기를 하느라 태워진 시간을 아예 빼놓고도, 이래저래 끊긴 시간을 벌충하느라 덧대어진 인저리 타임을 몽땅 덜어내고도, 6월 7일부터 29일까지 23일동안 알프스 두 이웃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열린 총 2,850분짜리(2게임 연장전 포함) 31부작 축구드라마를 마감하는 휘슬, 그 마지막 휘슬 소리를 귀로는 들을 수 없었다. 눈으로 보았다. 3분 27초, 28초, 30초, 마지막 승부 마지막 인저리 타임이 꼴딱꼴딱 숨넘어가고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그 순간, 그보다 더 숨넘어가는 몸뚱이로 그보다 더 타들어가는 애간장으로 대략 무게 450그램 둘레 70센티미터의 점박이 유로패스(EuroPass, 유로2008 공인구)를 쫓아 죽자사자 발품을 팔던 독일 선수들이 푸른 초원 밀랍인형들처럼 일순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것으로 그 소리를 보았다. 휘슬을 입에 문 로베르토 로세티 주심의 볼이 볼록해지는 것과 동시에,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스페인 선수들의 만세물결로 그 소리를 보았다.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의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을 가득 메운 5만관중이 스페인 선수들의 만세물결 혹은 독일 선수들의 결빙자세와 초정밀 정확도로 타이밍을 맞춰 쏟아낸 함성과 탄성, 그 둘의 합주굉음을 통해 미처 듣지 못한 마지막 그 휘슬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44백만(4천4백만) 스페인 국민들이 44년동안 기다린…
ESPN 중계자는 역시 프로였다. 그 와중에도 Forty Four 운을 살려 스페인의 유로2008 챔피언 등극을 포고했다. 그는 독일 우승에 대비해서도 외마디 명문을 재어놓고 있었을 게다. 그런데 4,400만명이 44년을? 스페인이 유로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1964년에도 스페인 국민은 4,400만명이었나? 그 틈에 불쑥 엉뚱한 궁금증이 일었다. 재밌자고 하는 스포츠, 즐겁자고 보는 스포츠 승부에서 뭐 그리 까탈스러울 것까지야. 나는 답을 찾지 않았다. 그럴 틈도 없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들에 넋을 맡겼다, 흠뻑.
스페인 선수들의 댄스파티 포옹잔치 키스세례는 요란했다. 관중석을 뭉턱뭉턱 차지한 스페인 열성팬들도 아라리가 났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어느 광장에서도 폭죽세례 국기물결 동시상영 축제가 질펀했다. 선수들의 춤은 엉성했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빼고 무릎을 굽히고 양손을 그저 제멋대로 내밀어 번갈아 위아래로 흔들면서 그냥 껑충껑충 뛰었다, 그러다가 옆에 누구 앞에 누구와 눈이 맞으면 그냥 껴안고 들었다놨다 배지기를 하고 볼에다 뽀뽀를 퍼붓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머리를 쥐어뜯고 쓰다듬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루틴도 없고 스탭도 없는 막춤은 정밀하게 창조된 그 어떤 댄스보다 진했다. 사실 운동장 막춤은 잉글랜드의 장난끼 듬뿍 악동 골잡이 웨인 루니가 추어야 진짜 웃기는데. 잉글랜드가 예선에서 물먹는 바람에 알프스행 대신 애인과 함께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들러 휴가를 보냈다는 루니도 스페인 친구들의 엉거주춤 막춤을 보면서 단웃음 쓴웃음을 다 흘렸을 것이다.
마리오 고메스, 대회초반 부진으로 뭇매를 맞고 몇게임 걸렀다 스페인 쪽으로 거의 기울어버린 마지막 승부 후반에야 투입된 독일의 스트라이커 고메스가 땀을 훔치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독일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는 처음일 검은 머리 소유자 요하킴 뢰브 감독에 의해 발탁된 고메스는 독일축구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로는 처음일 라틴계 이름의 소유자. 어쩔 수 없이 튀어 보이는 둘의 조합은, 독일 준우승과는 별개로, 적어도 유로2008에선 별 영험을 못봤다.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고메스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은 옛날 태극대표팀 황선홍의 오딧세이가 포개졌다. 약 15년동안 한국축구 최전방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숱하게 골사냥을 했지만 1994년 월드컵 볼리비아전 등 꼽아놓은 몇몇 승부에서 빈손으로 물러서는 바람에 덤터기 매질을 당했던 황선홍, 그는 결국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자신의 마지막 명품골(폴란드전 첫 득점)을 빚어내는 등 맹활약을 펼친 끝에 명예롭게 은퇴했다. 고메스의 앞날은 어떨까.
잔디에 드러누워 얼굴을 감싼 바스티안 슈바인스타이거 다음에 어디론가 눈을 두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뢰브 감독이 보였다. 끝나갈 무렵, 서 있기도 벅찬 듯 한 무릎을 잔디에 짚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다 두 손을 비비다 안절부절 못했던 뢰브 감독의 정처 모를 걸음 너머로, 스페인의 축제는 계속됐다. ‘세인트 이케르’라는 성스러운 별명까지 얻은 늠름한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와 가공할 골사냥꾼 이미지에 왠지 어울리지 않게끔 간간이 비쳐주는 아슬아슬 벗어제낀 관중석 어느 미녀팬들보다 훨 예쁘고 곱상한 페르난도 토레스의 포옹은 뜨거웠다. 독일의 수비수 크리스토프 메첼더가 카시야스에게 다가서 그 큰 키로 내려다보며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필경 축하였을 테다. 카시야스와 메첼더. 그렇다. 이번엔 적수로 서로의 급소를 노렸지만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으면 골키퍼로 수비수로 서로의 콧김이 닿고 서로의 땀냄새를 맡을 만큼 가까운 한팀(레알마드리드) 전우가 아니던가.
이런 장면은 약육강식 정글법칙만 지배하는 듯한 스포츠 전장에 인간의 향기를 뿌리는 방향제 같다. 평생토록 스포츠와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살다 일흔을 몇달 앞둔 2006년 여름 독일월드컵 때 어찌어찌 축구신자가 된 신예선 소설가는 진도가 어찌나 빠른지 승부 말고도 첫 학기에 그런 것까지 콕콕 찍어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지네딘 지단(프랑스)과 루이스 피구(포르투갈)가 독일월드컵 준결승전 뒤 연인처럼 껴안고 무슨 말을 그리도 다정하게 주고받은 장면에다 이 작가는 작가다운 초를 쳐 그 대머리(지단) 하고 그 닥터 지바고(피구)가, 황야에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싸운 두 사나이가, 판을 끝내고 친구로 돌아가 석양을 받으면서 어디로 가는 모습, 그 실루엣, 야 정말 멋졌다고 묘사하는 등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단면들을 새록새록 담아내느라 한동안 여념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 다 외면해도 당신만은 버리지 않을 듯이 늘 품고 다니는 담배가 바람곁에 저절로 타다 거의 재가 되어 떨어지는 것조차 깜박할 정도로.
미하일 발락. 2002년 월드컵에서도, 07-0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같은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삼세번 준우승에 그친 이 거구의 사나이는 또다시 챔프고지 일보직전 아차상에 머문 아쉬움을 굳게 다문 입술, 미동 없는 눈동자로 드러내며 어느 곳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기막힌 선방을 거듭하며 독일의 결승진출을 뒷받침한 올리버 칸 골키퍼가 브라질과의 마지막 승부 패배(0대2) 뒤 한참동안 골대에 등을 기댄 채 말없이 허공만 바라본 장면을 두고, 서양 어느 기자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아마도 2006년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발락도 노상 2등으로 끝난 오늘까지의 길 대신에 2년 뒤 이맘때 남아공월드컵으로 이어지는 오늘부터의 길에 다시는 지워지지 않을 눈도장을 찍는 중이었을까. 찢어진 그의 오른쪽 눈두덩이에서 흘러나와 바로 거기서 굳어버린 핏자국과 핏뭉치들이 그 눈도장에 묻은 인주처럼 또렷했다.
골문 뒤 스탠드 앞에서 환희파티를 벌인 스페인 선수들이 시상식을 위해 본부석 쪽으로 우르르 진로를 틀었다. 가면서도 춤이었다, 혹은 엉덩이를 혹은 어깨를 들썩이고, 혹은 국기를 휘날리고, 저들끼리 엉키고 부딪히면서도 넘치는 흥을 어쩌지 못했다. 몇발치 뒤로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이 볼에 턱에 맺힌 땀을 훔치며 따라 걸었다. 승장인가? 뒤처져 차분한 그의 터벅걸음은 앞지른 제자들의 무질서한 빅토리행군과 퍽 대조됐다. 우승보다 한참 이전 준준결승에서, 스페인이 1920년 앤트워프올리픽 이후 메이저 필드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이탈리아를 승부차기로 밀어냈을 때, 스페인 사람들은 언론들은 합창했다, 남아공월드컵까지 아라고네스와 함께. 일흔줄에 든 백발의 승부사는 손사래를 쳤다, 알프스발 축구잔치 끝종이 울리면 누가 뭐래도 나는 떠난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힌트조차 가물었다. 그냥 쉰다더라, 터키 무슨 팀을 맡는다더라, 뜸뜸이 소문만 돌았다.
챔피언 스페인. 사실 스페인의 무적함대 별칭은 과분했다, 평소에 잘하다가 빅매치에서 오금이 저려 기껏해야 8강축이었는데 무적함대라니. 신출내기 체육기자 시절 관행대로 이 말을 받아쓴 나는 언젠가부터 의식적으로 이 치장을 걷어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그게 말짱 헛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16세기 후반 그 무적함대도 정작 영국해군과의 사생결단 대판싸움(빅매치)에서는 여지없이 코가 깨졌으니. 좌간, 스페인이 챔피언에 올랐다. 비로소 별칭값을 했다. 그래도 아라고네스는 떠난다. 환희의 정상에 오른 지금이 바로 떠날 때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정상고지. 오르기는 퍽 어렵다, 지키기는 더 어렵다. 천하의 브라질도 월드컵 챔프고지를 5차례나 정복했지만 연속등정은 1958년과 1962년뿐이었다. 문주란의 노랫말을 빗대자면, 눈높이 높아진 팬들은 감독을 정말로 귀찮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념을 빗대자면, 감독노릇 못해먹겠단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한국이 사례다. 2002년 여름 성공신화에 치여 명 짧아진 감독들이 한둘인가. 그 약발은 공소시효도 유효기간도 없는 것 같다. 게다가 6년 전 그 붉은 유월의 폭풍질주 태극축구를 조련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자리를 옮겨가며 올 여름까지도 성공담을 잇는 바람에, 한국축구 감독노릇은 더 어려워졌다. 한국이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예선 1차관문을 통과했는데도 죄인을 다루듯 허정무 감독에 대한 매질이 가혹하다. 히딩크와 함께한 그 여름의 추억은, 히딩크의 재림이든 제2의 히딩크든 좌간 다음 어느 월드컵에서 누군가 2002년 붉은 유월의 추억을 잊어도 좋을 만큼짜릿한 대형사고를 치든지, 태극축구팬들이 현실감각을 되찾아 내키지는 않지만 눈 질끈 감고 웃자란 눈높이 눈금을 푹 내려놓든지 해야 어제의 좋은 일로 오늘의 번뇌가 깊어지는 질곡에서 벗어날텐데….
아라고네스는 알 것이다, 마드리드 광장을 꽉 메운 저 뜨거운 환희의 불기둥이 언제 불화살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스페인 언론을 가득 채운 저 황홀한 찬양이 언제 독화살로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뒤처진 아라고네스의 나홀로 걸음에서 이 노인의 마음속을 내 멋대로 헤아렸다. 문득 생뚱맞은 생각이 스쳤다, 장사익의 저 끓어오르는 한 소리 한 소절이 아라고네스의 터벅걸음 배경음으로 깔렸으면 좋겠다는.
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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