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우(홈 아트 갤러리)
돼지 5마리가 달려온다. 서로들 좋다고 꿀꿀대며 나를 덮치는 것이다. 손과 발, 온 몸으로 그들을 밀쳐 보았으나 힘이 역부족이다.
돼지들은 올림픽 승자 모양 내 몸 위에 올라타고 그것도 모자라 길다란 주둥이로 꿀꿀대며 나의 얼굴을 할퀸다. 너무나 징그러워 벌떡 일어나니 꿈이다.
한동안 멍~하니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잠을 다시 청하였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돼지 꿈! 이상한 생각이 온 몸을 흥분시킨다. 복(福)꿈이다. 대박이 터질 모양이다. 좋은 꿈은 남에게 누설 말아야지. 입에다 꽉~ 지퍼 잠근 후 일찍 일어나 복권을 구입했다. 한 장이 아니라 5장. 1조에서 5
조까지, 그리고 지갑 속 깊숙히 묻어두었다.하루가 그렇게 지루한 것은 웬일일까. 주위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어디가 아픈가 걱정스럽게 묻지만 침묵만으로 하루를 힘들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복권 추첨시간이 왔다. TV 앞에 앉았다. 그러나 가슴이 두근두근 숨이 막혀 죽을 맛이다.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돈벼락과 함께 저승길로 가는 것은 아닐까? 슬그머니 일어선다. 당선된다면 그 돈이 어디 가냐. 내일 아침 신문 보면 알 것인데 술이나 한 잔 하며 느긋이 기다려
보자. 일반적으로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미래를 알리려는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들 생각한다. 신비스런 꿈을 벗기려는 노력은 오랜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꿈이 자신들이 믿는 초인간적 세계와 관계 있으며 신과 악령들의 계시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 텔레스(BC 384~522)는 꿈의 심리학에서 자연은 신적(神的)인 것이 아니라 마성적(魔性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법칙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그래서 꿈은 잠자고 있는 사람의 ‘정신활동’으로 정의했다.19세기 모리(L.F. Moury, 1857)의 ‘수면과 꿈’에서는 꿈이란 과거에 보았거나 말한 것, 원했거나 행한 것들을 꿈꾼다고 말했다.
현재 또는 과거의 영향을 받을 뿐,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 배고픔이나 배고픔의 충족같은 것이 이미 품고있는 표상 또는 그 반대가 직접 묘사되는 반수면 상태, 그리고 암용처럼 품고있는 표상은 환상적으로 확대시키는 경우라고 했다.‘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던 지그문드 프로이드(1856~1939)는 처음에는 최면술을 걸어 심적 외상을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나 이 치료법의 결함
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발전시켰고 꿈, 농담, 실수, 행위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무의식’의 존재를 일반에게 각인시켰다.
21세기의 인체 과학 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보았다. 그러나 인간 두뇌의 신비를 풀기에는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이다.왜,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리나. 복권은 어떻게 되었기에.아침 세수도 하기 전에 신문부터 펼쳐보았다. 복권 5장 나란히 펼쳐놓고 1조부터 체크하기 시작했다. 1조 꽝, 2조 꽝, 꽝, 꽝, 마지막 한장 … 꽝이다. 이럴 수가. 이게 아닌데. 혹시 신문 인쇄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겠지. 복권 구입 장소로 급히 달려가 재확인하였으나 모두가 허탕이다. 허공만 쳐다보며 괜히 심술이 솟구친다. 돼지들에게 배신감마저 생긴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크다고 했지. 혼자서 흥분했다. 노했다. 그리고 자숙한다.당시 나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했다. 노총각 신세 면하려면 장가도 가야했고 학비도 혼자서 해결했으며 커피값도 궁할 때였다.
그 때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나는 꿈을 믿지 않는다. 꿈만이 아니다. 화투, 포커, 마작, 경마 같은 행운을 바라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예로서 라스베가스에 4번, 가까운 아틀란틱시티는 10번이나 방문했지만 장난삼아 동전 한개도 갬블머신 속으로 넣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모두가 돼지꿈 덕택이다.
로토(Lotto)당선자들의 말로가 돈이 많아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우다 결국은 가정파탄, 빚더미에 허덕이다 인생 망쳤다는 기사를 많이 보았다. 돼지꿈은 복(福)꿈이지 돈벼락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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