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1976년 1월 켄싱턴 타운홀에서 “러시아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 되려 하고 있으며 소련 정치국은 여론에 신경 쓰지 않고 총을 버터보다 더 중시한다”며 소련을 강력히 비난하자 소련 국방부 신문은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별명이 됐다.
대처의 강인함은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후 유감없이 발휘됐다. 북 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단식투쟁을 벌이자 “법은 법”이라며 굶어죽게 버려뒀다. 적자투성이인 탄광을 폐쇄하려 하자 탄광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섰을 때도 귀한 정부 돈을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식으로 언제까지 낭비할 수 없다며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반대파들이 정책 수정을 요구하며 유턴을 외치자 “턴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하라. 나는 턴을 할 생각이 없다”(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고 잘라 말했다.
대처는 온갖 저항을 물리치고 노조의 기세를 꺾었고 세금을 낮췄으며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넓혔다. 그 결과 만성적인 적자와 저성장, 고실업, 고인플레에 시달리며 ‘영국병’이라는 조어를 낳았던 영국 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대처의 뒤를 이은 노동당도 사실상 대처의 정책을 답습했으며 지금까지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탄탄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대처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취임하자마자 항공관제사의 불법 파업을 파업 가담자 전원을 해고함으로써 해결했다. ‘부두 경제학’이란 조롱을 받으면서도 감세와 규제 완화, 자유 무역 확대를 골자로 한 ‘레이거노믹스’를 밀어붙임으로써 미국 경제를 살렸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집권한 후에도 이 정책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으며 그 결과 미국인들은 긴 호황을 누렸다.
지금은 대처와 레이건이 위대한 인물로 칭송 받고 있지만 개혁 당시에는 누구보다 가혹한 비판을 받았다. 개혁의 고통은 바로 시작되지만 그 혜택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처도 레이건도 첫 집권 3년 동안은 최저의 지지율에 시달렸다.
개혁에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 1982년 아르헨티나 군부는 느닷없이 영국령이던 포클랜드 섬을 침공했다. 이 때 보여준 대처의 단호한 모습과 전쟁에서의 승리는 대처를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만들어줬다. 이 때 얻은 정치적 자본이 없었더라면 대처의 개혁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레이건도 비슷하다. 1980년 선거에서 이겨 당선은 됐지만 그를 ‘바보 멍청이’, ‘무식한 배우’라 부르며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취임 두 달 만에 힝클리의 총격을 받고 병원에 실려 가면서 “피하는 것을 잊었어. 의사가 공화당원이면 좋겠는데”라며 여유를 부리면서 미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쇠고기 파동 이후 이명박 정부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추가 협상 타결로 일단 한 숨은 돌렸지만 감세와,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등 개혁 정책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대처와 레이건 이후 세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풀어 기업의 투자 의욕을 살리고 자유 무역 확대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게 하면 된다. 문제는 이런 정책으로 피해를 볼 노조와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 직원, 보호 무역의 장벽 안에 안주하려는 사양 산업체 등등의 격렬한 저항이 반드시 따른다는 점이다. 이미 촛불 시위를 이같은 목적에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형식의 정치”라 말한 바 있다. 말을 바꾸면 “정치는 다른 형식의 전쟁”이다. 물량과 전략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비전에 대한 확신과 싸움에서 이기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프로 기사들은 바둑 한판도 목숨을 걸고 둔다. 하물며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지도자야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처와 레이건의 뒤를 이어 만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개혁을 완수할 지 아니면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 세월을 허송할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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