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임오군란, 갑오경장, 어느 것이 먼저 발생했나. 순서대로 적어라.” 이런 시험문제에 접했다고 치자. 자신 있게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구한말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정확한 사건 발생 연대가 헷갈린다. 그러니….”
문제를 그러면 다시 낸다. “6.25사변은 언제 발생했나.” “그게 아마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발생했을 걸. 일본과 싸운 전쟁 말이다.”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 38%가 6.25를 이렇게 알고 있다고 한다. 20대들은 최소한 일본과 싸운 전쟁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53.2%, 과반수이상이 6.25가 발생한 연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실시된 조사결과다.
“한국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는다면.” 그 답은 6.25였다.
2000년, 새 밀레니엄을 바로 앞두고 실시된 조사결과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6.25를 역사의 가장 결정적 사건으로 꼽았던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무엇을 의미할까. 6.25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져도 될 만큼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일까. 6.25 같은 건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고 믿어도 좋을 만치. 과연 그런 것인가.
“2012년 초의 한 시점이다. 김정일이 사망한지 6개월이 지났다. 인민군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정규 군사훈련인가. 내전이 발생한 것인가. 미 정보당국은 숨죽이며 주시하고 있다. 갑자기 북한 노동미사일이 일본으로 날아든다. 산간지역에 떨어져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가 던진 질문이다.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을 파고 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을 동원했다. 그 세미나를 통해 김정일 이후 북한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점검한 것이다.
실로 다양한, 그리고 때로는 엇갈리는 전망들이 쏟아졌다. 종합하면 그렇지만 한 가지 대체적인 그림이 잡힌다. 김정일 사망 후의 타이밍이 상당히 위험하다. 우선의 한결같은 지적사항으로, 후계를 둘러싼 갈등은 북한 내 무력집단간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 충돌은 이데올로기적 측면도 지닌다. 김정일의 선군정책 옹호세력과 개혁개방 주창세력 간의 투쟁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중국이다.
북경은 줄곧 중국식 개혁개방을 종용해 왔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북한 권력승계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이런 중국의 개입을 필연으로 본 것이다. 문제는 그 후다.
선군정책 옹호세력의 저항이 여간 만만한 게 아니다. 때문에 중국의 개입은 내란으로 이어지고 상황에 따라서는 북-중 전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관심은 주로 이 부문에 쏠려 있다.
이 세미나에서 새삼 조명된 사실은 제2의 한국전쟁의 성격이다. 남북 무력충돌, 혹은 미-북 전쟁. 제2의 한국전쟁은 이런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게 그동안의 일반적 견해였다. 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러나 제2의 한국전쟁은 그보다는 국제전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중국의 개입을 거의 기정사실화함에 따라 나오는 전망이다. 그리고 미-일, 한-미 동맹의 와해를 겨냥해 북한이 의도적으로 일본에 도발할 수도 있다는 진단에서다.
중국이 개입을 할 경우 그냥 방치할 것인가. 이 세미나가 미국을 향해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거기다가 북한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일본이 반격을 요구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면서 상황분석은 상당히 복잡해진다.
결론은 의지력으로 귀착된다. 군사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만일의 사태 시 미국은 능동적으로 대처할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 동맹 간의 신뢰는 확고한지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에 있어 결정적 사태는 항상 불시에 닥친 것 같이. 그렇지만 그 때를 대비하라는 게 이 세미나의 요지로, 그 때가 가까운 것 같다는 강력한 시사를 던지면서 6.25는 역사가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새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개입할 경우 그냥 방치할 것인가.”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이번에는 한국을 향하여.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쇠고기, 쇠고기, 쇠고기. 온통 쇠고기 소리에 파묻혀서다.
역사의 건망증은 반(反)역사적 현상을 가져온다. 그 주된 에이전트는 6.25의 실상을 모르게 사육된 한국의 신세대가 아닐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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