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사 교실 담벼락엔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말없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떠들고 뛰고 노는데 이들은 친구들의 노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 놀지는 않는다. 전후 전방지구에는 편모 가정이 많았고, 고아들도 수없이 많았다. 국군으로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의용군(공산당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전쟁에 투입된 민간인과 학생들)에 붙들려가서 죽고 납치되고, 폭격 총격 수류탄에 죽고 부모를 다 잃어 고아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한반에 예닐곱 명은 보통이었다.
그 아이들은 어느 반에 가서나 쉽게 가려낼 수 있었다. 구호품을 입은 옷 때문이 아니라 하나같이 얼굴색이 누르스럼하고 표정이 없었다. 보통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반찬도 없는 꽁보리밥을 먹거나 죽을 먹는 집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본 고아원의 식사는 원조를 받아 운영되기에 일반 가정보다 훨씬 나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옷도 보통 아이들은 헤진 것을 입었어도 구호물품을 받아 입히는 고아원 아이들은 때로는 예쁜 원피스도 입고 있었다.
왜 그들은 놀지 않는가? 무엇이 그들의 웃음을 거둬 갔는가? 어린이들에게는 그들을 보호해주고 보살펴주는 부모가 없다는 것이 단순히 배가 고프다거나 돈이 없다거나 이러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도 나를 편들어주지 않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 그것은 무엇으로도 대체되기 어려운 것이다. 어린이에게는 아무리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일지라도 부모는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힘’ 그 자체인 것이다.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로 첫 발령받아 담임했던 5학년 여자반의 모습이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고통과 슬픔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나는 교사가 된 것을 감사했다.
열한 살, 피난민의 대열에 끼어 갓 중학교에 입학해 (어머니는 적령으로 들어간 나에게 두 번 월반 시험을 치게 했고, 오빠는 5학년 때 중학 시험을 쳐서 갔다) 공부하던 서울에서 유학생 몇이 모여 걸어서 고향집으로 내려올 때 한강 인도교가 끊어져 양수리 철교를 건너야 했다. 시퍼런 강물이 너무 무서워 다리가 후들거려 빠질 것만 같았다. 벌써 인민군은 사방에 들이 닥치고, 사흘이나 걸어서 원주에 도착했을 때는 폭격으로 온 시가지가 불타고 있었다. 우리 집도 불탔다.
원주는 1군 사령부가 있는 군사 요충지였다. 어릴 적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십여 리 떨어진 시골 농막에 다다랐을 땐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버지는 피난이 늦어 납치되고, 어머니는 그 날 아버지 면회를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마흔 둘, 마흔의 부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6남매를 남겨두고. 내 아래로는 여덟 살, 다섯 살, 두 살의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이튿날, 열네 살의 오빠는 불타는 연기 속에서 하루 종일 여기 저기 시체 덮인 가마니를 들추어서 어머니를 찾아냈다. 죽음이 무언지도 모를 어린 나이에 우리는 그렇게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열일곱 살의 언니와 오빠는 낮에는 숨어 있어야 했다. 젊은이는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열한 살인 내가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나는 동생들이 불쌍해서 잘 울었다. 밥도 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하고 갑자기 바뀐 환경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힘이 겨워서인지 자주 아팠다. 두 살짜리 젖먹이는 이따금 ‘엄마’하고 찾았다. 순하고 정말 귀여운 아기였다. 제대로 돌보지 못해 건강했던 아기는 점점 힘을 잃고 한 달쯤 지나 엄마를 따라 하늘나라에 갔다. 공습 때문에 불도 켜지 못하고, 물을 찾는 아기에게 끓인 물이 떨어져 찬 우물물을 떠 넣어주던 기억은 평생토록 마음을 아프게 했다.
9.28 수복도 잠시, 그 겨울 중공군까지 합세해 1.4 후퇴를 해야 했다. 북에서 전쟁을 피해 남하하는 사람들과 이곳에서의 피난민의 행렬은 더욱 참혹했다. 얼마나 힘들면 눈 위에 아기를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 동생들을 끌고 가야하는 언니와 오빠는 얼마나 힘겨웠을까?
이것이 열한 살의 눈으로 본 6.25 전쟁의 참상이었다. 전쟁은 인간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을 가져다준다. 마흔 살의 삶을 살다 가신 어머니, 억류되어 모진 세월을 살아가셨을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 생각에 통한의 일생이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 사랑하는 부모님과 힘든 어린 날을 보낸 형제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가득하길 이아침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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