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2대0, 천신만고 8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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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또 프랑스를 이겼다. 이번에는 쉽게 이겼다.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사투를 벌이고도 승부를 가리를 못해 승부차기로 순금 월드컵을 차지했던 이탈리아는 1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벌어진 유로2008 C그룹 최종전에서 프랑스를 2대0으로 완파하고 8강고지에 합류했다.
2년 전 여름 독일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유로2008 정상에 서려던 프랑스는 죽음의 2그룹 첫판에서 루마니아에 득점없이 비기고 둘째판 네덜란드전에서는 무려 1대4로 대패하더니 숙적 이탈리아전마저 놓침으로써 1무2패에 고작 1득점 6실점의 허망한 성적표를 쥐고 관전자 신세가 됐다. 06월드컵까지 약 10년동안 프랑스 예술축구를 지휘했던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의 은퇴공백만 탓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다. 그러나 누가 우승해도 이변이 아니요 누가 탈락해도 이변이 아닌 죽음의 조에 속한 만큼, 1무2패가 아니라 3패라 해도 혹은 3승이라도 이변이라 말할 건 없다.
이탈리아의 8강행이 순탄한 것 또한 아니었다. 첫판에서 네덜란드의 파상공세에 쩔쩔매다 0대3으로 완패하고 둘째판에서 루마니아에 1대1 무승부를 기록해 월드컵 챔피언의 체면을 구길대로 구긴 이탈리아는 프랑스전을 이긴다 해도 8강행이 보장되지 않았다. 만일 루마니아가 네덜란드를 꺾어버린다면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10대0으로 이겨도 버스 떠난 뒤 헛수고가 될 판이었다. 2연승으로 8강행을 확정지은 네덜란드가 루마니아전에서 공연히 헛심을 쓸 이유가 없었고 나중을 위해서라도 프랑스 또는 이탈리아의 2라운드 진출을 원천봉쇄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허우적대다 녹아웃 스테이지부터 무서운 힘을 써온 팀 아니던가.
실제로 네덜란드는 루마니아전에서 뤼트 반 니스텔루이 등 1, 2차전 스타팅멤버 4명을 빼는 등 몸조심을 했다. 그러나 대신 투입된 벤치멤버라고 해도 아이연 로번 등 쟁쟁한 월드스타들이었다. 응당 주전이지만 부상 때문에 잠시 벤치를 지킨 로번이나 큰대회 경험부족 때문에 교체요원으로 투입되는 페르시 등이 이탈리아나 프랑스 밀어내려고 루마니아에 일부러 온정을 베풀 이유는 없었다. 2대0 완승.
덕분에 프랑스에 앞서고 있으면서도 네덜란드의 처사에 8강행을 운명을 맡겨야 했던 이탈리아는 자신들이 프랑스를 이긴 것 못지 않게 네덜란드가 루마니아를 따돌려준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8강행 탑승권에 키스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D조 1위를 차지한 지중해 라틴라이벌 스페인과 준준결승에서 맞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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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를로 PK선제골 데로시 FK 추가골
프랑스, 비에리부상 아비달퇴장 등 악재속 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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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1승1무1패) 2 - 0 프랑스(1무2패)
이탈리아든 프랑스든 8강행 열차에 탑승하려면 이 경기를 무조건 이겨놓고 네덜란드와 루마니아의 경기결과를 봐야 하는 상황. 그러나 두 나라 경기는 설사 둘 다 탈락했다 하더라도 불꽃이 튀길 라이벌전.
레몽 도메넥 프랑스감독은 튀랑 등 노장들을 쉬게 하고 아비달을 중앙수비수로 배치하는 등 새로운 카드를 선보였다. 젊은 피에 거는 주술과도 같았다. 통했으면 도메넥 감독은 영험있는 명장으로 상찬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안통했다.
로베르토 도나도니 이탈리아감독도 매우 이탈리아답지 않은 전술을 선보였다. 이탈리아의 전매특허 수비꽁꽁 축구 대신 원톱 루카 토니 이외에도 2명의 공격수를 추가로 배치해 초장부터 안지기 게임이 아니라 이기기 게임 플랜을 실행에 옮겼다. 덕분에 수비로 일관하는 이탈리아축구에 신물이 난 팬들은 좀체 희귀한 이탈리아제 공격축구를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2골을 앞선 뒤 잠그기에 급급하다 터키에 2대3 역전패를 당했던 체코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 도나도니 감독은 2골을 넣고도 정상적 맞짱공방 전술을 택했다. 통했다.
네덜란드전과 같이 허망하게 깨진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언제나처럼 이탈리아의 플레이는 지능적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덩치가 작으면서도(그래서 예로부터 덩치 큰 게르만인들은 로마인들을 작다고 놀리고 업신여겼다,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쪽바리라고 불렀던 것처럼) 세계축구 초강으로 군림해온 데도 얄미울 정도로 지능적인 전략전술이 큰몫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급로 차단.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골문을 열기 전에 우선 프랑스의 보급로를 철저하게 차단했다. 우연을 가장한 반칙으로 전반 10분만에 프랑크 리베리 아웃. 지네딘 지단처럼 무르익지는 않았어도 게임을 거듭할수록 완숙미를 더해 프랑스축구의 붙박이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은 리베리가 들것이 실려나가더니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 리베리가 있어도 지단 생각이 간절한데 리베리마저 없으니, 몸을 풀 시간도 없이 부랴부랴 투입된 사미르 나스리가 나름 열심이었지만, 지단 생각은 두곱세곱 커졌다.
프랑스축구의 관절을 제거한 이탈리아는 더욱 공세적이 됐다. 프랑스의 쿠페 골키퍼는 쉴새없이 쏟아지는 슈팅세례를 막아내느라 바빴다. 그러나 아주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25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문전으로 크로스가 아크정면 수비라인 바로 뒤와 쿠페 골키퍼 사이로 떨어지는 순간,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루카 토니가 긴 발을 내뻗으며 컨트롤. 수비형 미드밀더나 윙백을 맡다 중앙수비수를 맡은 아비달은 별수없이 뒤에서 토니를 잡아챘고, 주심은 여지없이 휘슬. 아비달 퇴장과 함께 페널티킥. 안드레아 피를로는 왼쪽 상단으로 안전하게 차넣었다.
리베리 아웃에다 아비달 퇴장까지 겹쳐 도메넥 감독은 패가 말렸다. 만회공격을 해야 할 판에 수비수를 넣어야 했다. 금방 넣은 나스리를 다시 빼고 장 알랭 붐송을 넣어 밑빠진 수비라인을 메꿨다. 이탈리아는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는 듯 공세고삐를 한층 옥죄었다. 프랑스도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다. 34분 티에리 앙리의 슈팅이 살짝 골대를 빗나가는 등 만회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숫적 열세와 조율사 아웃의 공백은 어쩔 수 없었다.
후반 17분. 그로기 상태의 프랑스를 주저앉힌 추가골이 터졌다. 프랑스 벌칙구역 외곽에서 때린 데로시의 프리킥이 골문왼쪽으로 향하다 수비벽에 있다 걷어낸다고 내민 앙리의 발에 맞고 방향을 바꿔 오른쪽 골네트로 빨려든 것. 워낙 짱짱한 수비실력 때문에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1점차이도 뒤집기 어렵다는 게 정설로 돼 있는 마당에, 게다가 후반에 2점차가 났으니 게임은 거의 종을 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나도니 감독은 환호하다 말고 성호 비슷한 것을 그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우리몫은 다했으니 다른 곳에서 네덜란드가 제발 루마니아에 지지만 말아줬으면 하는 기도였을 것이다. 도메넥 감독은 뿔테안경 너머로 멍하게 어느곳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뒤를 돌아보기엔 너무 쓰라린 결과에 차라리 먼 앞 어느 곳을 미리 내다보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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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네덜란드 발길질에
루마니아 준결고지 희망은 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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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3승) 2 - 0 루마니아(2무1패)
마르코 반 바스텐. 그는 90년대 초중반 세계축구의 거성이었다. 70년대 요한 크루이프 이후 네덜란드축구의 희망이었다. 그와 호흡을 맞춘 짝꿍들도 환상이었다. 루이 굴리트, 데니스 베르캄프 등등. 네덜란드가 94미국월드컵 우승을 꿈꾼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꿈은 8강에서 멈췄다. 반 바스텐이 불의의 부상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도 못했고, 굴리트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을 자퇴해버렸다. 세계축구팬들은 반 바스텐이 월드컵 무대를 휘젓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가 지금 초강력 오렌지군단을 이끌고 알프스발 유로2008 축구열기의 중심에 섰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각각 3점차로 찍어누르고 죽음의 조에서 가장 먼저 생명의 8강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7일, 스위스 베른에서 벌어진 루마니아와의 3차전. 루마니아의 운명은 물론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8강운명도 그의 손바닥에 놓여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제아무리 용을 써도 네덜란드가 루마니아에 못이긴 첫 져버리면 둘은 귀국행 보따리를 싸야 하는 형편이었다. 포르투갈의 꾀돌이감독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라면 이 경우 어떤 선택을 했을까(포르투갈은 2연승 뒤 스위스와의 3차전에 줄줄이 후보들을 내보내 0대2로 졌다, 그러나 B그룹에서 독일이 크로아티아에 덜미가 잡혀 2위가 되는 바람에 준준결승에서 독일을 상대해야 한다).
반 바스텐 감독은 무모한 모험도 어설픈 포기도 하지 않았다. 노장 니스텔루이 등 4명을 쉬게 했지만 루마니아 봐주기는 결코 아니었다. 아이연 로벤이나 로빈 반 페르시 등 대신 선발출장한 선수들이 맨입에 시간만 때울 리 없었다.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네덜란드의 느슨한 플레이를 은근히 기대했을 루마니아는 경기개시 휘슬이 울리고 채 몇분도 지나지 않아 꿈을 깨고 수비에 급급해야 했다. 첫골이 후반에 나온 것은 오히려 더딘 것이었다. 9분. 아펠라이의 크로스를 받은 클라스 얀 훈텔라르의 슈팅이 조마조마 버티던 루마니아 골문을 기어이 열어제쳤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루마니아에겐 맥이 풀리고, 프랑스에 이기면서도 오금이 저렸던 이탈리아에겐 복음같은 골이었다. 후반 42분. 이번에는 페르시가 인정사정 볼것없는 왼발슈팅으로 제로에 가깝던 루마니아의 소생확률을 숫제 제로로 만들었다.
루마니아는 간판스타 무투 때문에 웃고울다 유로2008 장정을 마치게 됐다. 무투는 이탈리아전에서 회심의 선제골을 터트렸으나 경기종료 직전 얻어낸 패널티킥을 놓치는 바람에 손 끝에 잡힌 루마니아 승리는 1대1 무승부가 됐다. 반면 이탈리아의 지안루이지 부폰 골키퍼는 무투의 패널티킥을 손으로 쳐내고 발로 걷어내며 네덜란드전 대량실점의 불명예를 씻어내며 탈락직전 이탈리아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전에서도 골이나 다름없는 벤제마의 슈팅을 막아내는 등 몇차례 이름값에 걸맞은 선방을 보였다. 이탈리아 수비수 파누치는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종료직전 자기문전에서 허벅지 트래핑 실수로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던 것을 되갚듯 루마니아전에서 공격에 적극 가담, 상대수비수의 실수를 틈타 동점골을 뽑아냈다. 축구지사도 새옹지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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