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자기 분야에서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인생. 많은 팬을 가진 인생. 가족들로부터 사랑받는 인생. 그 어느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중 한 가지만 이뤄도 그다지 나쁜 삶을 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미 언론인 중에 이 세 가지를 모두 이룬 드문 인물이 있다. 1991년부터 16년 동안 NBC의 시사 대담 프로 ‘언론과의 대화’(Meet the Press)를 진행해 온 팀 러서트가 그 사람이다. NBC 뉴스의 워싱턴 지국장이자 수석 부사장이기도 한 그는 치밀한 준비와 공정한 진행으로 언론계는 물론 공화 민주 양당 지도자들로부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평론가”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는 대담이 시작되기 전 출연자의 과거 발언을 모두 수집, 지금 주장과 상반되는 것을 제시하며 곤경에 빠뜨리게 하는 일도 잦았지만 이를 특정인 공격이 아니라 이슈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미움을 사지 않았다. 쇼가 끝난 다음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열띤 논쟁을 벌이던 상대와도 쉽게 친구가 됐다. 워싱턴에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리려면 이 프로에 나와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는 또 복잡한 선거 법규와 정치 분석을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풀이하는 독특한 재능을 지녔다. 2000년 대통령 선거 개표가 어지럽게 진행되자 난해한 그래픽 대신 칠판을 들고 나와 여차가 저차하기 때문에 결국 플로리다가 차기 대통령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 한 예다.
또 올해 민주당 경선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 결과가 나오자 “이제 우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누군지 안다”며 버락 오바마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의 선언 이후 미 정계와 언론은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힐러리 클린턴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인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던 그가 13일 아들의 대학 졸업 축하여행에 다녀온 후 직장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향년 58세. 평소 과체중으로 운동도 하고 약도 먹으며 심장에 신경을 썼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막지는 못했다.
한창 일 할 나이에 유능한 동료를 잃은 NBC는 물론이고 미 언론계와 정계가 충격에 빠졌다. NBC는 그를 추모하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으며 다른 언론사도 그의 사망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죽은 사람을 두고 욕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번처럼 찬사가 쏟아진 경우도 드문 것 같다.
존 매케인은 “팀 러서트는 언론계 최고의 스타였으며 정직하고 신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어려운 상대였으나 언제 공평했다”고 말했고 버락 오바마는 “TV에서 그보다 뛰어난 인터뷰어나 정치 분석가는 없었고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훌륭한 인간의 하나였다”고 논평했다.
그는 바쁜 와중에 아버지와 자신과의 관계를 쓴 ‘빅 러스와 나’(Big Russ and Me)라는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1950년 뉴욕 버펄로의 아이리시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낮에는 쓰레기 수거국에서 일하고 밤에는 신문 배달 트럭을 모는 등 30년 동안 두 잡을 뛰며 4자녀를 길렀다.
러서트도 방학 때면 아버지 일을 도우며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불평하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근면과 자기 희생 정신은 평생 그의 인생을 이끈 지표가 됐으며 그의 성실함은 주위 사람들이 그를 끌어주게 만들었다.
그가 클리블랜드 주립대 법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패트릭 모이니헌 연방 상원의원(민/ 뉴욕) 사무실에 일하러 가자 주위에는 순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과연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걱정하자 모이니헌은 “그들이 아는 것은 자네가 배우면 되지만 자네가 아는 것은 그들이 배울 수 없지. 누구도 쓰레기 트럭을 몰아본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야”라며 격려해줬다.
러서트는 자기 성공을 아버지 덕으로 돌리고 아버지를 게일 갓윈의 책 한 구절을 인용, “매일 매일 의무를 다하는 기쁨으로 산 사람”으로 묘사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아들 루크를 놔두고 아깝게 먼 길을 일찍 떠난 그의 명복을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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