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 나도 삶을 되돌아보면 많은 억울한 일을 당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속된 촛불시위를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미국 쇠고기 수입타결은 한미양국 어느 쪽도 크게 잘못한 것 같지 않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도 촛불시위에서 정권퇴진운운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학생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한 사람인데……”
이대통령이 한 원로인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서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6월 8일 경찰이 컨테이너 바리게이트를 치고 시위대의 청와대 진입을 막았을 때에 이대통령이 보여준 반응이다. 이때 이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숨어 있을 일’이 아니라 떳떳하게 시위대 앞으로 나와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어야 했다.
물론 위험부담이 있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써야 했다. 이대통령은 청와대 사무실에서 TV망을 통해 사과를 했지만 그것은 국민과 거리를 둔 사과다. 이 사건이 불거진 처음서부터 이대통령은 국민에게 졌어야 했다. 억울하다 느껴도 잘잘못을 가릴 일이 아니다.
미국에도 억울한 사람이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오바마 상원의원과 싸워왔던 클린턴 상원의원이다.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여성대통령이 될 뻔 했다. 이제 공은 오바마에게 넘어 갔으며 첫 흑인 대통령의 가능성을 갖게 됐다.
그런데 왜 클린턴이 억울한가? 이번 예비선거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선 뉴 멕시코지사 빌 리처드슨이 꼽힌다. 자신이 후보로 나왔다가 중도하차하면서 오바마를 지지한 것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엔대사와 에너지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뿐인가? 클린턴 정권 때 클린턴 대통령을 도왔던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의원, 클레이어 맥캐스킬 상원위원, 앤서니 레이크 전 대사, 오바마의 전략가 데이빗 액셀로드, 케네디가의 일부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다 클린턴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클린턴의원은 이 ‘억울함’에서 주저앉으면 낭패다. 그가 할 일은 이제 민주당 후보가 된 오바마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함’을 딛고 미래를 바라 볼 수 있다. 그에게는 4년 후의 희망이 있다. 국민들은 이를 주시하리라. 만일 오바마가 대통령후보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클린턴의 미래는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가운데 처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 중에 한 사람이다. 전쟁 직후 영국시민들은 그를 세기의 영웅으로 환영했다. 1945년 7월17일 그는 트루먼, 스탈린과 함께 패전국인 독일을 분할 점령하는 문제를 놓고 포츠담에서 회담을 하고 있었다. 회담이 10일 째 들어가던 7월25일 본국에서 처칠에게 긴급한 연락이 왔다. 처칠이 이끈 보수당이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다는 비보였다.
처칠은 곧 바로 짐을 챙겨 귀국했다. 세기의 영웅 처칠이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에게 참패를 당한 것이다. 수상 직에 오른 애틀리는 곧바로 포츠담 회담장에 영국대표로 참석했다.
그러나 처칠은 이 ‘억울함’을 묻어두지 않았다. 그는 국민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 드린 것이다.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다. 1951년 총선이 치러졌다.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 대승을 거둔 것이다. 그는 그 후 6년간 수상 직을 맡았다. 그는 영국 시민들로부터 받은 ‘억울함’을 ‘승리’로 갚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칠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가 보기에는 촛불시위가 옳지 않을 런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그러나 그에게는 5년이라는 긴 기회가 남아있다. 지금은 국민에게 겸허히 지는 것이다. 그 국민이 인구의 대다수가 아닐 수도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절대 기업체의 CEO가 아니다. 명령과 권위로 해결되는 자리가 아니다. 이대통령은 한참 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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