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가 맞은 최대의 도덕적 도전은 무엇일까. 지구온난화 문제다.
‘친환경’이란 화두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한 쪽에서 나오고 있는 주장이다.
말 그대로 클린’(clean)한 아젠다다. 하나뿐인 지구를 깨끗이 보존하자는 주장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언제부터였나. 그게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도그마가 되면서다.
왜 온난화 현상이 일고 있는가. 100% 정설의 답은 없다. 전문가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많은 부문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설을 토대로 한 대파국 시나리오가 유행이다. 그리고 진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세계가 흥분한 것이다. 그러면서 환경문제는 슬그머니 종교의 영역이 되다시피 했다. 다른 의견을 개진한다. 그러면 마치 신성모독이라도 저지른 양 정죄 당한다.
그 집단 히스테리 비슷한 증세를 일찍이 지적하고 나선 사람이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이다. “21세기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번영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다. 이데올로기화 한 환경주의다.”
20세기 초 이후 한동안 세계는 몸살을 앓아왔다. 사회주의가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착각이 가져온 히스테리 증세다. 도그마가 된 환경문제가 바로 그렇다는 것으로,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지적되는 게 환경독재주의다.
가설을 토대로 규제가 가해진다. 잇단 친환경 법안이다. 문제는 그 뒤에 숨겨진 아젠다라는 것이다. 다름 아닌 좌파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다. 거기다가 환경이라는 소프트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다. 피압박 근로계층을 돕는다는 사회주의자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 같이.
환경문제는 중요한 이슈다. 결코 그게 부인되는 게 아니다. 도그마가 된 게 문제로, 포퓰리즘적인 환경독재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촛불이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한 달도 훨씬 넘었다. 미국산 ‘미친 소’가 주 이슈였다. 이제는 쇠고기뿐이 아니다. 다른 구호들도 넘쳐난다. 그런가 하면 시위현장이 해프닝 무대가 되고 있다. 즉석 연주회가 열리고, 가족 피크닉에, 데이트 장소가 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촛불시위인가. 반(反)이명박인가. 반(反)미인가. 반(反)세계화인가. 현상파악이 어렵다. 그 현장이 너무나도 초현실적이어서 하는 말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잘 조직된 소수세력은 비정형의 다수보다 때로 정치적으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 소수집단이 많아질수록 정치문화는 분파적이 되기 쉽다. 경제는 경화 증세를 보이면서 그 사회는 생명력을 상실한다.”
맨커 올슨이 이제는 클래식이 된 그의 저서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게 많은 부문을 설명하는 게 아닐까.
“이슈 선점에 성공했다. 국민 건강이다.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거다. 친환경시대의 슬로건이다. ‘미친 소’가 인터넷을 타고 질주한다. ‘미친 소’는 결국 도그마가 됐다. 거기다가 정부의 무능이 한 몫 거든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대성공이다. 또 다시 촛불의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디지털 포퓰리즘의 위대한 승리다. 그 여세를 몰고 나가야 한다. 정권퇴진 운동으로 이끄는 거다….”
코뮌주의가 외쳐댄다. 이번 시위를 민중봉기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혁명적 코뮌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색적인 좌파 언어가 난무하고 있는 촛불집회의 현장이 바로 진상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 본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세계화 시대 최대의 도덕적 도전은 무엇일까. 빈곤문제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수억이 넘는다. 그들을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최대의 도덕적 챌린지다. 다른 쪽의 주장이다.
그러면 한국이 맞은 최대의 도덕적 도전은 무엇일까. 빈곤문제, 더 나가 인권문제가 아닐까. 폭정체제 하에서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참상에는 그러나 철저히 무관심이다. 피를 나눈 형제가 죽어나간다. 그들을 위해서는 그러나 촛불이 켜지지 않는다.
촛불행렬이 넘실댄다. 핏발 선 슬로건들. 그 사이 사이 킬킬거리며 마치 피크닉을 즐기는 듯 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너울대는 그 촛불행렬에 한 가지 형상이 겹쳐 어른거린다. 제멋대로 달리는 ‘미친 소’다
누가 그랬나. ‘가히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위 현장’이라고. 그 표현 뒤로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다.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그 냉소 말이다. 피로감이 엄습해 온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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