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크루즈 여행
3. 스캐그웨이 마을
밤새 항해하여 5일 째에 도착한 작은 마을은 스캐그웨이(Skagway)였다.
박물관에 들러 1898년도에 발행된 동네신문도 보고 원주민인 알래스카 인디안의 수공예품도 보았다. 그 동네에서 나오는 온갖 조류의 목덜미 털로 만든 퀼트 이불도 있었다. 이전 기록에 의하면 꽤 발달한 마을이었는데, 골드러시 때의 영화는 간 데 없고 이젠 폐광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허술한 집들을 자세히 보니 중동계 주인의 카펫 상점, 유명 보석점, 모피점들로 관광객 대상의 마을이 되었다.
화이트 패스(White Pass)라는 금광을 향했던 기차를 타고 캐나다와의 국경지점인 유콘(Yukon) 근처의 산꼭대기까지 갔다가 내리니 바람이 매섭다.
화이트 패스라는 금광을 향했던 기차를 타고 캐나다와의 국경지점인 유콘 근처의 산꼭대기까지 갔다.
추위를 피하려고 아차 실수로 들어간 곳이 모피점이었다. 수만달러가 넘는 모피들을 눈요기하다가 춥지 않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모피로 향하던 마음을 쉽게 접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싼 여우털 귀마개를 하나 건져 쓰고 나왔다. 아들아이 주려고 곰 모양의 모자를 사서 머리에 쓰고 여우 귀마개를 하니 추위를 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군고구마 장수 같은 털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우리내외를 보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우리 모습이 상당히 좋은가 하여 갖은 포즈를 취해 주고 셀프 카메라로도 찍어왔더니 가관도 아니다.
배 앞에서 찍은 모양새가 바람찬 흥남 부두 앞의 피난민 내외의 모습 같아서 실소했다. 이렇듯 나에 대한 내 평가는 늘 후한 것이다. 남편보다 더 초췌한 나의 모습은 간밤 배 안의 카지노에서 푼돈을 잃은 탓인 듯 하였다. 금광이건 카지노건 일확천금 환상의 뒤끝은 늘 씁쓸한 것이 아닐까?
여우털 귀마개와 군고구마장수 같은 털모자를 쓰고 남편과 함께 크루즈 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알래스카에서 시애틀로 돌아오는 길엔 덤으로 캐나다의 섬인 빅토리아를 들러 시내를 구경하였다. 2층 버스의 옥상에서 담요를 덮어쓰고 꽃이 흐드러진 유럽풍의 도시를 돌아 나왔다. 크루즈의 출발지인 시애틀의 푸른 시내와 폭포도 덤으로 구경하였다. 마지막 만찬 날엔 한국인을 위해 크루즈 사상 최초로 흰 제복의 웨이터들이 김치를 서브하였다. 주방장이 직접 시애틀의 김치가게에 주문한 것이라는데, 마늘을 덜 쓰고 생강과 피망을 많이 넣은 환상적인 맛이었다. 그것도 덤이었다. 덤은 항상 더 즐겁다.
스포츠센터에 사우나 요가클래스 병원 꽃집 음식점 면세점도 있는 마을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셈이었다. 극장에선 매일 쇼가 공연이 되고 나이트클럽에선 댄스파티가 벌어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코미디 쇼도 열렸으며 클래식 기타 연주회를 하신 한국분도 계셨다.
모든 것이 흥겨웠고 흘러 넘쳤다. 크루즈 배에선 도무지 아쉬울 게 없었다. 사람 관찰도 사람 공부도 흥미로웠다. 뭍이 그립지가 않았다. 매 주말마다 노심초사하며 직원들 주급 걱정을 하던 육지로 돌아가기 싫었다. 부대끼고 지지고 볶고 지진이 나고 광우병이 있는 곳으로 영원히 나가지 않았으면 했다. 배 멀미만 아니었다면 아들이 기다리지 않았다면 배에 눌러 살고싶을 정도였다.
그 향연 뒤에는 일찍이 생활전선에 나선 젊은이들이 있었다. 대체로 동남아 권이나 동구권 젊은이들의 수고가 근간이 되어 배가 유지되었다. 자신의 수입이 가족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되는 중이라는 객실 담당 필리핀 젊은이가 대견했다. 돈 주고 못살 젊어 고생은 나중에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으로 키워줄 것이다.
돈을 아끼느라 내실을 택했던 나의 선택은 그리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 다음에 또 간다면 발코니가 있는 방을 선택하리라, 친한 가족 두 세 집이 함께 간다면 더 즐거울 것이다. 입지도 않을 옷을 패션쇼 하듯 너무 많이 가지고 간 것도 고칠 점이다. 정장 한 벌에 평상복 두벌 너무 두껍지 않은 겉옷 하나면 족할 듯하다. 배 안에 턱시도와 드레스를 빌려주는 곳도 있으니 짐을 더 줄일 수도 있다.
배 안에서 모든 것이 무료라지만 방심하다간 낭패 보기 쉽다. 인터넷과 전화비용이 비싼 점은 유의할 사항이다. 배에서 쓴 10분의 전화 요금은 60달러이었다. 항구에 배가 닿았을 때 자신의 셀폰이나 상점의 인터넷을 이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마구 찍어주는 사진도 일일이 다 사면 큰 낭비이다. 어떤 이는 사진 값으로만 1,000달러 가량 지출하는 것을 보았다.
객실 냉장고의 물은 한 병에 4달러였다. 부디 식당에서 무료로 마시고 객실에선 최소한으로 마시면 좋을 것이다. 패스로 마구 긁으며 기분 내다간 나중에 정산 할 때 놀랄 일들이 많다. 카지노, 사진, 옵션관광 비용, 팁 등의 복병이 있으므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팁은 객실이나 식당에서 따로 내지 않고 일인당 하루에 10.50달러씩 의무적으로 부과된다.
여행이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치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을 터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법을 몸소 알려주신 선배를 뵌 것도 큰 수확이었다. 서로에게 여운이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알래스카에서 시애틀로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의 섬인 빅토리아에 들러 아름다운 시내를 구경했다.
늘 그렇듯이 위대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선 한없이 작고 볼품없는 나를 만나게 된다. 자연의 기를 받아 충전을 하였으니, 비우고 겸손해진 나로 다시 살아볼 것이다. ‘여행이란 사람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씩 내가 사람인 것을 확인해 보며 살아야겠다.
이정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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