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터키에 져 2연패로 8강무산
지상전 포르투갈, 공중전 체코에 3대1로 완승
호날두 & 데쿠, 도움품앗이 각 1골1어시스트
유로2008 A조 포르투갈이 11일 체코를 3대1로 물리치고 2연승, 이번 대회 16개 출전국 중 가장 먼저 8강행 티켓을 확보했다. 이번 대회 공동개최국은 스위스는 이날 터키에 1대2로 역전패, 가장 먼저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체코와 터키는 각각 1승1패를 기록, 양자대결에서 한 장 남은 A조몫 준준결승 통과증 주인공이 가려지게 됐다. ◇포르투갈(2승) 3 - 1 체코(1승1패)
“체코는 과감한 경기를 펼쳤다. 많은 득점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체코가 포르투갈과 다른 점은) 호날두와 데쿠가 없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10여년동안 세계최강 미국 여자축구 대표선수로 활약했던 줄리 파우디는 ESPN 해설자로 11일 포르투갈 ? 체코 경기를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랬다. 체코는 유로2008 개막전(7일)에서 한수 아래 스위스에 쩔쩔매던 그 체코가 아니었다. 포르투갈전 직후 로이터통신도 지적했듯이, 체코는 특히 윙플레이와 문전헤딩에서 매우 돋보였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마무리 터치가 문제였다. 황금기회는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포르투갈은 달랐다. 긴장되고 흥분된 가운데서도 경기가 아니라 마치 공놀이를 하듯 사뿐사뿐 길게 짧게 앞으로 옆으로 볼을 배급하며 게임의 완급을 조절한 데쿠가 있었고, 잡아채고 걷어차고 가로막고 들이밀고 온갖 반칙으로 저항하는 겹수비를 가볍게 따돌리며 골을 넣고 동료에게 득점통로를 열어주고 종횡무진 활약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었다.
포르투갈의 전반전 선제골과 후반전 결승골은 호날두와 데쿠의 품앗이 합작품이었다.
전반 8분. 체코 문전 왼쪽에서 패스를 받은 호날두는 몰려드는 수비수 틈새에서도 장난끼가 느껴질 정도로 여유있게 보다 안쪽 동료에게 헛다리짚기 패스, 달려들며 곧바로 리턴패스를 받은 호날두는 황급히 달려나오며 몸을 날리는 페트르 체흐 골키퍼마저 따돌리려고 훌쩍 뛰어넘었으나 체흐의 손끝에 살짝 걸린 볼은 호날두를 따라가지 않았다. 체흐의 손이나 품에 감기지도 않았다. 핑그르 두어바퀴. 어느새 그곳까지 파고든 데쿠는 즉각 골문을 향해 왼발로 가볍게 톡. 그러나 체흐의 필사적 낮은 포복 방어에 볼이 다시 걸려 데굴데굴. 데쿠는 이것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른발로 톡. 볼은 체흐 대신 골문으로 뛰어든 수비수들 사이를 스치며 골문 안으로 쏙. 밀집방어벽에 걸리기 십상인 무모한 대포알 슈팅 대신 빈틈을 노려 쓱싹 찔러넣은 데쿠의 눈썰미가 돋보였다. 두번째 슈팅 때 볼이 앞발에 걸렸으나 디딤발을 써 구르는 동작을 생략하고 그대로 밀어넣기식 슈팅으로 해 체흐 골키퍼가 더 이상 손쓸 틈을 주지 않은 것도 교과서적 기회포착 시범이었다.
데쿠의 선제골은 체흐의 공격본능에 불을 지폈다. 노장골게커 바로시를 최전방에 박아놓고 시온코 등 날개들의 측면공격에 문전공중볼 공수로 거듭 포르투갈을 위협했다. 만회골이 터진 것은 전반 17분. 포르투갈 골지역으로 날아드는 오른쪽 코너킥을 시온코가 몸을 날리며(혹은 수비수에 밀려 쓰러지며) 헤딩슛, 승부의 균형을 되찾았다.
포르투갈과 체코는 이후에도 수차례 아슬아슬한 슈팅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펼쳤다. 포르투갈은 지상전에서, 체코는 공중전에 우세를 보였다. 미드필드 싸움은 치열했다. 특히 체코 선수들은 ‘가까이 오면 너무 위험한 호날두’의 원천봉쇄하기 위해 하프라인 부근이든 터치라인 부근이든 가림없이 호날두가 움직이면 거의 예외없이 반칙동반 육탄방어를 펼쳤다. 그 바람에 호날두는 특유의 현란한 드리블을 ‘길게’ 선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대신 예리한 패스로 동료에게 길을 터주는 한편 24분과 41분에는 문전 외곽 중거리포로, 45분에는 프리킥으로 야금야금 ‘정조준’을 해나갔다.
후반 18분. 위태위태 버티던 체코 골문이 마침내 열렸다. 이번에는 데쿠 조연-호날두 주연 골이었다. 문전 오른쪽 바로 외곽에서 가로막는 수비수를 비껴 안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데쿠는 페널티아크 바깥에서 안쪽으로 뛰어드는 호날두를 겨냥해 땅볼 횡패스, 호날두는 달려들던 그 스탭 그대로 오른발로 논스톱 발사, 90도로 방향을 바꾼 볼은 잔디를 스치며 그대로 골문 왼쪽아래로 빨려들었다. 체흐 골키퍼가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볼은 이미 금지선을 넘은 뒤였다.
이 벼락치기 득점장면을 잘게 썬 슬로모션은, 정상스피드일 때 얼른 눈치채기 힘든 ‘인간적인, 아주 인간적인’ 장면을 보여줬다. 호날두의 쇄도스피드와 초강력 발사모션에 본능적 보호본능이 작동했는지, 볼이 아니라 대포알이라도 몸을 날려 막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호날두 앞 체코수비수 3명이 발사순간 (큰 동작은 아니었지만) 일제히 몸을 움츠리는 장면이 중계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체코는 세계에서 가장 덩치 큰 포워드 중 한명인 얀 콜러(6피트8인치/218파운드)를 투입하는 등 총력반격에 나섰으나 돌아온 건 동점골 얻기가 아니라 쐐기골 맞기였다. 이 역시 호날두의 발끝에서 무르익었다. 후반 45분이 다 돼 인저리 타임 예고판이 올라간 직후. 조급한 마음에 옵사이드 트랩을 쓰며 하프라인 근처까지 전진한 체코 수비라인이 포르투갈 진영에서 선수들이 엉켜 쓰러지자 느긋한 프리킥을 예상하고 한순간 방심했다 된서리를 맞았다.
수비라인 바로 뒤 허허벌판으로 로빙패스를 날려주자 호날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꿔채 체흐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뒤, 반대편에서 쇄도하던 교체멤버 콰레스마에게 땅볼패스, 콰레스마는 텅 빈 골문에다 가볍게 쐐기골을 쑤셔박았다. 다혈질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좋아라 날뛰었다. 백발의 학자풍 체코감독은 미동도 않은 채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득점왕이자 포르투갈 4강진출 주역이었던 ‘검은 표범’ 에유세비오는 주먹 쥔 양손을 펼치며 후배들의 퍼포먼스에 장단을 맞췄다. 호날두는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에서 얻은 5골 가운데 4골을 직접 넣거나 도움을 줬다.
뛰어난 세이빙 능력에다 독특한 헤드기어 덕분에 스위스의 유명 놀이공원 모델이 되기도 한 체흐 골키퍼는 지난달 21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 골키퍼로 나서 맨U의 호날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데 이어 21일만에 또다시 호날두의 발길질에 패전수문장이 됐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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