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라면 이가 갈린다. 멍청 탓인가. 딴에는 열심을 다 한것 같은데도 영 판이다. 흉내 낼 꾀라도 있었다면 어찌 어찌 뒤따라 갈 수 있었으련만, 지금 생각하면 그도 아니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6년. 영어시간은 웬수였다. 목소리 낭낭했던 친구따라 읽노라면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독일병정 군화소리’다. 이쯤이었다면 그래도 참을 만 했을 것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뛰어 든 대학, 빠듯한 서울 생활에서도 영어에 매달리기는 매 한가지다.
좋다는 학원에도 기웃거려 본다. 교우들과 요령을 나누고, 심지어 ‘제일 좋은 방법’이라 우기는 친구따라 영어책을 첫 장부터 깡그리 외우려는 멍청을 떨기도 했다. 그래도 꽝이다. 영어에 쏟은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여기서만 헤어 졌어도 덜 억울했을 것이다.
군에 입대, 첫 휴가가 끝나 귀대 할 때도 영어를 챙긴다고 수첩형 사전을 사 들었다.
그렇게 영어를 두고 오두방정을 떤 뒤끝에 얻은 것은 “소졸 출신 분대장님”의 매타작,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정갱이가 퍼렇게 멍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군 제대와 함께 인연을 끊기만 했어도 다행이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업보련가.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 세관원의 구시렁거리는 말을 한마디라도 알어 들을 수 있었던가.
말짱 헛일이다. 영어는 쌩판 외국어, 10년 공든탑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돌맹이 하나도 쌓아 보지 못한 꼴이다. 억울·분통이 터질 일, 사실인걸 어이할 것인가.
미국 생활 30여년이다. 약간 빠르지만 음악같이 아름답다는 샌 프란시스코 영어권에서 살었다. 영어속에 푸-욱 잠긴 하루 하루였다. 대부분 미주 동포들은 거의 같은 자리에서 살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말하는 완전한 “영어 몰입교육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말이다.모두가 영어만은 끝장낼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물어 본다. 지금쯤은 입에서 영어가 술 술 나오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아내를 부를 때는 ‘이름’이나 ‘허니’가 아니고,”여보”다. 돈을 셀 때, 원·투인가. 하나, 둘, 셋이다. 화가 나 큰 소리칠때도 그냥 ‘욕소리’다. 누구들같이 “F word”가 아니다.
물론, 이웃들이‘미국 사람’으로가 아니라 눈에 익은 이웃으로 보인다는 점을 내 세울 수는 있다. 누구를 만나든 그냥 편하게 묻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서로 낯이 익고, 배짱만 두둑해 졌다는 것이리라.
처음에는 그렇지 못했다. 나 만 영어를 못하는 줄 알었다. 백인들은 말 할 것도 없고, 다른 외국인들 모두도 ‘영어 도사’인 줄 알고 주눅이 들었다. 밤 길에 등치 큰 “유색인”을 만나면 등골이 오싹 발 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영어 못하는 이웃들이 수두룩 했다. 괴물같은(?!) 친구들의 마음씨는 그렇게 곱기만 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처음 보는 이웃=외국인=을 대하는 마음이 먼저 편해저야 한다. 백인 앞에서는 주눅들고, 흑(백)인 앞에 서면 겁을 먹고, 남미·동남아인에게는 인상 쓰는 심성으로서는 안된다. 알고도 귀가 안 뚤리고, 입이 안 열리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머리로 익힌 내용이 생활속으로 녹아 스며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안되어 문제지만…
“영어, 영어 외처도…한국영어 ‘바닥”이라는 기사(본보6/4 참조)가 새삼 눈길을 끈다.
영국의 영어인증시험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를 주관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등은 지난해 상위 20개국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 3일 발표했다. 비영어권 20개국 가운데 한국은 쓰기·말하기에서 19위, 듣기·읽기에서는 18위였다. 꼴찌 수준이다. IELTS 관계자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고 조기 영어 교육 열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지만 성적은 제자리 걸음”이라고 말하며,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말은 된다. 그래서 원어민 영어를 찾고, 조기 유학을 권하고, 기러기 부부가 마음을 삭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가 그렇게 그 냥 되는 ‘말과 글’일까.
옛말에 “되(升)로 배워, 말(斗)로 풀어 먹는다”했다. 어린이 모두를 ‘필요한 영어인력’으로 키우고 기를려 함은 욕심이고, 무리다. 영어는 유용한 하나의 도구일 뿐, 교육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웃고 들어 가서 울고 나온다’는 영어, 나에게는 지금도 웬수일 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