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던 힐러리 클린턴의 야망이 결국 좌절됐다. 실패를 달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힐러리의 경우 특히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클린턴 부부는 이기고 성공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아칸소 주지사와 대통령, 연방 상원의원 등 8번의 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했으니 그들의 사전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가는데 실패의 경험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클린턴 부부의 경우와는 반대로 성공은 반복된 실패 위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복기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승리를 의심치 않으며 기세 좋게 시작했던 힐러리의 민주당 예선 마케팅은 실패로 끝났다.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다른 후보의 추종을 불허하던 힐러리는 왜 실패했는가. 마케팅의 법칙들을 적용해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집중과 독점의 법칙
마케팅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중요한 개념은 잠재 고객의 뇌리에 한 단어를 심는 것이다. 또 두 회사가 같은 단어를 고객의 기억 속에 심을 수는 없다. ‘변화’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오바마는 집중 마케팅에 성공했다. 고객들의 요구가 아무리 복합적이라도 이것을 두 가지 이상의 단어로 표현하기보다는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이다.
‘경험’을 내세웠던 힐러리는 ‘변화’라는 화두가 더 먹히는 조짐을 보이자 이에 편승하는 전략을 택했지만 때는 늦었다. 버거킹이 ‘신속함’을 앞세운 맥도널드에 점점 처지자 같은 컨셉으로 마케팅을 시도했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은 유사한 실패 사례이다.
■예측불능의 법칙
시장상황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힐러리 진영은 안일한 예상에 근거한 전략을 세웠다. 2월5일 수퍼화요일을 기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지나친 낙관과 자만심을 보였다.
반면 오바마 진영은 지난해에 이미 수퍼화요일 이후인 금년 3~4월 예비선거를 치르는 주들의 선거구별 투표성향까지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전략을 세우는 치밀함을 보였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한톨 한톨 모으듯 선거인단을 꾸준히 더해가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기 승부라는 예상이 빗나가자 힐러리의 선거참모들이 우왕좌왕한 것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한 장기 로드맵의 부재 때문이었다.
■성공의 법칙
역설적으로 힐러리가 성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패한 요인이 됐다. 성공은 오만으로 이끌고 오만은 실패를 초래한다. 성경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때 성공가도를 달리던 많은 대기업들이 실패한 것은 성공할수록 점점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의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힐러리는 ‘클린턴’이란 이름 석자 만으로도 기존 시장을 지키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롱테일의 법칙
힐러리 진영은 “20%가 전체를 주도한다”는, 이른바 ‘파레토의 법칙’을 너무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지금까지의 마케팅이 상위 20%에 해당하는 핵심 상품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별 볼일 없는 80%에 관심을 갖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이 ‘롱테일의 법칙’이다. 인터넷이 있기에 가능해진 마케팅 기법이다.
오바마가 인터넷을 활용, 다수의 소액 기부자들에 집중해 엄청난 선거자금을 모은데 비해 힐러리는 소수의 고액 기부자들에 의존했다가 상대적인 자금난을 겪어야 했다. 한마디로 개미가 공룡을 이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메시지는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메시지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최근에는 ‘실패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까지 생겨나고 있다. 성공학이 정답을 알려주고 문제를 이해시키는 모방식 교육이라면 실패학은 스스로 문제를 풀게 하는 학습법이다. 입에는 써도 학습효과가 뛰어나다. 그래서 수많은 기업들이 영국의 베어링 은행을 도산케 했던 풋내기 은행원 닉 라슨에게 수만달러의 강연료까지 안겨주면서 실패담을 들으려 한다.
힐러리의 패착은 실패학 교과서에 오를만한 사례이다. 성공을 꿈꾸며 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숨을 고르며 한번쯤 되씹어 봐야 할 것은 오바마의 성공보다 힐러리의 실패가 던져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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