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어린 학생들이 ‘나’자를 쉽게 읽는다. 뜻을 물으면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활짝 웃는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보다. 또 가끔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가 ‘I like to be myself.’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내세
우는 모습이 당당하다. 그 어린 가슴에 자기 스스로를 내세우는 기백이 싹 트고 있음을 본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린 젖먹이 시절부터 자기를 주장하는 그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미국사람들이 자주 쓰는 어휘가 ‘나’ 즉 ‘I’라고 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의 글에서 ‘나’를 계속 읽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공원에 갔어요. 나는 꽃을 보았어요. 나는 친구하고 놀았어요. 나는 벤치에 앉았어요. 나는 …’ 결국 ‘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접속사로 글들을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나’가 가려지지만 결국은 사고의 중심에 내가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나’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귀중한 ‘나’는 어떤 존재인가.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비로소 내가 있지 않은가. ‘노랑’은 무엇인가. 빨강, 파랑, … 다른 색깔들이 있어서 구별되는 색깔이다.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가 있을 수 없음은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서로 도와가며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다.‘이기주의’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가리키며 ‘자기중심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마음 가짐은 혼자도 살 수 있다는 그릇
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질과 양의 사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제각기 다른 생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 능력을 서로 보완하면서 보다 나은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인류문화에 우열의 차이가 없고 거기에는 서로 다른 점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능력에 우열의 차이가 없고, 거기에는 서로 다른 점이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능력들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복잡한 문화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우리들이 흔히 느낄 수 있는 직업의 귀천은,
두뇌를 사용하느냐 체력을 사용하느냐 또는 보수의 다과를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이지 일의 본질을 말하지 않는다.
오래 전 일본의 어느 교사가 학급 전체의 학생에게 똑같은 점수를 주어서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우리 사회의 요구에 따라 우열을 판별하여 줄 세우기를 하면서 의문
이 생길 때가 있다. 학생들의 선한 마음, 고운 마음, 주위 사람을 돕는 마음, 잘 어울리는 마음… 등이 아주 높이 평가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가치’는 숫자로 평가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부모와 교사는 이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보아야 할 것 같다. 모든 학과 학습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기초가 되는 인성교육을 소홀히 할 일이 아니다. 인성교육은 교육의 기초이고 가정과 학교에서 어
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하는 영양소이다. 친구들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놀이 친구이고 도와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부터 배워야 안다. 그들도 틀림없는 주인공들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주인공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주인공들은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맡고 있는 제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내 자신이 분명한 주인공이지만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변함없는 주인공일 수는 없다. 때
로는 주연을 맡고, 때로는 조연을 맡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배역을 맡을 수도 있다. 어떻든 나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맡는 역할이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가. 그래서 살맛이 더하는 게 아닌가.
이 세상은 독점할 대상이 아니다. 65억의 인구가 각자의 영역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지구임이 고맙다. 이 지구가 우주에서 볼 때 단 하나의 푸른 구슬이기에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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