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샌드위치 경제 위기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가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은 주춤한 반면 임금 등 비용은 오르는 ‘저생산, 고비용’ 구조로 인해 일본과는 격차가 벌어지고 오히려 중국에 추격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남가주 로컬 한인은행들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그동안 한인은행들은 대형 주류은행과의 경쟁구도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대형 주류은행들도 한인 직원들을 대거 보강하면서 한인사회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계 은행까지 한인마켓 공략에 가세하면서 한인은행들이 샌드위치를 당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고성장을 거듭하며 한인사회의 경제 성장을 상징해 온 한인은행들은 지난해부터 공통적으로 수익감소, 부실대출 급증, 주가 폭락, 행장 조기퇴진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시련을 겪고 있다.
한 은행 간부는 “현 한인은행들의 문제점은 IMF가 터질 때의 한국 경제 상황과 비슷하다”며 돈이 좀 벌린다고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자기도취에 빠져 장기적으로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에 소홀했으며 결국 그 대가를 현재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마다 현금 유동성 확보와 자산 건전성 확보를 위해 치열한 예금고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마저 여의치 않다. 역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예금을 유치하다 보니 수익 건전성은 악화되고 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 수익으로 먹고 사는 것이 은행인 만큼 대출이 활성화 돼야 하지만 한인은행들은 대출면에서도 확장 보다는 위축 모드다.
기자가 살고 있는 글렌데일 또는 주변 한인타운의 콘도나 상가 건축 현장을 지나가면 이스트웨스트 은행 등 중국계 은행이 건축 론을 제공했다는 팻말이 눈에 많이 띈다. 큰돈을 빌려줘야 큰돈을 버는데 규모가 한인은행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형 주류와 중국계 은행들이 잔칫상을 벌이고 있는데 한인은행들은 부스러기만 주워 먹는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은행권에서는 유난히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본국 은행들의 로컬 은행 인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본국 은행들은 한인은행들의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틈을 이용, “로컬 한인은행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인은행들이 먼저 사달라고 접근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입질’을 하면서 한인은행들을 뒤흔들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로컬 한인은행 입장에서 분명 인수합병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한인사회 경제 규모로 볼 때 본국 은행 2곳을 포함, 남가주에만 17개 한인은행들이 모두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며 인수합병이 은행 주가와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분명 한인은행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어려운 현 경영환경을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하고 이를 통한 경영개선과 주가 회복이 인수합병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 이사들이야 주가가 떨어졌다손 치더라도 그동안 보유주식을 담보로 뽑은 거금으로 부동산과 사업에 투자, 당시 10만~50만달러 초기 투자금액의 몇 배, 몇 십배를 건졌으니 ‘천만 단위대를 벌 수 있었는데 백만 단위대로 줄었을 뿐’이라며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 한 소액 주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70대 은퇴자인 이 한인은 자신의 은퇴자금의 절반인 5만달러를 한 한인 상장은행에 투자했는데 현 주식 시가 총액이 1만7,000달러로 구입했을 당시의 3분의1밖에 안된다고 하소연하면서 주식을 팔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문의했다.
우리 주위에는 이같이 평생 틈틈이 저축한 돈을 투자한 은퇴자, 자식들의 대학학비와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입한 샐러리맨, 생활비를 아껴 재테크 용도로 투자한 주부 등 한인은행 소액 주주들이 수천 명 있다. 매일같이 한인은행 주가 시세를 살펴보지만 오르는 날보다 떨어지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이들의 심정을 은행 이사들은 헤아리고 있는 것인가.
현재와 같이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인은행 이사들이 은행을 헐값에 매각한다면 한국에서 IMF 사태 이후 한국 기업과 은행들의 해외 헐값 판매가 ‘국부 유출’ 비난과 함께 국민의 분노를 산 것처럼 이곳에서도 소액 주주들의 거센 분노와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조환동 경제부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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