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제1회 전국무용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듀엣 작품 ‘백두기둥’.
영원한 무용가 주연희. 키 161cm에 체중 100파운드의 몸이 무용을 처음 시작했던 열아홉살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 연 희 무용 외길 50년 내달 기념공연
19세때 공연 본 후 반해 입문
스승 김상규 선생과 결혼
10년 전 미국 와 후학 양성
트리니티대 학장 9월 강단에
한국무용이라면 혹시 모를까, 발레나 현대무용가로서 50이 넘어서도 춤을 추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40세만 넘어도 토슈즈를 신지 못하고, 대개는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나 안무하고 가르치는 일에 정착하면서 무대를 떠나게 된다.
그러한 육체적, 문화적, 환경적 한계를 뛰어넘어 50년을 하루같이 춤을 춰온 사람. 그 세월의 사위를 주연희씨는 이번 공연 캐털로그의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춤이 너무 좋아서 50년을 하루처럼 춤을 추었습니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기도 했고, 인고의 가시밭길을 헤쳐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던, 때로는 비웃음을 당하던 한국의 1950년대로부터, 미국의 2세들에게 춤사위를 가르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험준한 현대무용의 길을 말없이 걸어왔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그래도 고통과 아픔보다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가슴에 남아있는 춤 사랑, 잊지 못할 50년 무용인생을 작품으로 모아 결산하려 합니다”
이 특별한 무대를 위해 그녀는 독무 다섯 작품을 포함 9개 작품을 준비했다. 1959년 스물한 살 나이에 추었던 ‘꿈의 아잔타’, 84년 작품 ‘안개’, 94년작 ‘마리화나’, 그리고 최근 작들인 ‘낙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제자 4명과 함께 추는 3개의 ‘군무’, 미국인 제자의 솔로춤(‘It’s Too Late’)까지 모두 그녀의 창작무용으로, 한 무용가의 50년 인생이 이날 무대에서 펼쳐지게 된다. 특히 장사익의 노래에 맞춘 ‘낙화’는 슬픔이 서린 여인의 애가로 주씨 자신의 삶을 그린 춤, 그리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머리만 깎으면 중”이라고 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녀가 지금은 매일 새벽기도 하는 크리스천 신앙인으로 거듭난 것이 너무 감사해서 바치는 춤이라고 한다.
“현대무용은 창작이 아니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악보 없이 연주하는 음악처럼, 형식과 테크닉 없이 동작을 자유롭게 마음껏 표출하는 육체의 언어이지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깊이 빠져드는 것이, 아직도 춤을 출 때면 몸과 마음이 젊은 시절과 똑같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50년 전 추었던 춤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나 자신도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주연희씨는 19세 때 대구 키네마 극장에서 열린 김상규 현대무용발표회를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남자가 저렇게 멋지게 춤을 출 수 있다니, 자신도 그렇게 추고 싶어 무작정 김상규 선생을 찾아가 가르쳐달라고 졸랐던 어린 소녀는 얼마 안 있어 그의 수제자가 되었고, 후에 그의 아내가 되었다.
당대 최고의 무용가인 이시이 바쿠의 수제자이며 한국 무용계의 큰 기둥이었던 고 김상규 교수(안동대학 정년퇴임, 89년 타계)는 평소 주연희를 일컬어 “아내이기보다는 나의 멋진 작품”이라고 말했고, 그녀는 김 교수를 “남편이기에 앞서 영원한 선생님”으로 존경했다. 최승희, 조택원, 김상규로 이어지는 한국의 위대한 무용가들의 맥을 자신이 이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녀는 이번 공연에서 발표하는 춤의 사위라든지 무대의 구성과 안무법도 모두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기법이 많이 이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89년 남편이 타계한 후 무용은 더욱 그녀의 삶 중심으로 들어왔다. “무용은 남편이었고 애인이었고 자식이었다”는 한마디가 말해주는 것처럼 춤추고, 안무하고, 가르치고, 연출하고, 발표하는 일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미 67년에 주연희 무용단을 창단했고, 79년부터는 김상규 무용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공연을 소화했던 그녀는 10년전 미국에 오기 전까지 ‘주연희무용단 발표회’ 20회, 주연희 문하생 새싹발표회 10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주연희 현대무용발표회’를 20회나 무대에 올렸을 정도로 춤에 ‘미쳐’ 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상 경력 가운데 그녀가 가장 자랑스럽게 꼽는 것은 92년 열린 제1회 전국무용제에서 대통령상, 안무상, 연기상을 휩쓸었던 것. 그 전에도 79년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최우수상을, 87년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안무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번은 대작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무용이 썩 멋있는 뮤지컬도 하고 싶고요. 그리고 이제는 학교에서 예술적으로나 학구적으로 빠지지 않는 좋은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도 집중하려 합니다”
이 소망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 같다. 10년전 도미한 후 ‘유니 모던 댄스 스튜디오’를 세우고 지금까지 20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친 주씨는 지난 22일 트리니티 유니버시티(총장 케빈 최)의 예술대학 무용과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 대학에 무용과가 개설되기는 처음”이라며 흥분하는 주교수는 오는 9월 학기부터 정규과목인 현대무용과 일반인을 위한 평생대학원 무용반의 강의를 맡게 된다. 또한 임관규씨를 초빙해 한국무용 클래스를 만들고 미국인 전문 무용교수들을 기용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할 예정.
“대장간의 쇠가 달은 것 같은 춤을 춘다”고 한 평론가가 격찬한 바 있는 주연희의 춤, 이제 곧 이벨극장 무대를 뜨겁게 달굴 순수하고 강렬하며 우아하고 자유로운 무용이 기대된다.
“무용은 나의 생명, 나의 전부, 나의 가는 길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무용가로서 살 것입니다”
<정숙희 기자>
●공연메모
제목: 주연희 무용 외길 50년 기념 공연
일시: 6월7일 오후 6시30분
장소: 윌셔 이벨극장 (4401 W. 8th St., LA)
티켓: 50달러 (노숙자 셸터 건립기금)
문의: (213)361-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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