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탔기 때문에 차장 누나가 같은 사람일 때가 많았다. 차를 타자마자 요금을 내면 차표에 사인을 하고 찢어 주었다. 어느 날 버스 안에 사람들이 많아서 요금을 내지 않고 학교 앞까지 가게 되었다. 며칠 전에 버스를 내릴 때 차장 누나에게 주지 않아서 갖고 있었던 버스표가 있어서 한번 요령(?)을 피우고 싶었다. 차비도 주지 않았음에도 시치미를 딱 떼고 차장 누나에게 이전의 차표를 주었다. 차표 색깔은 같은 색깔인 것을 확인한 터고 그리고 같은 누나이기에 차표에 이리저리 쓰여 있는 사인도 같은 것이라 판단했다. 태연하게 그 차표를 누나에게 주었다. 누나는 나를 위아래로 몇 번이나 쳐다보았다. 집에 있는 동생을 생각하는 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버스 문 앞에 서서 다음 정류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누나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어도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했는지 모른다. 가슴이 콩당거려 빨리 그 버스를 내리고 싶었다. 그냥 버스비를 드리고 내려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때문에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은 도술에 능하였다. 천궁의 상제조차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장난꾸러기였다. 천궁의 내로라하는 장수들을 격퇴시킨 손오공은 안하무인이었다. 손오공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제신들은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였다. 부처님 앞에서도 손오공은 자신의 재주를 부리며 까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72가지 도술을 과시할 뿐 아니라 여의봉의 위력, 그리고 단숨에 십만 팔천리를 달린다는 근두운(筋斗雲)을 자랑한 것이다. 손오공의 이러한 천방지축의 모습을 보던 부처님이 오공에게 말을 하였다. “네가 근두운을 타고 세상 끝까지 달려가서 다녀갔다는 표식을 남기면 너의 승리를 인정하겠노라.”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오공은 근두운을 타고 하늘 끝까지 달려갔다. 끝까지 달려가니 화과산(花果山)이 있어 그 산 바위에 “여기 손오공 대왕이 다녀간다”라고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남기고 부처님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돌아와 자신의 승리라고 말하는 순간 자기가 갔다 온 세상의 끝은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가장 지혜롭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결점이 있는데도 구태여 숨기려 하고, 있는 사실을 포장하거나 위장하여 그 실체를 숨기려는 사람이다.
미국 현대 민주 정치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의 수치로 남아있다. 자신을 반대하던 정치인들의 숙소에 비밀 녹음장치를 설치하여 자신이 대통령에 재선되기 위한 공작을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일인데 어찌 그런 일을 어리석게 계획하고 감행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아이 같은 일을 어른들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사실 한국 현대 정치에서도 정도를 벗어나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과 역사는 그 진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 한 세대도 지나지 못하여 숨기려고 했던 것들이 드러나고 말았다.
신약성경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온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이 생겼다. 정말 귀한 마음이었다. 재산을 팔았지만 전부 다 기부하려니 아깝기만 하였다. 당연하였다. 그래서 일부는 숨기고 일부만 사도들에게 전달하였다. 그것만도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다 내어 놓지 못한 일부에 대하여 책망을 하였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단지 재산에 대한 강조보다는 하나님을 속이면서 무엇인가를 자랑하거나 보이려고 하는 그런 외식적인 모습에 대하여 경고를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복음을 현상만으로 전하지 않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했다. 보여주는 전도자가 아니라 삶의 증거자가 되었다. 구약성경의 욥은 재산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단지 부자라는 말만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가장 큰 자”라고 했다. 그 말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도 그를 인정하고 칭찬을 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입맞춤으로 현상적인 인사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뜻을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있는 보석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가 증거하고 있는 그 진실이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인 것이다. 그것도 없이 뛴다고 자랑하면 하늘에 계신 분이 뛰는 놈들을 보고 웃게 되고 만다. 하늘이 웃으면 이 땅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늘 이 땅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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