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젊은 나라다. 200년 남짓한 건국 역사부터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을 자랑하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코카콜라, 청바지,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도 젊은이들의 문화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중간 연령은 유럽보다 낮으며 이 추세는 앞으로도 더 심화될 전망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37세인 유럽인의 중간 연령은 2050년이면 52세로 급속히 상승하지만 미국인은 35세로 지금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현재 인구 유지에 필요한 가구당 2.1명을 넘는 높은 출산율과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이민 문호 덕분이다.
젊은 사회는 늙은 사회에 비해 진취적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파이어니어 정신, 뉴 프런티어, 이노베이션, 실용주의는 모두 젊음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인들은 젊은 지도자를 선호한다. 1960년 미국 대선에서 43세의 젊은 전쟁 영웅과 57세의 변호사가 붙었다. 존 F 케네디는 경험과 경력 면에서 리처드 닉슨과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태평양 전쟁 중 자기가 몰던 보트가 일본 전함의 공격으로 두 동강이 나자 부상당한 동료를 입으로 물고 인근 섬까지 헤엄쳐 구출한 그의 젊음과 패기를 샀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는 늙은 전쟁 영웅과 젊은 변호사가 나왔다. 결과는 조지 부시의 완패였다. 68세의 현직 대통령이 까마득한 예일대 후배인 46세의 빌 클린턴에게 진 것이다. 미국인들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부시를 제쳐두고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클린턴의 손을 들어줬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젊은 정치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1996년에는 다시 늙은 전쟁 영웅과 젊은 변호사의 대결이 벌어졌다. 그러나 73세의 밥 도울과 클린턴의 싸움은 해보기도 전 이미 승부가 나 버렸다. “분노는 어디 갔느냐”(Where is the outrage?)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도울은 한 번도 선두주자가 되어 보지 못한 채 몰락하고 말았다.
올해 대선은 다시 늙은 전쟁 영웅과 젊은 변호사의 경쟁으로 굳어지고 있다. 밥 도울을 닮은 71세의 존 매케인과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47세의 버락 오바마가 그들이다. 아직 본선은 시작도 안 했지만 승부는 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등록 당원 수, 자금, 열기 모든 면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을 압도하고 있다.
공화당의 희망은 일부 저소득층 백인들이 흑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종 편견을 자극하는 일인데 이 또한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난 주 미시시피 연방 하원 보궐 선거에서 입증됐다. 공화당은 지난 10여년간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이 지역구 선거를 올 대선의 전초전으로 보고 딕 체니와 칼 로브를 급파하고 민주당후보를 오바마와 라이트 목사와 연관시키는 전략을 폈다. 결과는 공화당의 참패였다.
이로써 공화당은 올 들어 3번째 “안전한 지역구”에서 고배를 마셨다. 미국인의 80%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고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이라크에 들어가 2조 달러를 쏟아 붇고 4,000명의 미군 전사자를 내고도 허우적거린 것과 미 사상 최악의 부동산 버블이 부풀었다 터지는 것을 지켜본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존 매케인은 스스로가 “항복”이라고 주장하던 이라크 철군을 공약으로 내걸고 3년이나 늦게 카트리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등 부시 행정부와 거리 두기에 나섰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일찍 읽은 눈, 힐러리를 능가하는 조직과 자금 동원력, 라이트 목사 발언 논란 때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을 함께 갖춘 오바마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지도자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그를 “멋진 양복 속에 감춰진 강철”이라고 부르면서 ‘민주당의 레이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도 지지 기반이 취약한 매케인이 그를 이기기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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