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명의 수강생들이 랜디 포쉬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듣기 위해 소강당을 꽉 채웠다. 피츠버그에 위치한 카네기 멜런대학에서 지난 3월 1일에 있었던 일이다. 수강생들은 포쉬교수의 학생들과 동료교수들. 1시간 20분간 진행된 강의는 강사와 청중이 혼연일체를 이룬 웃음바다였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자신의 전공인 컴퓨터공학 대신 생을 마치면서 그간 살아 온 회고담과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인생철학을 독특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말과 제스처로 들려줬다.
그는 지난해 10월 의사로부터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췌장암 말기환자. 그러나 그는 주어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비록 암에 걸렸지만 그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를 낸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그는 이런 아쉬움도 나타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질 때 내가 잡아주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튜브에 올려진 그의 강연을 시청했다.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제가 내 아내 제이의 생일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제이의 생일을 축하했으면 합니다.”
생일 케이크가 들어왔다. 포쉬교수는 맨 앞줄에 앉아있던 아내를 무대 위로 불렀다. 청중은 일제히 일어났다. 그리고 생일축하 노래를 소리 높여 합창했다. 제이가 입으로 케이크 촛불을 끌 때 박수는 그칠 줄을 몰랐다. 교수부부는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청중 속에는 침묵만이 한참동안 감돌고 있었다.
그의 투병기와 ‘마지막 강의’는 지난 9일 ABC-TV를 통해 특집방송으로 전국에 방영이 됐다. 이 방송은 포쉬교수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풋볼스타인 하인스 워드의 풋볼 연습장면을보여주었다. 포쉬교수가 ‘마지막 강연’에서 어릴 때 자신의 꿈은 풋볼선수라고 한 말이 워드선수에게 알려지면서 워드선수가 포쉬교수를 풋볼 장으로 초청, 그는 워드의 등번호 86번의 유니폼을 입고 함께 풋볼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마지막 수업’을 잊지 못한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이다. 농땡이 부리기를 좋아하는 프란츠는 이날도 뒤 늦게 교실에 들어섰다. 교실 안은 의외로 조용했으며 아멜선생은 늦게 들어온 프란츠에게 혼을 내지 않고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동네사람들도 교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늘은 여러분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입니다.” 아멜선생은 이렇게 말하면서 수업을 끝냈다. 그리고 “프랑스 만세”라고 칠판에 써 놓고 자리를 뜬다.
독일 나치 군이 이 학교가 위치한 알자스지방을 점령하면 프랑스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당시 판자 집 피난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한국의 중학생들에게 애국심을 크게 고조시킨 작품이었다.
내가 겪은 ‘마지막 수업’ 하나를 소개해 보자.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중에 해방을 맞았다. 당시 서울 흑석동에 있는 은로국민학교를 다녔다. 담임선생은 오하라라고 하는 20대의 일본 여자선생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을 꽤 따랐다.
선생은 해방 후 학기가 시작되던 첫날 교실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마지막 수업’을 해 주셨다. “내가 곧 일본으로 떠나야 되기 때문에 너희들을 더는 보지 못하게 됐구나. 지금 너희들은 내가 떠나야 되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후에 알게 되리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 너희들은 늘 내 마음을 떠나지 않으리라.” 나는 지금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교정을 떠나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 선생님도 ‘마지막 수업’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를 잊지 못하고 계시리라.
우리는 어느 때인가 ‘마지막 강의’ 또는 ‘수업’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 ‘마지막’들은 모두 티 하나 없는 진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생을 마감하는, 이른바 ‘유언’이든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이별’이든 말이다. 과연 포쉬교수와 같은 형편에 처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마지막 강의’를 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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