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베네수엘라, 중국, 북한. 이 나라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그들이 구사하는 외교언어를 꼽았다.
외교언어는 시빌리티(civility)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아주 장중하다. 이런 국제적 코드는 그런데 통째 무시된다. 격식 같은 것도 없다. 극히 도발적이고, 단어마다 독이 서려 있다. 특히 적으로 간주되는 국가에 대한 언어구사는 테러수준이다.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말살되어야 한다.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말이다. 부시야 말로 최악의 테러리스트다. 악마 그 자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한 말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한 동안 품위를 지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티베트 사태와 함께 언어가 달라졌다. 결국 본색이 드러났다고나 할까.
달라이라마를 ‘인간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로 매도한다. 엉뚱한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티베트 청년조직이 알카에다의 도움을 받아 자살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식이다.
북한의 외교언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조금만 이해가 어긋나도 온갖 해괴한 욕설을 퍼부어 대는 게 김정일 체제이니까.
이들의 독설은 그러면 계산된 논리의 소산인가. 때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체제의 속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나라들은 소위 혁명체제의 나라들이다. 이런 체제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그 속성상 치명적인 독소를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대립과 갈등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 ‘대화 상대로서 정치적 경쟁자’란 개념은 없다. 오직 박멸해야 하는 적만 있을 뿐이다. 계급의 적이든, 종교적 적이든.
언어의 전횡도 그런 전횡이 없다. 그 언어의 전횡은 그렇지만 체제유지의 방편이기도 하다. 항상 적의 존재를 대중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반동세력의 획책’ ‘서방제국주의자들의 음모’ 등의 언어구사를 통해 대중을 자극하고 선동함으로써 체제유지가 가능해서다.
문제는 이런 체제들이 남기는 도덕적 정치적 공백이다. 그 후유증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타도해야 할 적을 증오하는 법만 배웠다. 그런 토양에서 정치적 토론이나 타협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결론은 정치적 양극화다. 과거 공산권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처한 정치 현실이 바로 그렇다.
폭력성 언어의 전횡은 인간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그 결과는 모든 것에 대한 신뢰상실이다. 불신이 쌓여간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진다. 그 상황에서 기승을 떠는 게 저마다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를 자처하는 포퓰리스트들이다. 포퓰리즘이 마치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상황, 이것이 오늘날 동유럽의 정치기상도다.
광우병에 걸린 미친 소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이 미친 소가 먼저 나타난 곳은 TV다. 이 미친 소가 인터넷을 타더니 어느덧 진실로 둔갑했다. 미국의 소란 소는 모두 미친 소다. 그 미친 소의 고기를 수입해 먹으면 당신도 광우병이 걸려 몇 년 후면 사지를 비틀거리며 죽어갈 수 있다. 대한민국은 광우병 임상실험실이 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미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죄다 수출한다는 거다. 그 미친 소를 한국이 수입한다는 거다.
이야기를 뒤집으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독약이나 팔아 치부하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 독약을 수입해 국민에게 먹이는 사람이고. 이런 나라, 이런 대통령은 악, 그 자체다. 그러니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광우병 괴담이 전하고자 하는 숨은 메시지로, 섬뜩하기 짝이 없다.
광우병 소동은 따지고 보면 BBK 사건의 연장이 아닐까. 명색이 대통령 후보다. 그런데 증권사기나 해먹으려는 인간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그 BBK 사건이 검찰과 또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 한 국제 사기꾼의 행각으로 드러난다. 그래도 그 국제 사기꾼을 정의의 사도인 양 일부세력은 옹호하고 나선다. 적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은 여전히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적 시각을 거둬들이지 않고.
무엇이 미친 소를 제멋대로 날뛰게 했나. 10년간 이어진 좌우 이념대결이다. 악랄하고 독살스런 말들이 오갔다. 인간의 선의(善意)라는 건 당초에 존재조차 않는다는 식의 막보기 싸움이다. 그 결과 모든 신뢰는 무너졌다. 유언비어에 거짓말만 판치게 된 것이다.
그 틈을 뒤집고 ‘갈라진 혀’(double tongue)가 속삭인다. 기만의 언어, 타락의 언어를 내뱉는다. 양심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그 ‘갈라진 혀’에 사람들이 미혹된다. 미친 소가 되는 것이다.
광우병 소동은 아직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좌우 이념대결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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