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봉우리에 휘감기는 구름이 바람에 날려 생기는 모양을 만들어 이름이 붙여진 ‘귀신’(ghost) 구름.
제2캠프로 출발하기 위해 마지막 준비가 한창인 등정대원들.
고락 함께 한 3명 하산결정에 눈물왈칵
1-20-08
제2캠프인 ‘니도 데 콘도레스’(Nido de Condores, 5,559m)로 출발하는 날이다.
제2캠프라는 생각 때문인지 정말 숨이 차다. 한 이사님이 가르쳐 주는 호흡법으로 열심히 숨을 쉬어보지만 자꾸 멈추어서 쉬고 싶다. 이전에는 그저 가는 게 지루하고, 그래서 경치도 보고 싶고 즐기기 위해 일부러 잠시 서 있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정말 멈추어서 숨을 고르게 해야지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에 자꾸 멈추고만 싶다.
거기에다 날씨도 심상치가 않다. 저 산봉우리에 휘감기는 구름이 바람에 날려 생기는 모양을 귀신(ghost) 구름이라고 부른다는 가이드의 설명답게 정말 구름 모양이 귀신 손톱 모양에, 바람까지 얼마나 싸늘한지, 거기에다 진눈깨비까지 날리는 게 아닌가. 해가 쨍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구름 하나로 날씨가 180도 바뀌다니.
하지만 가이드들의 표정이 편안한 것이 이곳은 원래 이렇다는 뜻인가 보다. 그러니 정상은 얼마나 추울까? 기대 반, 걱정 반의 맘으로 캠프를 향해 열심히 발걸음을 옮긴다.
캠프에 도착하니 다들 지친 모습에 특히나 약사님과 조여사가 많이 지치신 모습이시다. 약사님은 갑자기 오한이 난다 하시면서 텐트에서 춥다고 벌벌 떨기까지 할 정도로 추위를 느끼셔서 재킷에 침낭까지 보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몸을 감싸고, 따뜻한 물을 얼른 드리고 싶지만 빙하를 퍼다가 물을 끓여주니 기다리는 시간이 한참을 걸렸다. 최 선생님 말씀이 올라오는 중에 약사님의 숨소리가 심상치가 않아서 많이 걱정스러웠다 하신다.
조여사는 평소 당뇨가 있으신지라 식사를 제 시간에 적당량을 드셔야 하는데 오늘 산행 중에는 점심시간이라고 특별히 충분히 준 시간이 없이 잠시 쉬는 정도의 시간만을 우리에게 할애를 하는 편이었다. 나도 그저 먹을 게 초컬릿밖에 없으니 간단하게 몇 조각 먹은 게 점심의 다 인 것 같다. 그러니 조여사는 식사다운 식사도 없었고, 그나마도 시간이 충분치가 않아서 제대로 드신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곳까지 오셨으니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버리신 거다. 걱정스러워 텐트에 가보니 누워계시는 모습이 정말 안쓰럽기 그지없다.
제2캠프에서는 2박을 하는 곳이니 느긋한 맘이 들며 팀 전원이 푹 쉬면서 체력 보강이 되길 바라며, 그런데 바람으로 인한 텐트의 펄럭거리는 소리로 잠이나 제대로 잘지, 날은 또 왜 이렇게 추운지 텐트 안에서도 입김이 훅훅 난다. 하품으로 인해 눈물이 나는데 주머니에서 손 꺼내기 싫어 그냥 흐르게 놓아둔다. 마르겠지… 그동안 감지도 못한 그래서 모자로 감춘 머리는 또 왜 이렇게 간지러운 거야. 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 짜증이 나기도 한다.
3명의 팀원이 건강문제로 하산을 하게 됐다.
1-21-08
아침에 일어나니 가이드들이 손가락에 기계 꼽고 혈압계 들고 다니며 또 검사하기 시작이다.
괜히 지은 죄도 없이 겁나는 시간이다. 산소 치수는 68에 혈압이 145다. 이럴 수가! 가이드가 물 많이 먹으라는 엄명이다.
나는 문제도 아니다. 어제 밤, 약사님이 왼쪽 아래 갈비뼈 부분이 너무 아파서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아침에 가이드가 검사를 하더니 폐에 물이 찬 것 같다며 바로 하산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제 도착하셔서 컨디션이 엄청 안 좋았는데 아마도 고소증세로 아주 위험한 폐수증이 나타났나 보다. 그것은 바로 하산 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제2 캠프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만족하신다면서 하산하기로 결정하셨노라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사모님의 컨디션에 조 선생님께서도 같이 내려가기로 결정하시고 짐들을 챙기신다.
우리 팀은 모두 올라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3명이 하산 결정이 내려지니 가슴이 이렇게 아플 수가 없다. 내려가는 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20일 가까이 힘든 캠핑생활 견뎌내며 같은 팀원으로 보낸 긴 시간, 끝까지 같이 못하는 섭섭함이 이렇게 가슴 뭉클한 건지 정말 몰랐다. 이런 일이 있고 나니 정말 우리 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에 중요한 우리 팀의 구성원을 소개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원정 대장님으로 묵묵히 말씀이 없으면서도 항상 우리에게 건강상식이며 많은 정보를 알려주시는 조동철 박사님이셨다. 이번 이 산행의 훈련을 위해 바쁘신 중에도 사모님과 일주일에 2번 꼭 볼디산(Mt. Baldy)에 오르는 훈련을 하시면서 준비를 하셨다. 이곳에 도착해서 고소에 특히 약한 모습을 보인 사모님을 항상 뒤에서 돌보아주시는 모습, 고소증세로 불면증으로 잠을 못 주무시는 어려움을 견디시면서도 산행 때에는 항상 선두를 맡으셔서 묵묵히 산행하시는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조 선생님 옆에서 항상 조용하시면서 예쁜 미소 지어주시는 우리 조 사모님, 얼굴이 많이 부어 보톡스 맞은 것처럼 주름이 없어 더 젊어 보인다는 농담에 웃음으로 답하셨지만 그 힘든 시간을 많이 견뎠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이번 원정에 음식담당 해주셔서 많은 수고 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야리야리 하신 우리의 하성자 약사님, 무거운 배낭에는 약봉지 무게가 반이라 하신다. 한 텐트 사용하는 써니 언니의 정보에 의하면 배낭이 무거우면 안 되니 짐을 빼라 해도 팀원들이 필요한 약을 들고 다녀야 한다고 약봉지는 절대 빼지 않으신다면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약을 각자 나누어 보관하자는 의견을 내놓을 정도셨다. 따뜻한 맘으로 항상 최선을 다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김중석 이사님, 산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항상 유익한 정보 알려주시는, 우리 팀의 보고다. 그날 그날 산행을 마치면 글을 준비해야 하는 나는 노느라 정신없는데 김 이사님은 어김없이 조그만 수첩 꺼내서 그날 하루의 기록을 꼼꼼히 적어나가신다. 우리 어설픈 여자 멤버들로 인해 여러 답답하신 일 많이 당하면서도 항상 웃음 잃지 않으시고 돌보아 주신 점, 깊이깊이 감사드린다.
우리 팀의 엔돌핀 메이커이신 최기선 선생님, 많은 경험 이야기를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 해주는 덕분에 베이스 캠프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많은 웃음으로 지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원정 후, 뒤풀이에서 말씀해 주었을 때에서야 ‘힘드셨구나’ 하고 알아차렸을 정도로, 산 중에서는 전혀 힘든 내색 안 하시고, 약한 모습은 느낄 수가 없었던 그런 카리스마를 보여주신 멋쟁이 선생님이셨다.
샌프란시스코의 산소 많은 곳에서 생활하시다가 아콩카구아의 희박한 산소에서도 잘 견뎌주신 써니 언니. 출발 며칠 전, 손가락에만 나타나던 관절염이 기어코 발가락에도 빨갛게 나타나서 걱정을 했는데 과감하게 산행을 시도해 주신 용감무쌍하신 분이다. 원정 후 남미로 떠난 배낭여행에서 더 잘 보여주신 용감함에 저의 많은 경험이 되어주신 분이다.
이번 원정의 모든 준비와 기획을 맡아 많은 수고를 해주신 한영세 이사님. 원정 전부터 우리의 장비 하나 하나 꼼꼼히 챙겨주시고, 도착하는 날까지도 가이드 회사 사람들이 잘 마중 나올까 걱정을 하셨다.
우리 팀의 막내, 최학선씨. 원정준비가 완벽에 가깝다. 체력준비서부터 장비준비까지 철저하게 준비함이 정말 우리 팀의 꽃이었다. 처음부터 정상에 오르는 날까지 한 번도 산행 행렬에서 쳐지는 법이 없이 가이드의 속도에 가장 잘 따라가는 모범생이었음을 자랑한다.
이렇게 평범하고도 특이한 9명의 우리 팀, 그 중 3명의 하산 결정은 정말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썰렁함과 섭섭함만이 남겨진 제2캠프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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