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문을 닫을 뻔 했던 미국 내 5대 투자회사인 베어 스턴스를 연방은행의 조정으로 JP 모건은행이 구해주었다. 민간 기업을 정부차원에서 구해준 케이스로 구제 금융에 해당한다. 시장경제원칙을 강조하는 미국사회에서 전격적인 일이다.
그런 만큼 미 의회에서도 공격이 들어왔다. 근거는 도덕적 해이다. 민간기업의 실수를 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해결해준다면 민간 기업 입장에서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정부가 구제해줄 것을 믿고 더 큰 이익이 있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하도록 조장해 위험관리체계가 깨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방은행 버냉키 의장은 의회에서 “도덕적 해이의 위험을 인정한다 해도 금융기관이 부도가 날 경우 사회 시스템적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제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럴 듯한 설명이다. 금융기관이 문을 닫게 되면 서로 연결돼 있는 금융기관의 어려움을 유발해 잘못하면 연쇄적 부도가 남으로써 금융계의 마비가 와 전체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시스템적 위험을 국민 경제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공황 때 금융계가 흔들리면서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진 역사를 보면 금융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기업과 분명히 다르다. 베어 스턴스를 구하고 나서 실제로 미 금융계는 일단 안정을 찾았다는 사실을 보면 연방은행의 결정은 잘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기관은 앞으로 도덕적 해이라는 족쇄는 쓰지 않아도 된다는 모순이다. 시스템적 위험은 금융계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대형 금융기관은 언제나 정부가 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버냉키 의장의 해명에 허점이 있다.
도덕적 해이가 방치될 수밖에 없다면 금융회사들은 어떤 위험을 택해서라도 수익만 올리면 된다. 좋은 시절에는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시절이 나빠져 경영이 어려워지면 정부가 구제해줘 손해는 없고 이익만 있게 되는 모순을 버냉키 의장의 해명은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점의 보완은 정부규제와 감독에 그 해답이 있다. 부도가 나게 되면 경제에 대한 파장이 너무 커 정부가 구제해줘야 하는 산업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미리 경기가 좋을 때도 무리한 경영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 관리해 경기 하락시 큰 어려움이 없도록 미리 예방해야 한다.
대공황의 아픔을 겪은 후 많은 원인 분석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가장 큰 원인으로 금융계의 불안이 지적되면서 대공황 같은 사태를 방지키 위해 금융계의 안정을 위한 법적 장치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연방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되고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나와 금융계에 대한 안정화가 자리를 잡았다. 이후 수차에 걸친 경기침체를 겪었으나 대공황 규모의 심각한 사태가 없었던 이유로 금융계의 안정정책이 많이 작용했다고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대공황 후 약 60년이 지난 90년대 월가는 소위 ‘금융공학 (financial engineering)’등 창조적 금융상품으로 급격한 확대를 하면서도 이에 대한 규제는 최소화하도록 의회와 당국을 설득했다. 규제가 적을수록 돈 벌 기회를 무한대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완화해야 되는 논리는 한결같았다. 시장의 원리가 방만한 경영을 도태시키고 위험관리를 잘하는 금융기관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규제완화의 결과는 기대했던 금융계의 위험관리는 이익 앞에 존재조차 보이지 않았고 서브프라임이라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한 금융기관은 시장원리가 도태시킬 것이라고 했는데 금융계 불안의 폭풍 앞에 연방은행이 시장이 도태시킨 금융기관을 구제해주고 말았다.
서브프라임의 아픔을 딛고 미 금융계는 대공황 이후와 비슷한 각성이 나오면서 금융 산업 감독안의 대폭적 수정이 시도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를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모순이 다시는 없게 하는 유일한 길은 금융계에 대한 포괄적 사전 관리감독이라는 새롭지 않은 사실이 다시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금융계는 더 커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비록 사후약방문이라 해도 이제라도 다시 금융감독이 강화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쉬운 것은 이 진리를 대공황 때 배웠음에도 70년이 지나고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한계일까.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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