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the 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한 평생 수 십 년 동안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해온 거지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한 푼 줍쇼’ 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거지가 내밀고 있는 낡아빠진 중절모엔 가끔씩
동전이 짤랑 하고 떨어졌습니다.
한 행인이 지나다가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난 가진 게 하나도 없으니 아무것도 드릴게 없군요.
그런데 당신이 걸터앉은 그건 뭐요?”
“이거 말이오? 그저 낡은 상자일 뿐이외다. 난 한 평생 늘
이 위에 앉아 있었다오. 언제부터든가…… 하여튼 난
이 상자 위에 쭉 앉아 있었소만 ……”
행인은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있소?”
“그건 들여다 봐 뭘 한답니까? 안엔 아무 것도 없어요.”
“안을 한 번 들여다 보시구려”
행인이 다그칩니다. 거지는 마지못해 상자 뚜껑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웬일입니까?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황금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얘깁니다. 비슷한 얘기로 다른 버전들도
나돕니다. 부자친구로부터 보물을 옷깃에 선물 받은
떠돌이 가난뱅이 얘기도 같은 교훈을 전합니다. 내 안의
풍요로움을 까맣게 잊고 밖으로 풍요를 찾아 헤매는
우리 모두를 빗대어 풍자하는 우화입니다.
To the 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풍요와 빈곤은 느낌입니다. 풍요로움과 빈곤함은 내 안의
마음 상태입니다. 물질적 무소유 속에 전 우주를 머금는
풍요로움을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 모든 걸
다 소유한 채 아직도 더 많은 풍요에 목말라 하는 이도
있습니다. Both abundance and scarcity are ‘inner’ states
that manifest as ‘outer’ reality. 풍요도 빈곤도 모두 바깥
실체로 나타나는 내 안의 상태를 말합니다.
풍요로움을 뜻하는 영어단어 ‘어번~던스’ [abundance]는
참 기분 좋은 말입니다. 두리둥실 어깨춤이 절로 추어지는
포만감 만족감 행복감이 잔뜩 넘쳐나는, 그렇게 여유 있고
풍성한 기분의 단어가 ‘abundance’ 입니다. 가득 차 [fullness]
넘쳐 흐르는 [to overflow] 느낌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풍요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적 풍성함도
내포합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감성의 풍요도 들어있고,
존경 받고 인정받는 사회적 풍요,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존심까지도 넓은 의미의 풍요에
들어 갑니다. 가진 물건은 많지 않아도 마음이 부자인 사람,
참된 풍요를 아는 사람입니다. 금은보화로 치장된 호화로운
궁전에 살며 아첨과 물건에 둘러 쌓여도 마음의 빈곤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 비참한 사람입니다.
Abundance is, in large part, an attitude.
풍요란 대부분 어떤 태도를 말한다. 풍요란 마음자세나
느낌이지 따로 존재하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정녕
따끔하게 전한 분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가진 자는 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이미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보다 더 핵심을 관통하는 말씀은
드물다고 믿습니다. 얼핏, 잔인하게 들립니다. 있는 자는
더 갖고 없는 자는 더 빼앗긴다? 아니 이토록 무자비한
말씀을 예수께서 하셨다니! 신약성경 마르코 복음서 4장
25절 말씀입니다.
To the 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and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풍요의 근본은 내 안에 있습니다. 풍요란 내 밖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풍요는 바로 나의 참 모습입니다. 대지를
내려 쪼이는 햇살과 땅을 고루 적시는 비가 바로 나의
풍요입니다. 장미 정원에 넘쳐나는 향기와 티없이 맑은
소녀의 미소가 바로 나의 풍요입니다. 풍요는 바로 내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Abundance is part of who I AM.
풍요가 바로 내 안의 무한잠재력임을 아는 순간, 더 많은
풍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내 안의 풍요를 깨닫는 순간
이 세상 전체가 나의 풍요로 다가옵니다. 고무풍선 안의
공기와 풍선 밖의 대기가, ‘에고’[ego]라는 풍선이 터질 때,
곧바로 하나가 됩니다. 이 세상 만물이 바로 모두 내 것이요
그저 나입니다. 세상이 그저 한 꽃입니다.
그리고, 그 풍요를 느끼면 느낄수록, 더 차오르고 넘쳐나는
풍요가 계속 물밀 듯 밀려 옵니다. 아침 이슬이 고맙고,
따사로운 햇볕이 고맙고, 보이는 눈 들리는 귀 맛보는 혀가
고맙고, 옆에서 지나치는 어린이의 미소가 고맙습니다. 나를
움직여 여기저기 데려다 주는 발이 고맙고, 만나는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들이 고맙습니다. 그렇게 고마워하는 마음은 더욱
고마운 일들만 계속 풍요롭게 모셔 옵니다.
반면, 작고 찌들은 나의 ‘에고’가 부리는 짜증과 성냄은 더더욱
짜증스럽고 화낼 일들을 불러 들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작고 못났을까? 더 작아지고 못나질 일들이 쌓입니다. 난 왜
이게 없고 저게 없을까? 더 비참한 빈곤과 궁색함이 더해집니다.
없는 마당에,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풍요는 내 안에 거주하는 미인입니다.
예뻐 할수록 점점 더 예뻐집니다. 사랑할수록 더 사랑합니다.
이미 가진 자가 더 받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는 게 바로 풍요입니다.
자,
어쩌시렵니까?
OM~
필자의 다른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에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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