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캠프인 캠프 캐나다에 도착한 등정팀.
캠프 캐나다에 마련되어 있는 노천 화장실.
바람·먼지와 사투 벌인 밤이 지나고…
1-16-08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침낭 안에서 바라보는 텐트가 빙 도는 느낌에 내 몸이 붕 떠 있는 듯한 이상한 몸 상태가 나타났다.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해 ‘캠프 캐나다’(Camp Canada-5,043m, 1만6,075ft)까지 갔다 오는 일정이라서 꼭 가야 하는데 하면서 준비하다 보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이제는 눈이 어디를 보면 초점이 안 맞는 듯한 느낌에 자꾸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가이드인가 와서 손가락에 기계 붙여보고 내 눈 상태 점검하고 쉬라고 한다. 산소 수치는 그렇게 낮은 것 같지는 않은데 뭐가 이상한 건지 하여튼 물고문을 더 당해야 몸 상태가 좋아지려나 보다.
오늘 처음으로 출발하는 팀에 끼여 나도 자랑스러운 출발을 해보려 했건만 몸이 말을 안 들으니 그저 텐트에 누워, 가는 사람 바라만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1-17-08
오늘은 제2 캠프인 닌도 데 콘도레스(Nido de Condores-5,559m)까지 갔다 오는 일정이다.
어제의 산행에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쉬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아니면 더 높은 곳을 올라가서 적응을 해야 하는 건지 의견이 분분한 아침이다. 쉬는 대원들이 빠진 우리 팀은 제 2캠프를 향해 출발을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이드는 걸음을 걷는다. 우리에게는 초행에다 긴장감에 흥미로운 산행이겠지만 직업으로 이 일을 하는 가이드들에게는 이 길이, 또 이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싶다. 그러니 나름대로 일하면서 노는 방법을 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렇게 힘들어지니까 이런 훈련 안 하고 정상을 향하면 안 되는 건가? 의심까지 들면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무시하고 싶은 맘까지 마구마구 드는 정말 힘든 산행이었다. 제1 캠프 도착의 기쁨도 잠깐, 제2 캠프로 다시 출발이다.
그런데 산봉우리 위의 구름의 움직임이 범상치가 않다. 가이드 말이 제2 캠프에 날씨가 나쁘다는 뜻이란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도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온도도 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고 있다.
가이드 말에 오늘은 여기까지 산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우와! 감사합니다.” 외치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가이드는 물론이고 우리 팀도 어쩜 그렇게 잘 들 내려가는지 나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정말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하도 거리 차이가 나니까 가이드가 내가 오는지 지켜보고 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정말 미치겠다. 겨우 겨우 베이스캠프가 보이게 되자 가이드는 이제 됐겠지 싶은지 속도를 내서 사라져 버리고 나는 역시나 마지막으로 또 엉덩방아 찧으면서 겨우 겨우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약사님을 비롯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보이는 산의 구름상태가 엄청나게 시꺼먼 먹구름에 바람까지 부는 그런 날씨여서 그 곳에서 무척 고생을 하는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여튼 오늘 하루 정말 큰일을 해 낸, 정말 힘든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1-18-08
어제의 그 시꺼먼 먹구름이, 지나가는 구름이 아닌, 오늘 아침 베이스캠프의 온 천지에 하얀 진눈깨비를 뿌리고 시속 100km가 넘는 바람을 몰게 한 정말 심각한 먹구름이었다는 걸 아침에 일어나니 알게 되었다.
텐트 안에 있으니 그렇게 추운지는 몰랐는데 바람으로 인한 먼지가 텐트로 들어와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산소가 부족하다는 이 곳에서 먼지로 인해 코까지 막고 자려니 이건 잠을 잔건지 숨을 쉰 건지 분간이 안가는 그런 바람과 먼지와의 사투를 벌인 어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내일의 본격적인 정상을 향한 산행을 위해 하루 정말 푹 쉬어야 하는 게 오늘의 할 일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정상 도전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에서.
1-19-08
오늘 드디어 산행의 첫날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제 1캠프로 출발했던 부산 권 선생님이 아침 일찍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젯밤 가슴의 통증으로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하신다. 아니 그럴 수가. 훈련으로 갔다 오는 것과 그 곳에서 잠을 자는 건 천지차이인가 보다.
권 선생님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우리는 바짝 긴장하게 된다. 지금까지 만난 고소증세는 좀 어지러워서 넘어진 것 밖에는 당해 보질 않았으니 저렇게 고통까지 느끼게 된다면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일이 제발 일어나지만 않도록 바라며, 멀리 한국에서 오신 권 선생님이 포기를 하시니 정말 안타까운 맘이 든다.
출발 준비가 꽤나 분주하다, 포터에게 맡길 짐과 우리가 지고 갈 짐을 구분하여 정리를 한다.
포터비가 얼마나 비싼지, 정말 정상 욕심만 없다면 내가 짊어지고 가는 걸 시도라도 해보고 싶은 맘이다.
배낭의 무게가 더해진 오늘, 이젠 진짜로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산에 올라가면서 오늘은 유난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느낌이다. 우리와 같은 소그룹의 사람들이 원색의 등산복 차림으로 줄을 서서 가는 모습을 밑에서 보고 있노라면 괜히 뿌듯한 미소가 지어진다.
제1 캠프인 캠프 캐나다에 무사히 겨우, 겨우 도착을 했다.
우리 팀의 텐트장소가 여러 많은 그룹이 저 멀리 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아서 이곳까지 오기가 좀 더 힘들긴 했지만 한가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조용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임시로 만들어준 화장실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우리 팀에게는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만 보이지만 앞쪽의 텐트촌에서는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하지만 너무 멀어 얼굴은 안 보이는 그런 거리이므로 느긋하게 볼일 보면서 이런 풍경들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노천 화장실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정상 산행에 들어가니 음식이 베이스캠프와는 천양지차다. 봉지에 들어 있는 파우더 수프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먹고, 식빵을 구워주는데 이것도 가끔 시꺼멓게 태워서 준다. 그 위에 두꺼운 치즈를 얹어서 주는, 정말 목숨만 겨우 연명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음식이 제공되고 있다.
우리 팀의 고질병인 혈압이 전체적으로 다들 높게 나오는 통에 우리가 준비해 온 한국음식은 못 먹도록 베이스캠프로 하산 명령이 내려진 지금, 이 치즈 올려진 탄 식빵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인 것이다.
“언니야! 나, 춥고, 배고프고, 잠도 못 자고, 그렇지만 끝까지 해낼 거다” 약사님 텐트에서의 두 자매님의 대화 내용에 이런 짓을 비싼 비용까지 써가며 하는 우리는 아마도 특이한 DNA 구조를 가진 사람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제1 캠프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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