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 하는 나라가 잘 산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을 구체화하여 형 정부는 “사교육 없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교육정책으로 설정하였다. 한국의 영어 사교육비는 연간 15조원에 달하고 3만 명 이상이 해외로 유학 간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이런 추세는 더 해 갈 것이다.
또한 영어라는 언어 장벽 때문에 한국으로의 진출을 꺼리는 국제적 기업들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러기 아빠’ 같은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 제고라는 차원에서도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충분하다.
시행방법은 영어 수업시간을 늘이고 영어로 영어수업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어교사들을 연수시키고 2만3,000 여명의 영어전용 강사들 채용하며 향후 5년간 4조 여 원의 재원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시행방법에 대한 거센 비판이 정책자체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자에 서울대학교 영어교수들은 영어교육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비판적인 칼럼은 한국일보에도 실린바 있다.
발표된 시행방법의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자. 첫째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로 하는 수업시간을 주당 1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린다고 하였다.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효과가 있는 영어 회화능력이 일주일 3시간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것이므로 사교육을 오히려 부추길 우려가 있다.
둘째, 영어교사들을 연수시켜서 회화능력과 발음을 원어민 수준에 접근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영어전용 강사들을 채용하여 모든 초 중 고등학교에 배치하겠다는 것은 비용도 엄청나겠거니와 현행 영어교사와의 역할분담에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넷째, 기존의 교육프로세스에 교사를 더 많이 투여하면 전체적인 효과는 좀 더 올라가겠지만 한계 효율성은 점차 줄어들게 되어 자원의 낭비가 심하게 된다. “재원이 아무리 들더라도 영어수업 자체를 한번 바꾸어 보겠다”는 발상은 그런 면에서 볼 때 현 정부의 실용정책에 위배된다.
다섯째, 강의에 주로 의존하는 대량 생산식 현행 교육프로세스로는 개별적 능력에 따른 진도를 허용하는 맞춤 교육을 감당할 수 없다. 잘하는 학생과 또한 못 따라가는 학생도 사교육을 통해 보충하려고 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시행방법의 문제점들을 감안해 볼 때 정책자체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목표를 대폭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동집약적 교육프로세스를 기술집약적 프로세스, 즉 CBT (computer-based training)로 보완한다면 원래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각 학교별 혹은 교육청 별로 학습관리 시스템을 설치한 후에 원어민들을 동원해서 제작된 CBT용 모듈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기존의 수동적인 학습방법에서 벗어나서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입체적 교육경험을 통해 학습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암기할 단어를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를 통해 뜻과 활용실례를 배우고 원어민의 발음을 익숙할 때까지 따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영어선생의 지도하에 각자의 수준에 맞는 영어교육을 스스로 하게 되고 수업시간 외에 집에서도 언제나 인터넷, CD, MP3플레이어 등을 이용하여 반복하면서 숙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영어선생은 자신이 영어수업을 전담하는 부담을 덜게 되고, 대신 각 학생 별로 수준에 따른 학습 진도를 모니터링하고 코칭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영어전용 강사의 필요성도 그만큼 줄게 된다.
또한 학급의 학생 수를 줄이지 않아도 학습효과가 대량맞춤식으로 이루어지며 학생들도 사교육을 따로 받을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CBT자료와 학습관리시스템의 설치 및 운용 비용, 그리고 멀티미디어 영어학습실을 새로 설치하는 경비가 들지만 노동집약적 방법보다는 훨씬 적게 들 것이며 학습효과가 뛰어나고 추가적 사교육비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다.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영어 이외의 일반과목에도 영어몰입 교육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진혁
새크릿 하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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