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리(한미정치발전연구소장)
19세기 팍스 브리타니카의 세계를 몰락시키고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열었던 미국은 21세기에 접어들어 무소불위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사회의 강대국은 등장하지 않고 미국은 여전히 팍스 아메리카나의 유지에 버거운 상태이다.
일명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라 불리는 나라들도 살펴보면 떠오르는 중국이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 새로운 경제권으로 주목받는 인도, 브라질 등도 21세기의 주역으로 국제사회를 재편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거품이 빠진 중국 경제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고 국제사회의 유가 상승에 절대적으로 기대어 경제특수를 누리는 소련도 유가 하락시 국내경제의 장기 호황은 예측할 수 없다. 저성장 안정기에 접어든 EU나 세계 경제시장을 장악하기에는 역부족인 ASEAN의 경제블록권으로서 역할도 미지수다.
한때 서구 과학기술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동양문명을 재조명한 버클리의 후리초프 카프라 교수는 동양의 정신문화 특히 종교에 바탕을 둔 동양사상에 대한 괄목할만한 연구업적으로 학계에 동양사상 열풍을 일으켰다. 이는 문명의 동점현상으로 인해 인류문명의 근원적 발상지인 동양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낳게 하였다. 이에 힘입어 한국 통일 후 드넓은 만주 영토를 회복한 한반도가 21세기 팍스 코리아나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20세기를 연 미국이 전세계적 초강국으로 자리를 잡은 과정과 지구촌을 이끌어 온 잠재력을 관찰해 보면 19세기 팍스 브리타니카와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 21세기 팍스 코리아나(또는 아시아나)라는 국가를 매개로 한 패권분류 방식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19세기 전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의 힘을 무너뜨리고자 근대국가로의 체제 변환의 혼란 속에서 국제적 위상이 미약했던 소련을 미국은 지원했다. 이는 영국 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힘을 축소시키는 교두보로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소련을 대체세력으로 지원한 것이다. 더우기 막대한 이권을 보장하면서까지 소련을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끌어들였고 한반도의 분할 점령까지제의할 만큼 소련은 2차대전 말까지 미국을 상대할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2차대전을 거치며 소련은 핵무기 실험에 성공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함은 물론 주변국가들을 흡수하여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거대 공산주의 제국을 건설하였다. 중국도 급속히 공산주의 체제를 정비하며 소련과의 연합으로 새로운 공산주의 강대국이 되었다.
유럽을 견제하려 소련을 키운 미국이 다시금 소련에 발목이 잡히자 미국은 한국전쟁 후 나토를 통해 유럽과 연합하여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이 된 소련을 한국전쟁 발발의 주역으로 낙인찍는 등 냉전시대의 절대적 적대국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지구촌 패권이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나 소련과 중국과의 대결구도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리의 우위를 입증하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였다. 결국 공산주의는 패망했고 미국은 승리의 깃발을 드날리며 20세기 말 지구촌 유일의 초강국이 되었다.
19세기를 지배하던 영국을 무너뜨리고 20세기를 시작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와의 힘의 균형을 통해 초강국이 된 것이다.
19,20세기의 국가경쟁력의 화두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국력이었다. 한국전쟁이 미국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국내경제 침체에 대한 돌파구로 막대한 예산이 드는 한국전쟁의 지원에 관한 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고 전쟁을 통해 미국의 외교안보라인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나토를 통해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시키는 등 미국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며 냉전시대 세계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의 벽두에 터진 대테러전의 실패와 경제침체로 21세기 국제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듯 했으나 세계는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미국의 세기는 기울되 미국은 결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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