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2일과 13일 이틀간 90년전으로 거슬러 가는 타임머신을 탔다. 농업이 주종인 중가주 리들리시에 소재한 작은 호텔방은 길지 않은 침대와 고가구들로 장식돼 있었다. 이 방은 전화선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이었다. 과거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이호텔에서 묵었다. 호텔을 둘러보며 선조들의 생활상과 독립운동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었다.
12일 오후 중가주 프레스노지역 과일밭사이로 형성된 리들리시와 다뉴바시에 이민 선조들의 애국활동을 기념하는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 먼저 리들리에 있는 전 한인 장로교회에서 이민 선열을 위한 ‘추모예배’를 올리고 도산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묵었던 버거스호텔 정문에 두분의 사진이 양각으로 새겨진 ‘투숙기념 현판’을 걸었다.
또 다뉴바에서는 전 한인 장로교회 부지에 기념비를 세우고, 1920년 3.1절 1주년 기념을 위해 시가행진을 가졌던 다운타운의 ‘프레스노’와 ‘L 스트릿’이 만나는 사거리에 시가행진 기념비를 세웠다. 이어 다뉴바 박물관에서 이민역사에 관한 영상과 유품들을 관람했다. 이 사업은 ‘중가주 한인역사 연구회’(회장 차만재 박사)가 3년간의 노력 끝에 한국정부와 한인사회의 후원으로 성사시킨 것이다.
리들리시에 소재한 전 한인교회는 현재 멕시칸이 소유이다. 한인들 7-8명이 주일날 오후시간에 빌려 예배를 보고 있는데 높은 지붕위에 솟아있는 십자가의 한쪽이 날아가 없어진 것이 강풍에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1912년에 건축 된 버거스 호텔은 방이 17개뿐이다. 다뉴바시의 전 한인교회 자리에는 경찰서가 들어섰고, 이번 사업을 위해 시에서 빈 공터를 제공해주었다.
다뉴바 박물관에서 상영된 3.1절 행사의 영상은 기마병을 앞세우고 행군하는 병정들과 태극기를 펼쳐든 대한 여자 애국단 단원들, 하얀 해군복을 입고나선 꼬마 병정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군중들의 긴장된 모습이 당장 출정이라도 할 듯한 분위기이었다.
세코이아 팍 언저리에 자리 잡은 이 지역은 시에라 강의 물을 끌어들여 과일농장으로 일궈 낸 곳이다. 우리 한인들은 하와이 농장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 1905년부터 유입됐다. 300여명이 시간당 25센트를 받고 일했다. 도산선생의 가족이 1911년에 계신 걸보면 이곳이 리버사이드보다 나았던 것 같다.
김형순과 김호 형제는 털 없는 복숭아인 넥타린을 개발해 거부가 되었고, 도산선생은 주식회사 ‘북미실업’을 세워 기업형 농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새크라멘토의 김종림은 쌀농사로 일궈낸 거금으로, 만주 독립군의 노백린장군과 연계해 비행학교를 세워 비행사 양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한국 여성 애국단이 처음으로 결성되고, 독립운동 자금마련을 위한 하루에 쌀 2스푼 모으기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김형순은 1938년에 오늘의 자리에 대한인국민회 건물을 마련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독립운동에 필요한 실질적인 뒷받침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1909년에 세워진 대한인국민회의 기본정신이 상해임시정부의 기본이념으로 이어졌고, 광복 후 그것이 건국의 이념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건국 60년의 역사도 도 이곳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한 과일농장 한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판과 기념비는 우리들의 노력으로 만들었지만, 영구보존은 호텔 측과 해당 시당국에 맡긴 상태이다. 그리고 아직도 리들리의 교회를 재인수하고 단장해 한인들의 구심점이 되게 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타임머신에서 내려 보니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장에서 환한웃음을 짓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부모세대를 가진 1.5세와 2세들은 민족에 대해 잘 묻질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3세들은 민족과 뿌리에 대해 묻는다고 한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자명해 진다.
이창수
흥사단 미주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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