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 사건은 무엇일까. 아마도 공산주의의 탄생과 사망이 아닐까.
1917년 10월 26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공산주의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숨을 거뒀다. 이 기간 동안 공산주의는 지구 표면의 1/3을 뒤덮었고 비공산권 국가에서도 상당수 지식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공산주의가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일 것이다. 장기간 계속된 세계적인 불황은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했으며 미래는 사회주의의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한 때 전형적인 ‘시장의 실패’ 사례로 여겨지던 대공황이 사실은 ‘정부의 실패’ 탓이라는 이론이 요즘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통화주의자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오스트리아 학파에 따르면 시장 경제 하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대공황 같은 최악의 사태로 몰아넣은 것은 잘못된 정부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는 1907년 발생한 금융 시장 패닉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13년 발족됐다. 1910년대 후반 다시 비슷한 위기가 오자 돈줄을 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넘치는 돈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버블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는 침체로 접어들게 된다.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랐던 자산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정부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일례로 모든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물건은 팔리지 않는데 경비를 줄일 수 없게 된 업체의 도산이 이어졌다. 또 자국 업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관세장벽을 대폭 높인 스무트-홀리 법을 통과시키자 다른 나라의 보복 관세가 뒤따랐고 이로 인해 수출 길이 막힌 회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위적인 크레딧 버블의 진원지인 FRB는 미국 은행(Bank of the US) 등 대형 은행이 쓰러지면서 금융 기관의 연쇄도산이 일어나는데도 이를 방치, 투자가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60년 후 일본에서 일어났다. 제2차 대전 이후 30년간 일본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80년대에는 넘치는 돈에 힘입어 주가와 부동산이 천문학적 수준까지 올랐다. 90년대 들어 거품이 빠지면서 불경기가 찾아오자 일본 정부는 과거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비정상적인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인위적 부양책을 썼다. 건축 경기를 살린다고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경기가 과열됐을 때는 저금리 정책을 펴던 일본 은행은 경기가 악화되자 오히려 금리를 올렸다. 이런 잘못된 정책의 결과 일본은 10여년째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남가주 중간 주택가는 38만 달러로 1년전 50만 달러에서 24%가 폭락했다. 가주뿐 아니라 플로리다, 네바다 등 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지역 집값이 폭락하면서 이를 인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과거 미국이나 일본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FRB의 신속한 베어 스턴스 구제가 일례다. 또 행크 폴슨 재무장관은 “주택 시장이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값이 더 떨어져야 하며 정책 입안가들은 여기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점은 주택 투기 열풍으로 집값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라 있는데 기인한다. 이것이 정상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고서는 장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20%정도 더 떨어지면 소득을 기준으로 한 역사적 평균에 근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80년대 미국은 세이빙스&론 부실 대출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창설된 RTC는 헐값 매각이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차압 매물을 말끔히 정리했으며 그 결과 미국 경제는 건실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택 가격의 인위적 부양은 불황의 고통을 길게 하고 회복만 지연시킬 뿐이다. 미국은 과거 대공황과 일본식 장기 불황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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