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게 되면 공에 따라 자리를 나눠 주는 일이 따른다. 이른바 ‘논공행상’(論功行賞)이 그것이다. “공을 논하여 알맞은 상을 준다”는 뜻의 논공행상은 고금을 통해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논공행상이 공평하지 못하면 지도자와 부하들 간의 신뢰에 금이 간다. 잘해야 본전인 것이 논공행상이다.
1881년 미국의 20대 대통령인 J.A. 가필드가 암살됐다. 암살범이 가필드에게 총구를 겨눈 것은 선거 기간에 약속한 자리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까지 미국은 ‘관직을 사냥한다’는 의미의 ‘엽관제’(spoils system)가 지배했다. 엽관제는 정권을 차지한 쪽이 인사의 전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전리품은 당연히 모두가 승자의 몫’이라는 개념이 토대가 된 인사제도였다.
가필드 암살 후 행정직 전문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개혁이 이뤄지지만 엽관제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대사직은 미국 대선 후 가장 요긴하게 배분되는 논공행상용 전리품이다. 고액 기부자들에게는 각국 대사 자리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 부시 행정부에서도 30여명이 돈 많이 낸 덕에 대사 자리 하나씩을 꿰찼다. ‘파이오니어’(10만달러 이상 기부자)와 ‘레인저’ 혹은 ‘수퍼 레인저’(30만달러 이상) 급으로 분류된 기업인들이 대부분이다. 자리가 여의치 않으면 대통령 개인 별장에서 묵게 하거나 국빈만찬 손님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행상을 대신하기도 한다.
민주정치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은 엽관제의 흔적이 미국보다 한층 더 뚜렷하다. 정권교체 후에는 권력획득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 무수한 사람들을 챙겨주게 된다. 문제는 챙겨 줘야 할 사람 수에 비해 자리가 항상 모자란다는 점이다. 그래서 논공행상에는 분쟁과 논란의 씨앗이 잉태돼 있다.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도 논공행상에 필요한 토지의 수요와 공급이 심한 불균형을 이룬 때문이었다. 불만이 비등해 있는 호족들에게 대륙을 점령해 토지를 나눠 주겠다는 의도로 조선 땅을 침범했던 것이다. 기업들이 간혹 경제적 논리를 무시한 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것도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논공행상의 고민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노무현 정권 아래서 임명된 문화계 단체장들의 사임을 볼썽사나울 정도로 요구하고 나섰던 것도 자리 만들기의 필요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임 압력에 버티던 단체장들이 총선 후 줄줄이 사표를 던지고 있으니 의도가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자리는 가장 간편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나눠줄 수 있는 전리품이다. 그러나 자리의 전문성과 능력을 고려치 않은 나눠주기 식의 논공행상은 정권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논공행상도 인사이다. 잘못된 논공행상은 ‘망사’가 된다. 사람과 자리 사이의 균형을 잘 헤아려 나눠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능력과 자질이 안 되는 사람에게 너무 큰 자리를 안겨 주는 것은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의 비유처럼 작은 배에 지나치게 큰 돛을 달아 주는 격이다. 이런 배는 기우뚱거리며 결국 침몰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논공행상이 부른 대표적 참화가 몇 년 전 발생한 카트리나 재해이다. 당시 연방재해관리청(FEMA)은 재난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FEMA 책임자는 마이클 브라운으로 2000년 대선 때 부시 캠페인 진영에서 일했던 인물이다.
브라운이 부시 진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는 대선 승리에 일조한 공을 인정받아 FEMA 책임자라는 중요한 직책을 ‘분배’ 받았다. 결과적으로 브라운은 늑장 대응으로 국가적 재난을 더욱 악화시켰고 언론 보도를 통해 재난 관련 일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남가주 출신 김재수 변호사를 LA총영사로 내정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정통 외교관료가 아닌 한인을 대형 공관의 책임자로 내정한 것은 파격이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를 앉혔다는 점에서 실용주의 인사로 읽혀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총영사 내정을 일부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듯이 ‘개방형 인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진정한 개방형 인사가 되려면 좀 더 널리 인재를 구하는 공모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명박 캠프에서 ‘BBK 소방수’로 뛰었던 인사이다. 따라서 그의 총영사 내정은 개방형 인사라기보다는 논공행상으로 보는 것이 옳다.
‘무늬만 개방형’이긴 하지만 이번 인사가 신선한 것은 분명하다. 파격적 인사는 조직에 긴장감과 자극을 줄 것이고 그에 따른 변화가 기대된다.
문제는 이번 인사 실험이 어떤 결과를 거둘 것인가 이다. 신선함에 걸맞은 역동성을 만들어낸다면 논공행상 논란에도 불구하고 실용에 바탕을 둔 파격 인사가 점차 자리를 잡아 갈 것이지만 너무 큰 돛을 달아준 것으로 판명된다면 파격인사는 일회용 실험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한인들이 이번 인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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