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열렬한 반공투사를 들라면 누가 뽑힐까. 아마도 50년 동안 국민당 지도자로 군림한 중국의 장개석이 아닐까. 1927년 4월 상하이에서 공산당 탄압을 시작한 이래 20여년에 걸친 중국 내전 동안 공산당과 싸웠고 대만으로 건너가서도 88세를 일기로 숨을 거둘 때까지 본토 수복과 공산당 타도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당 대만에서 열린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그가 내건 선거 공약은 무엇일까? 공산당 타도? 본토 회복? 그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그는 성장률 6%, 국민소득 3만 달러, 실업률 3% 이하 달성을 목표로 한 소위 6·3·3플랜으로 경기침체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집권에 성공했다.
마 당선자는 중국과의 직교역·직항·우편교류 등 ‘3통(通)’의 제한을 풀어 통합시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대만은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륙 진출이 늦었고 그것이 경제 부진을 가져왔으며 더 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당의 판단이다. 국가의 이익 앞에서는 이념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 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우파 진영으로부터 전통적인 혈맹 관계였던 한미 동맹을 파탄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 대통령 자신이 “반미면 어떻습니까”라며 반미 감정을 자극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한미 관계의 실체를 살펴보면 이런 비판이 얼마나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인다.
노무현 정부는 입으로는 자주 노선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민감한 사안도 받아들였고 6자 회담에서도 미국의 주도적 입장을 인정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이나 곧 시행을 앞두고 있는 한미 무비자 방문도 노무현 정부 하에 이뤄졌다.
한미 외교 실무자들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 관료들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와 일하는 것이 편했다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은 노무현 개인이 미국에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놓고 볼 때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그동안 소원했던 한미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중국에 편중됐던 한국 외교의 방향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으로 김하중 전 중국대사를 임명했다. 김 대사가 누구인가. 6년이 넘게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를 거치며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장수 기록을 갖고 있는 장관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통이다. 햇볕정책의 충실한 수행자였던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오히려 승진했다는 점은 이념보다 중국 전문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작년 말 현재 한국 무역의 중국 의존도는 21.8%로 미국(12.2%)과 일본(12.4%)을 합친 것에 맞먹는다. 수년내 25%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 불과 8년 전인 2000년만 해도 미국 20.1%, 일본 15.7%, 중국 13.0%였다. 중국과 수교한 후 지난 15년간 누적 무역흑자는 1,500억 달러를 기록했고 무역 규모는 27배, 인적 교류는 2006년 480만 명으로 36배 증가했다. 미국 방문객의 5배다. 한국은 중국에 물건 팔아 먹고산다는 말이 큰 과장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이태식 주미 대사를 유임시켰다. 지금까지 대미 외교에 불만이 없으며 큰 틀의 변화가 없을 것이란 신호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은 이라크 파병 연장 및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증액, 이란 제재 동참 등 요구 사항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이슈다.
거기다 올 대선에서 보호무역 색채가 짙은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한미 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국제 관계는 지도자간의 호감이나 친분이 아니라 이익이 지배한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영원한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라던 파머스톤의 말을 기억하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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