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 중의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일 것이다.
그의 앞으로 5년 정국운영의 동력이 되어줄 것으로 믿었던 4.9총선의 한나라당 승리는 ‘무늬만 과반’인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민심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총선의 민심은 여야의 시각에 따라 좀 달랐다. 진보의 몰락에 휩쓸린 민주당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도 냉엄한 심판이 끝나지 않은 대선 민심의 연장이었겠지만 대선 압승에 취해있던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 역시 실망한 민심의 이반을 선뜩하게 감지했을 것이다.
선거 하루 전 부동층이 52.5%나 되었고 투표율 또한 46%로 최저를 기록했지만 이번 총선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국가적 도덕성 이미지를 담보로 하면서까지 택한 ‘경제 살리기’의 성패가 달린 선거 아닌가.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안정 의석이 필요하다고 한나라는 강조했고 일당독주를 견제할 힘을 달라고 민주당은 호소했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 절차라 하기엔 4.9총선은 참 이상한 선거였다. 선거의 최소한 기본이 연달아 무너지며 희한한 해프닝이 속출했다. 이슈나 정책은 처음부터 실종되었고 비상식적 공천파동으로 등록당일까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지역구도 있었다. 스스로 ‘태어나서는 안 되는 정당’이라고 고백한 친박연대는 창당 열흘 만에 선거를 치렀고 유권자들에겐 공약은커녕 후보 프로필조차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안정론과 경제론이라는 막연한 주장 외에는 별 이슈도 없이 점잖은 후보들이 젊은 운동원들 옆에서 어설픈 춤을 추어야하는 유세장의 풍경은 바다건너에서 해외토픽으로 보기에도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수라장 선거판에 비해 결과는 절묘했다. 그 어느 쪽에도 일방적 지지는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몇 달 실망을 느낀 여당에 대한 견제를 민주당에 맡기지는 않았지만 지난 대선과는 달리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분노의 표를 그대로 한나라에 몰아주지도 않았다. 한나라의 턱걸이 과반 153석의 의미는 자명하다. 조건부 지지다. 일을 하도록 밀어는 주겠지만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있다.
이제 새 정부 출발 겨우 40여일로 아직 밀월을 즐겨야할 이 대통령에겐 가혹한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이재오·이방호 의원을 비롯한 최측근 참모들이 우수수 낙선하며 양 날개가 꺾였는가 하면 친박계열의 약진으로 거침없던 행보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가 내심 고대했던 안정과반 확보는 국가를 위해서도, 또 대통령 이명박의 역사적 유산의 측면에서도 득보다 실이 컸을 것이다. 집권이후 첫6년동안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의회를 백악관의 부속기관처럼 부리는 ‘우리 편만의 세상’에 안주하면서 미국을 전쟁과 불황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던 부시대통령이 산 교훈이 될 수 있다.
한 재미한인 경제학자는 4.9총선이 ‘dream result(이상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긍적적 요소가 될 두가지 현상을 말했다.
첫째는 극우야당의 출현이다. 강경보수를 표방하는 자유선진당이 통합민주를 비롯한 진보 이념의 야당들과 대칭을 이루면서 한나라는 이념대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도우파로 실용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정치환경이 조성되어 과거 우익 이미지와 거리두기에 주력하는 한나라의 체제전환 노력과도 맞아 떨어진다.
둘째는 재확인된 ‘박근혜의 힘’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품격과 카리스마를 갖춘 박근혜 전대표가 한나라의 차기 대권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번 총선으로 박 전대표의 입지는 당 내외 모두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7월 전당대회를 겨냥, 당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이 치열해지겠지만 그를 대적할 만한 그릇이 없다고 이 경제학자는 단언한다. 설사 친이명박 계열에서 다른 사람을 밀고 싶어도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마음을 읽은 이상 쉽지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7월의 당권투쟁은 총선 못지않은 드라마를 또 연출하겠지만 해외한인들의 관심은 경제 살리기의 실현 여부이며, 고국의 반듯한 국정운영이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이 그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정국을 움직이는 캐스팅보트로 부상한 박 전대표와 건강한 협력관계를 이루어갈 것인지, 소모적 당내 분열로 매번 발목을 잡힐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에게 선택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미 그의 경제 살리기 국정이 당분간 갈팡질팡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직 남아있는 좌파정부의 그림자와 불안한 국제적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가 방향이라도 제대로 잡으려면 이 대통령은 불편한 마음보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4.9총선의 결과를 음미해야 할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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