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목사/수필가)
샤르뎅(Teihard de Chardin, 1881~1955)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신부님이다. 자연과학계에서는 그를 고고학자로, 혹은 지질학자로 높이 평가한다. 프랑스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찌기 빠스깔 사상에 심취하여 신학을 과학과 접목시켜 둘을 하나로 만든 인류학자요, 진화론자요, 신학자이다.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신부의 옷을 입은채로 베르단 전선으로 달려갔다. “나는 사제(司祭)이다. 나의 힘이 미치는 한 사람들에 앞장서서 세계가 사랑하고 추구하며 참아 견디고 있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싶다. 사람들에 앞장서서 희구하고 공감하며 고통 받으련다. 사제이기 때문에...”라고 외쳤다고 한다.그는 4년 동안이나 최전선을 전전하며 부상병들을 실어날랐다. 그는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성직자였다. 그는 지상의 죄악이 구름 위에 교회로 날아와서
승화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몸소 그 죄악이 있는 지상에 발을 딛고 고통 속에서 그것을 극복했던 것이다.
20세기 최초의 교황인 비오 12세는 “자연과 초자연은 칼로 자른듯이 쪼갤 수 없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 말은 지상과 천국의 의미를 따로 따로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인 것이다. 육체를 떠난 영혼만의 구원을 생각한다면 교회는 굳이 제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세계에서 그런 교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현실에 대한 관심과 성의를 잠시도 버려서는 아니될 뿐 아니라 집요하게 그 속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오늘의 교회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샤르뎅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바라보는 교회 건설에 앞장섰던 것이다. 비단 교회 뿐이겠는가? 이 지상의 모든 종교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늘만 쳐다보는 교회는 현세적인 의미가 없으며 땅만 바라보는 교회도 현실주의에 불과하니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이 지상의 모든 가치들을 하나 하나 일깨워서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그 영원한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모든 신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세상>이라는 말을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하늘은 커녕 땅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발밑만을 내려다 보는 교회들을 보면서 가슴 답답함을 금치 못한다. 오늘의 교회가 그 이유 때문에 스스로 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강단에서는 법복을 입고서 거룩한 외모를 갖추어 하늘의 메시지만을 설교한 성직자가 50억짜리 저택에 살면서 5억짜리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세상 사는 재미에 푹 빠졌으니 이거야말로 발 밑만 내려다보는 격이 아닌가? 이 어처구니 없는 모순에 말문이 막힌 신도들은 아예 교회에 등을 돌리고 무교회주의를 외치고 있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의 교회가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를 일깨워주지 못하고 인생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지도 않고, 무슨 명목으로든 헌금 수입에만 급급해 하니 교회에 대한 실망과 환멸 때문에 성직자들이 목이 쉬도록 설교를 해도 귀담아 듣지 않으며 교회의 종소리가 아무리 요란하게 울려도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는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차제에 오늘의 교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다름아닌 교회의 사명인 것을... 구태여 막대한 선교비 예산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향기를 제대로 풍길 것 같으면 사방에서 벌 나비들이 그 향내를 맡고 몰려들 것이 자명하지 않는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한탄하신 예수의 말씀이 다름아닌 오늘의 교회를 향한 경고임을 교회 스스로가 깨닫고 본래의 교회 모습을 되찾는 제 4의 종교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불연이면 교회의 머리가 되는 예수께서 채찍을 들고 오늘의 교회에 찾아와 몸소 교회 개혁을 단행할 것이니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으나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는 날에는 그 사람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리라” 한 말씀을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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