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를 떠나며
1998년 교보대상(환경부문), 2000년 만해대상(포교부문), 2002년 막사이사이상(국제평화부문), 2006년 남북교류협력상, 2007년 민족화해상….
언론의 조명을 받고 세인의 주목을 받은 그의 수상경력만 해도 대충 이렇다. 법륜 스님. ‘일과 수행의 통일’을 모토로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종교초월 수행공동체 정토회(www.jungto.org) 지도법사다. 세속의 애욕과는 거리가 먼 수행자를 세속의 티끌 같은 상 따위로 포장한다는 건 되레 그를 욕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실은. 직접 듣고 거쳐 들은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금은이요, 직접 보고 거쳐 본 한 행동 한 행동이 다 보화다, 적어도 내게는.
어쨌거나 세상사람들 눈에 여간 크지 않게 보일 저런 영광의 징표들은 ‘거저’ ‘저절로’ 안겨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비로소 세속적 영광의 서설이 내리기 이전까지 약 20년동안, 그를 아끼는 극소수 스승들과 그를 따르는 소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실천적 수행자를 보는 안팎의 눈은 몹시 차갑고 사나웠다. 가혹했다.
1970-1980년대 용어를 빌면 그는 ‘일부 몰지각한 불순분자’요, ‘체제를 부정하는 일부 용공분자’요,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일부 기생분자’였다. 수배되고 투옥되고 회유당하고 고문당하고….
밖에서 퇴박맞은 그를 불교계 안에서도 타박했다. 거룩한 붓다(의 가르침)을 팔아 더러운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등 평소 불교계 개혁을 부르짖어 내심 괘씸하게 여긴 터에 그가 깨달음을 증득해 참자유를 얻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내 종교 네 종교 따로 있느냐, 교회 다니면 어떻고 성당 다니면 어떠냐, 종교가 없다한들 또 어떠냐, 이러면서 쉼없이 가림없이 걸림없이 주창하고 실천했으니, 무릇 불교는 이래야 하고 모름지기 불자는 저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좋다 궂다 분별을 말아라, 이것도 버려라 저것도 비워라 남김없이 놓아라, 입만 열면 이렇게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에게는 이단이네 뭐네 갖은 너울을 들씌웠다.
좌간, 도대체 잠은 언제 몇시간이나 잘까 궁금할 정도로, 한국은 물론 지구촌 곳곳, 그나마 인도빈민굴 아프간난민촌 필리핀오지마을 등 보통사람 같으면 거의 예외없이 그냥 구경삼아 가보기도 저어스러운 곳을 골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 구제활동에 눈코 감을 새 없는 그는 도대체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할까.
그가 들려준 일화다. 예전에 그가 경북 문경의 천년고찰 봉암사에서 부목(땔깜준비 등 허드렛일을 하는 절간의 머슴) 노릇을 했단다. 일을 수행으로 보는 그였으니 오죽 성실하게 했겠는가. 나무를 할 때도 장작을 팰 때도 마치 목숨이라도 건 듯이 열심이었고, 쪼갠 장작들도 허투루 내던지지 않고 군기 센 내무반 모포처럼 칼 같이 정리하곤 했단다. 구슬땀 뻘뻘 흘리며 장작을 패고 있던 어느 날, 봉암사 주지이자 그를 알아준 몇 안되는 종단의 거물 서암 큰스님이 그에게 말했다.
“여보게, 자네 없어도 봉암사는 잘 있었네.”
아하! 그는 확 깨우쳤다. 그래, 그렇다. 성실하고 열심이되 나 없으면 안될 듯이 덤비는 건 아니야, 게으른 것도 문제지만 일에 너무 매몰되는 것 또한 안되지, 그것도 일에 끄달리는 것이야…. 이를 악물게 하고 어깨를 짓누른 그 어떤 무거운 것이 금세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집중하되 긴장하지 않으니 일이 훨 수월해졌다.
그래선지 그는 요즘도 뭘 할 때 대단한 결심 비장한 결의 따위의 함정을 경계하며 ‘그냥 가볍게 꾸준히’를 강조한다, 산골짝에 토끼가 뭐 폼잡고 사느냐면서, 싫은 일을 할 때는 싫은 일을 할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고 하고픈 일을 못할 때는 하고픈 일을 안할 권리를 누린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괴로울 일 뭐 있겠냐면서, 남들이 뭐라고 해 속상해 죽겠다는 푸념에는 네가 바다를 좋아하면 네가 좋은가 바다가 좋은가 네가 바다를 미워하면 네가 괴로운가 바다가 괴로운가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는 것을 입이 닳도록 일깨우면서.
그의 가르침은 내 미국살이를 가볍게 해줬다. 2006년 7월 북가주기자협회 한범종-김대부 회장 이취임식에서 언론인 출신 최정화 교수가 돌린 설문조사지에 동포언론 기자들의 자화상을 누군가 “박봉 불구 열심”이라고 적어내 모두들 한바탕 웃은 적도 있듯이, 여건이 그리 녹록치 않은 동포언론에 있으면서도 소설가 김훈의 말마따나 ‘밥벌이의 지겨움’을 나는 별로 느끼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의 깊은 가르침과 나의 얕은 경험을 버무려 회사에다 동료직원들에다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 없으면 안 굴러간다는 직원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는 회사가 만난 것 같이 일을 하고 사람을 부려서는 일마다 피곤이니…”
말은 그래도 실천은 제대로 했을까. 자신할 수는 없다. 남들이 언뜻 보기에 스트레스 뭉치일 것 같은 데스크를 이달 말(31일)로 떠나는데, 쥐고픈 복이라 여겼으면 아까울 것이고 놓고픈 짐이라 여겼으면 가벼울 것인데, 별 감회가 없는 걸 보면 얼기설기 흉내는 낸 것 같다. 일찌감치 냄새를 맡고 조심스레 물어온 누군가에게 말했듯이, 떨어지는 꽃잎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떨어질 뿐이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특히 잦은 기계 고장으로 여러날 신문이 통째로 못나가거나 일부가 못나가는 등 곡절 속에서, 게다가 기자적 자질도 자세도 변변찮은 나와 함께 일하느라 몸도 마음도 곱빼기로 힘들었을 동료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내 능력과 성심이 미치지 못해 빚어진 크고작은 실수들이 많았음에도 참아준 독자님들께도 감사인사를 드린다. 회사든 개인이든, 나의 무능과 불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은 분들이 계신다면 두배 세배 사과를 드린다. 구전으로 인터넷으로 투서로 전화로, 좌간 온갖 방법으로 내게 돌을 던진 이들도 실은, 내 스승에 따르면, 나를 항상 깨어있게 해주는 존귀한 도반들이다. 응당 감사를 드린다.
이강규 신임 편집국장은 능력 인품 언론입문 어느모로 보나 내 후임이 아니라 전임이 됐어야 마땅한 분이다. SF한국일보를 위해서도 SF한국일보를 아끼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도 참 잘된 일이다.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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