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땅
Life is the dancer.
And, you are the dance.
인생은 댄서이다.
그리고, 그대는 바로 그 춤이다.
속에서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조용히 말하는 붓다, 에크하르트 톨레.
동양의 침묵과 서양의 합리를 고루 섞으며, 직관과 논리를 비벼 참 말을
전하는 Eckhart Tolle. 이미 오래 전 ‘The Power of Now’란 저술로
전인류의 영적 각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톨레. 그렇게 감동받은
오프라가 톨레를 위해 제작한 영상물에 나오는 멋진 표현입니다.
“삶은 그대를 춤춘다.”
지금의 위력, The Power of Now ? 그리 새로운 말은 아닙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선[禪]이란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는 것이다.
그게 답니까? 그렇다, 그게 다다! Nothing more, nothing less. 그토록
간단할 뿐이다. Simple as that!
선[禪]은 산스크릿트어 ‘dhyana’[디야나]의 중국말 음역으로
일본말 식 영어론 ‘Zen’이라 하지요. 젠이던 찬이던 선이던 모두 ‘디야나’
즉 가만히 있음에 지금 이 순간을 철저히 깨닫는 명상을 말합니다.
Dhyana means mindful acceptance of the present moment.
바로 ‘지금’을 깨닫는 위력 - 그게 ‘디야나[禪]’의 본래 의미입니다.
The Power of Now, Stillness Speaks, 그 밖에도 여러 법문을 통해
거침없는 진리를 전해온 에크하르트 톨레, 최근엔 ‘A New Earth’란
책을 써냅니다. ‘새로운 땅’이란 바로 신약성경의 ‘계시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든 게 끝난 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된다는
요한의 묵시록 말씀에서 책 제목을 찾았다는 톨레의 해석은 사뭇
놀랍도록 신선하고 명쾌합니다.
The New Heaven is the inner transformation.
The New Earth is the outer manifestation.
새 하늘은 안에서 벌어지는 변형이다.
새 땅은 밖에서 일어나는 현현이다.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새 하늘과 새 땅. 과연 무엇을 어떻게 봤기에 새 하늘 새 땅이라 말했던
걸까요? 톨레의 해석에 의하면, 요한의 은유는 물리적 의미의 천지개벽이
아닌 보다 내면적 변화를 뜻한다 합니다. 새 하늘은 거대한 의식의
변혁이요, 새 땅은 밖으로 나타난 변혁이라 합니다.
‘transformation’은 ‘trans’와 ‘form’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가로지른다는 뜻의 ‘trans’와, 모양/형태의 뜻 ‘form’이 합쳐지니,
원래 모습이 송두리째 완전히 바꿔진다는 뜻이 됩니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찬란한 나비로 비상하는 거대한 변신을
‘metamorphosis’ [메타모~포시스]라 하지요. 거의 그런 수준의
대변혁을 ‘트랜스포메~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았다던
‘세상 끝난 뒤’의 새 하늘이란 바로 내면 의식의 거대한 변혁 [the
Inner Transformation]이라 풉니다.
‘manifestation’은 쉽고도 어려운 단어입니다.
명백하게 나타내 보인다는 뜻의 동사 ‘manifest’,
그 명사형이 ‘manifestation’입니다.
“Manifest your Destiny.” 그대 운명을 명백히 드러내라.
즉, 열심히 운명을 개척하란 뜻입니다.
요한이 보았다던 새 땅은, 안에서 벌어진 심오한 의식변경으로 인한
밖으로의 명백한 나타남에 다름아니라 합니다. 속이 바뀌니 겉은 당연히
바뀌더란 말이죠. 새 하늘이 나타나니, 새 땅이 절로 생기더라.
Life is the dancer.
And, you are the dance.
인생은 댄서이다.
그리고, 그대는 바로 그 춤이다.
그렇게 변경된 의식으로 본 새 땅은 바로 해탈과 대자유의 경지입니다.
거대한 깨달음으로 머무는 지금[至今], 바로 그 경지에서 본 새 땅은
새 하늘만큼이나 새롭기 그지 없습니다. 아침 일찍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드는 햇살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 물 한 모금이 그토록 달콤한
이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밤새 피어난 매화 한 송이가 그토록 경이로울
수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인정과 향기가 그토록 소중할 수가! 내 안에서
벌어진 새 하늘이 내 밖 세상 구석구석 새 땅으로 나타남을 봅니다.
그렇게 가만히 ‘지금 여기에’ [Here and Now]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 하늘의 폭도 점점 가없이 번져갑니다. 새 하늘의 경계가 커지면 커질수록 새 땅의 의미도 날로 새록새록 해집니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고요한 외침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삶은 ‘나’라는 춤을 추는 중이다.
내가 춘다고 여겼던 춤이, 알고 보니 삶이 저절로 추는 춤이더라. 그리고, 추어지는 춤이 바로 나요, 춤을 추는 주인공은 삶 자체더라.
거대한 각성[覺醒], 그리고 거룩한 실존이 따릅니다.
그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게 됩니다.
실존[實存] ? 쉬운 말 어려운 경계입니다.
과연 어떤 게 실존인가? 순간순간 늘 깨어있음이 실존이라 합니다.
늘 다다르고 있는 지금[至今]에 머무는 게 실존이라 합니다.
먹을 때 먹고 마실 때 마시고 잘 때 자는 게 실존이라 합니다.
먹으며 떠들고, 마시며 잡생각하고, 자며 꿈꾸는 건 모두 실존이 아니라 합니다. ‘나’를 추고 있는 삶이란 댄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를
실존이라 합니다.
When you lose touch with inner stillness,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When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you lose yourself in the world.
내면의 고요함에서 멀어지면
스스로에게서도 멀어지게 된다.
스스로에게서 멀어지면
세상 속에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면의 고요를 늘 지켜보라는 에크하르트 톨레.
‘고요함의 지혜’ [Stillness Speaks]란 조그마한 책 속에서 진하게 전합니다.
Get out of your head and into the moment!
그대 머리 속에서 빠져 나와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들라.
이미 오래 전 태곳적부터 있어온 ‘새 하늘 새 땅’으로 오라.
그럼, 춤 추는 자와 춤이 하나되는 묘한 경지에 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Life is the dancer.
And, I am the dance.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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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h333choi.do [영어서원 백운재]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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