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긴자 번화가의 뒷거리에 위치한 라면전문 식당 ‘테호쿠’는 외관상으로 보면 한국의 허름한 기사 식당을 연상시킨다. 카운터 개인 의자가 10여개 있고 테이블도 4개에 불과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시간에는 30분에서 1시간 기다려야 겨우 비집고 앉아 라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이 식당은 최근 30대 초반의 장남 히로시 도요마스가 가업을 이어받았는데 명문 게이오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던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였다. 그는 2년전 직장을 그만둔 후 아버지로부터 라면 조리 방법을 전수받았다. 그는 “라면은 국물이 생명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공부해야 아버지가 냈던 국물맛을 낼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이 식당은 1802년 오사카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올해 205주년을 맞게 된다. 장남은 이 식당의 21대 주인이다. 일본에는 이같이 200년 내지 심지어 300년이 된 우동집, 라면집들이 많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업소와 회사만 1만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같이 동경대나 와세다대학 등 명문대를 졸업하고 높은 연봉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던 아들이 가업을 이으며 라면을 만드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직함에 ‘사’자가 들어가야만 상류·지도층으로 인정을 받고 그렇지 못한 직업 종사자들은 무시를 당하는 한국인의 정서로 보면 놀라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성장의 주요 이유로 일본인들의 이같이 ‘유별난’ 장인정신을 손꼽는다.
미국은 어떤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232년밖에 안됐지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영위하고 있는 미국의 성공 요인을 꼽으라면 국민들의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을 꼽을 수 있다. 인디언과 싸우며 서부를 개척하고 달을 점령한 도전 정신에 청교도 종교에 기반을 둔 근면성과 소탈함, 합리성은 미국 국민성의 트레이드마크다. 미국인들은 무엇보다도 원칙과 기본을 중시한다.
최근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는 현재 경제 상황이 ‘열악’하다고 평가했으나 60%는 내년 경제가 ‘양호’해 질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나타냈다. 또 93%의 미국인은 모기지, 83%는 대학 학자금대출과 차량구입비, 신용카드 불입금을 앞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미국인들의 긍정적인 국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렇다. 경제는 대학논문에 나오는 머나먼 개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경제는 반드시 좋아진다.
물론 미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언론 보도를 접하지 않더라도 자영업자는 매출이 줄고 직장인은 월급이 오르지 않고 주택 소유주는 집값이 떨어졌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흔히 한인들의 국민성을 ‘냄비근성’에 비유한다. 성격이 급하고 쉽게 흥분하며 감정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미국에서도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냄비근성이 상징하는 또 다른 면인 정열과 근면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멀리 보지 않아도 주위에는 장인정신을 매일매일 실현하는 한인들이 있다.
기자가 지난 10여년간 애용해 온 중국 연변출신의 한 구두닦이 아저씨는 사우나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구두를 닦아오고 구두를 수선해왔다. 그에 따르면 구두도 가죽의 종류나 질에 따라, 또 남녀 신발이냐 등에 따라 최상의 광택을 내기위한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항상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기자는 그에게서 장인정신을 느낀다. 그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입도 줄었다”며 “그러나 경제상황을 내가 바꿀 수는 없고 손님들에게 더욱 좋은 구두닦이 서비스를 제공해서 더욱 많은 손님을 끄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우리 모두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소속된 사업체 또는 회사에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발전하고 변화할 때 경제 침체의 어두운 그림자도 서서히 걷혀질 것이다.
조환동 경제부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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